박지원, ‘대통령 반성’-‘국회의장직’ 거래 제안에 정국 들썩

▲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지난 27일 당 신임 원내대표로 추대되자마자 하루 뒤 새누리당에 국회의장직을 제의한 데 이어 29일엔 경제활성화 법안을 처리해달라는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요청에 조건부 협력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3당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함께 공조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을 긴장시키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교섭단체 요건을 갖춘 원내 3개 정당 중 가장 먼저 지도부 진용을 갖춘 국민의당의 움직임이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아직도 차기 지도부 구성 문제로 여념이 없는 가운데 국민의당은 일찌감치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 체제를 당분간 이어가기로 결정하고 지난 27일엔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에 각각 박지원 의원과 김성식 당선인을 추대한 데 이어 28일엔 원내수석부대표로 김관영 의원을 지명했다.
 
이처럼 어느 당보다 빠르게 원내지도부를 갖춘 국민의당은 지도부 구성원 면면을 살펴볼 때 안정감 있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려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또 국민의당이 지도부 구성에 있어 누구보다 속도를 낸 것도 3당 중 가장 규모가 작은 만큼 향후 끌려 다니지 않고 정국을 주도하려면 거대 양당보다 선제적으로 이슈를 파악해 어느 당의 입장에 힘을 실어줄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번에 구성된 원내 지도부 인사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이번까지 원내대표만 3번째 지낼 정도로 노회한 정객인 박지원 의원이다.
 
박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에 임명되자마자 각 당은 이에 맞설 대항마를 물색하느라 분주한데, 원내대표직에 오르자마자 박 의원이 더민주와 공조하겠다던 기존의 입장과 달리 일견 새누리당에도 손을 내미는 듯한 애매한 입장을 취하면서 새누리당과 더민주 모두 복잡한 표정이다.
 
원내대표로 추대된 지 하루 만인 28일 새누리당에 국회의장직을 제안하면서도 그에 앞서 국정 실패의 책임은 인정하라며 박근혜 대통령을 자극했던 박 의원은 같은 날 비박계 수장이었던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를 만나 비밀 환담을 나누는 등 벌써부터 양당을 긴장시키는 의미심장한 행보를 보여 ‘캐스팅 보트’를 쥔 정당의 원내대표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박 원내대표가 여소야대 정국을 좌우할 열쇠를 쥔 것인지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시선이 국민의당으로 쏠리고 있다.
 
◆ 박지원, ‘朴 대통령’ 비판 속 與에 ‘의장직’ 제의…분리 대응
 
원내대표로 추대된 뒤 본격 업무에 들어간 28일 박 의원이 던진 첫 일성은 ‘박 대통령 국정 실패 책임론’이었다.
 
다만 그는 기존 양당 체제 때처럼 정부여당을 향해 대립각만 세운 게 아니라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이 그간 준비해왔던 국회의장직을 ‘당근’으로 제시했다.
 
이와 관련, 박 의원은 28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박 대통령은 지난 3년 간 아무 업적도 없이 탁상만 치면서 국회에 모든 책임을 넘겼다”며 “박 대통령이 경제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과 야당에 협력을 구하며 노동계 고통도 함께 감수하자고 설득한다면 국회의장도 집권여당으로서 중요하니 국민의당에서 협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에선 박 의원이 건넨 손길이 진심이라기보다 더민주와 공조하기에 앞서 제3당인 국민의당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이거나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분리 대응해 당내 심화되고 있는 친박과 비박 간 신경전을 한층 더 이간시키려는 술책으로 보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같은 날 박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집요하게 국정 실패의 책임을 시인하라고 촉구했는데, YTN ‘호준석의 뉴스인’에 나온 자리에서 그는 “일찍 했어야 할 구조조정을 국민을 속이면서 좋다고 해 이 꼴이 된 것”이라며 “그러한 기업인에 대해 처벌도 하고 제재도 해야 되는데 대통령이 아무 말 안 하고 ‘당신들이 하라, 내 책임은 없다’고 하면 설득이 되겠는가. 과연 국민이 용납하겠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 자리에서 그는 “우리가 캐스팅 보터가 돼선 안 된다”며 “더민주가 유리하니 거기하고 손잡고 새누리가 떡 주니 거기하고 손잡고 이런 방식의 정치를 해선 국민의당도 실패하고 안철수 대표도 실패한다”고 ‘캐스팅 보트’ 역할을 부인했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캐스팅 보트’ 정당이란 상황을 벗어날 수는 없더라도 새누리당과 더민주 사이에서 정체성 없이 기회주의를 노린다고 비쳐질 것을 우려해 내놓은 발언으로 보인다.
 
◆ ‘의장직’ 건 박지원의 ‘찔러보기’에 與 담담

 
이처럼 박 의원의 ‘제안 아닌 제안’을 받은 새누리당에선 차기 원내대표직을 놓고 계파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비박계 의원들조차 박 의원을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섰는데, 차기 원내대표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진 비박계 4선의 나경원 의원은 29일 S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박 의원을 겨냥해 “정치인들끼리 나눠먹고 정치인들끼리 거래하는 것에 대해 (민심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국회의장이란 것이 여소야대가 되더라도 제1당이 꼭 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여당이 해왔던 경우가 오히려 원칙”이라고 맞받아쳤다.
 
나 의원과 마찬가지로 새누리당 차기 원내대표에 도전하려는 비박계 김재경 의원도 같은 날 보도자료를 내고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말씀하면 국회의장을 도와줄 수도 있다’고 했다. 대통령을 의원이나 당 대표로 생각한 건가”라며 “의장은 국회에서 독립해서 그 권한으로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박 대표의 소신 아니었나”라고 꼬집었다.
 
또 김 의원은 앞서 이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도 “야당이 두 당이니까 두 당 중에 한 당이 정말 국회의장은 정국 안정을 위해 집권당에 줘야 한다고, 그렇게 푼다면 국회의장을 가는 것이고, 관행에 엄격하게 따라서 1당이 국회의장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면 그대로 가면서 그 질서에 순응해 우리(새누리당)가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라며 당이 의장직에 연연하지 않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들이 총선 패배의 원인이 박 대통령에게도 있다고 보는 비박계 의원들임에도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박 의원에게 이처럼 즉각적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은 각각 새누리당의 차기 원내대표 후보로서 향후 자신이 원내대표에 오를 경우 직접 상대하게 될지 모를 정치 9단의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미리 견제하려 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특히 비박계에선 총선 패배라는 결과에 중점을 두고 친박계에 책임을 묻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총선 결과를 무시한 채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의장직을 얻으려는 데 방점을 두기보다 총선 결과를 민의로서 그대로 받아들여야 된다는 목소리가 우세한데 그런 만큼 박 의원의 의장직 제안에 대해 민의를 도외시한 ‘나눠먹기’란 식의 비판적 반응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박 의원 역시 그동안 지속적으로 의장직은 총선 결과 제1당이 된 더민주에 가야 한다는 입장을 원내대표 추대 이전부터 수차례 밝혀온 바 있어 새누리당에 ‘의장직’을 내건 이번 제안은 사실 19대 국회에서 굳어져 있던 양당 체제를 흔들기 위한 허허실실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더민주, 박지원의 ‘판 흔들기’에 긴장 속 협력 강조
 
이런 가운데 당초 국민의당 협조 하에 의장직을 갖게 될 것으로 알고 있던 더민주는 새누리당에 의장직을 제안할 수도 있다는 박 의원의 돌출 발언에 대해 그 진의를 떠나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으로서 박 의원과 가까웠던 김홍걸 더민주 국민통합위원장은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박 의원의 ‘의장직 발언’에 대해 “군사독재 정권 이후 여당에서조차 국회의장 선출 건을 청와대와 상의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한 경우가 없다”며 “삼권분립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이날 국회에서 가진 당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김 위원장 문제에 제가 답변하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도 “제 부덕의 소치”라고 말해 새누리당에 대한 ‘의장직 제의’가 진심이 아닌 ‘찔러보기’였음을 자인했다.
 
하지만 더민주 역시 과반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여당 견제를 위해 국민의당과의 협력이 불가피한 만큼 곧바로 박 의원에 러브콜을 보냈는데, 이날 더민주 원내대표 경선 출마 의사를 밝힌 우상호, 우원식, 노웅래 의원 모두 당선 시 앞으로 상대하게 될 국민의당의 박 의원을 향해 정국 운영에 있어 상호 공조 필요성을 역설했다.
 
더민주 우상호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 출마 회견에서 박 의원에 대해 “소위 경쟁적 관계, 게임하는 관계로 설정하는 프레임은 새누리당과는 맞아도 동지였던 당과는 맞지 않다”며 “신뢰하고 같이 협력해 공동전선을 펼 수 있을 것”이라고 우호적 의사를 내비쳤다.
 
같은 당 우원식 의원 역시 이날 국회에서 가진 원내대표 경선 출마 발표 회견 직후 기자들에게 ‘국민의당 박 원내대표와 어떻게 협상을 풀어나갈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박 원내대표를 좋아하고, 같은 야당이기 때문에 이건 새누리당의 두꺼운 철벽을 어떻게 뚫느냐의 문제”라며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원칙을 세워야 할 것은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웅래 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원내대표 경선 출마 의사를 밝힌 직후 국민의당과의 관계설정에 대해 “박지원 원내대표는 우리 선배이고 능수능란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자만 같은 당을 하면서도 (노 의원 자신이 박 의원에게) 할 말은 확실히 했다고 본다”며 “협력과 소통이 기본이지만 할 말은 하겠다”고 밝혀 대체로 국민의당과 협력 체계를 이뤄나가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 국민의당 박지원 신임 원내대표가 29일 조속한 쟁점법안 처리를 요청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이런 와중에 이날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국회를 방문해 여야 각 당의 원내대표를 차례로 방문해 노동4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가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반면 박 의원은 “정부와 대통령이 솔직히 말하고 협조를 구한다면 우리도 돌팔매를 맞더라도 협조하겠다”고 가능성을 열어놔 두 야당 간 온도차를 보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반성’이라는 전제조건을 걸기는 했지만 이날 오전 안철수, 천정배 공동대표를 비롯한 국민의당 지도부 전체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현 정부의 경제 정책과 관련해 한 목소리로 박 대통령을 성토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박 의원이 유 부총리와의 면담 자리에서 조건부라도 정부에 대한 협조 가능성을 표했다는 점은 향후 정국의 주도권을 국민의당이 쥐고 흔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 풀이되고 있다.
 
이런 정국 구도를 간파했는지 박 대통령 역시 지난 28일 박 의원과 김성식 당선인에게 각각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에 추대된 것을 축하하는 축하난을 보낼 정도로 신경을 썼는데, 그동안 청와대에서 각 당의 원내대표에게 축하난을 보내는 건 관례였지만 정책위의장에게까지 보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20대 국회에선 국민의당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