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철 비대위원장 추대’로 與 내홍 재발 끝에 ‘원유철 백기투항’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자신이 비대위원장직에 추대된 데 대해 당내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나자 나흘만에 머리를 숙였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직에 총선 패배의 책임이 있는 현 지도부의 일원인 원유철 원내대표가 추대된 것을 두고 비박계를 중심으로 연일 강하게 반발하며 당내가 들끓어 오르고 있다.
 
심지어 일부 친박계 의원들까지 비판적 목소리를 내면서 졸지에 벼랑 끝으로 몰린 원 원내대표는 결국 19일 당내 쇄신파 의원들의 압력에 못 이겨 향후 선출될 차기 원내대표에 비대위원장직을 즉각 이양하기로 하고, 이들과의 면담 후엔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22일 전국위원회 개최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쇄신파 의원들은 전국위원회가 열릴 경우 사실상 원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추인하겠다는 것이어서 새 원내대표를 선출해 비대위원장직을 역임하게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 비대위원장은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절차를 포함해 종합적으로 전국위원회를 열어야 할 상황이 있을 수 있다”며 전국위를 개최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겨 둬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비박계, ‘원유철 비대위 체제’ 겨냥 ‘총선 패배 책임’ 공세
 
‘신박’을 자처하며 그동안 친박계 최고위원들과 한 목소리를 내왔던 원 원내대표는 총선 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된 지난 15일만 해도 공천 파동 후폭풍으로 인한 선거 패배에 대해 공동책임론을 내놓으며 차기 원내대표에 비대위원장직을 이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불분명한 입장을 취한 바 있다.
 
공천 파동의 책임이 큰 친박계에서 전당대회 개최 전까지 임시 지도부인 비대위까지 장악하려는 것으로 본 비박계는 당장 쓴 소리를 쏟아내며 ‘총선 책임론’에 불을 붙였다.
 
비박계 정두언 의원은 18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비대위원장에 추대된 원 원내대표를 ‘간신’으로까지 칭하며 “(총선 패배를) 수습하려면 먼저 잘못을 사과하고, 책임자들은 책임을 지고, 또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 새 길을 제시하면서 그에 맞는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 의원은 이어 친박과 비박을 각각 지칭한 듯 “권력자 눈치 보느라 국민 무시한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을 막지 못한 저 같은 사람들이나 다 책임이 있다”면서 “여기서 자유로운, 새로운 사람을 내세워 비대위원장을 해야지, 지금 이상하게 됐다”고 말해 비대위워장직에 외부인사를 영입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 하태경 의원은 18일 T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친박이 70%, 비박이 30% 정도 책임이 있다”며 “이한구, 최경환, 김무성 대표 정도는 2선 후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같은 비박계인 하태경 의원은 이날 TBS라디오 ‘열린아침 김만흠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아예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하면서 ‘총선 패배 책임론’을 거론했는데, “친박이 70%, 비박이 30% 정도 책임이 있다”며 “이한구, 최경환, 김무성 대표 정도는 2선 후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하 의원은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겨냥해 “공천 과정에서 당을 망친 것 아니냐”며 “애초 공천 소임을 짤 때 친박과 비박이 어느 정도 타협을 했으면 이 정도로 참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또 그는 원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에 추대된 부분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사람이 다시 비대위원장을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1차적으로는 (비대위원장직에) 외부인사 영입을 최대한 노력해보고, 2차적으로 차기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식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하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서도 “각 당 대표와 정례 회의를 하겠다든지 소통과 협상의 정치를 강조하셔야 된다”며 “유권자들의 타협과 협치 요청에 적응해야 되는 것은 새누리당보다 청와대”라고 지적했다.
 
◆ 친박계, ‘지도부 부재 상황’ 내세워 원유철 비호
 
이런 비박계의 맹공 속에 친박계 역시 가만있지 않았는데 유기준 의원은 같은 날 KBS라디오에 나와 원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직에 추대된 것과 관련, “당헌·당규에 따르면 현재 원내대표가 하도록 돼 있다”며 “당 대표, 최고위원들이 다 사퇴한 마당에 당을 이끌 수 있는 기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박했다.
 
유 의원은 총선 당시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원 원내대표에 대해 비박계가 총선 책임 문제을 제기하는 데 대해서도 “(원유철 비대위 체제는) 당 원내대표가 선출될 때까지 하는 한시적 체제”라며 선을 그었다.
 
이에 힘입어 당사자인 원 원내대표도 침묵을 깨고 이날 반격에 나섰는데, 원내대표단 오찬 참석을 위해 국회를 나가던 중 기자들에게 “우리 ‘새누리호’라는 게 성난 민심의 파도를 맞아 좌초됐는데 침몰할 수는 없지 않냐. 키라도 잡아야 돼서 내가 잡고 있는 것”이라며 “구조선이 올 때까지 잡고 있는 것이다. 구조선이 차기 원내대표고 차기 전당대회로 뽑히는 당 대표”라고 말해 차기 지도부 출범 전까지는 자신이 계속 지도부로 활동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 비박계 일각에서 총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외부 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그는 “총선 끝나고 14일 열린 긴급 최고위에서 외부인사가 와서 비대위가 굴러가겠나, 원내대표도 뽑아야 되고 차기 전당대회도 해야 하는데, 당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해야 하지 않냐고 했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 같은 원 원내대표의 강경한 입장에 부응해 이우현, 이현재, 홍철호 등 당내 초선의원들도 같은 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직에서 퇴진해야 한다는 비박계를 겨냥 “지금 와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하는 건 옳지 않다”며 “앞으로 계파는 안 따졌으면 한다. 결정한대로 하는 게 옳다”고 맞불을 놨다.
 
이처럼 원 원내대표 측에서 전혀 물러설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김영우, 황영철, 오신환, 하태경 등 비박계 의원들을 주축으로 18일 국회에서 가진 심야 회동 결과 ‘새누리혁신모임’을 결성키로 하고 원유철 비대위 퇴진을 위한 연판장을 돌리는 초강수를 두기로 뜻을 모았다.
 
소위 쇄신파라고도 불리는 새누리 혁신모임은 비박계 3선인 김영우 의원부터 친박 3선 이학재 의원을 비롯해 김세연, 황영철, 박인숙, 오신환, 주광덕, 하태경 의원 등 대체로 비박계가 중심이지만 친박계도 일부 뒤섞인 재선·3선 의원 8명이 결성했는데, 이들은 현재의 원유철 비대위 체제를 추인할 전국위원회 개최를 취소하고 당선자총회를 열어 새 비대위원장 선임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 몸 낮춘 원유철, 비대위원장 추대 4일 만에 “대표 권한 대행일 뿐”
 
이렇듯 일부 친박 의원들까지 대립각을 세우는 등 압박 수위가 점차 높아지자 원 원내대표는 더 버티지 못하고 19일 오전 총선 뒤 처음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빠른 시간 내에 차기 원내대표를 선출하고, 선출된 원내대표에게 비상대책위원장을 이양하려고 한다”며 한 발 물러선 입장을 보였다.
 
다만 원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 뒤 기자들에게 “22일에 전국위원회를 열어 비대위를 구성하고, 새로운 원내대표가 선출되면 비대위원장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전해 혁신모임 의원들의 요구와 달리 전국위는 어떻게든 개최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혁신모임 측은 이런 원 원내대표의 반응이 현재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로 봤는데 약속한대로 새 원내대표를 선출하기 전까지 비대위 체제를 유지한다면 열흘에서 보름 남짓한 기간 밖에 비대위원장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재임하기 위해 굳이 전국위까지 연다는 건 사실상 금방 퇴진할 생각이 없다는 걸 반증하는 것 밖에 안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19일 원유철 원내대표를 겨냥해“(총선) 패배 책임이 있는 사람이 비대위원장직을 맡는 그 자체부터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온 세상이 아는 사실을 당사자만 모른다는 것인지 기가 찰 따름”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를 꼬집은 듯 비박계 심재철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원 원내대표를 맹렬히 질타했는데 “이양이니 뭐니 하는 궤변들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는 헛꼼수”라며 “(총선) 패배 책임이 있는 사람이 비대위원장직을 맡는 그 자체부터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온 세상이 아는 사실을 당사자만 모른다는 것인지 기가 찰 따름”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당 비대위원장은 개혁적인 인사로 해야 한다”며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당 지도부 인사는 비대위원 및 위원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원 원내대표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이날 오후 연판장을 돌리기에 앞서 최후 담판을 위해 자신을 방문한 김영우, 오신환, 황영철, 하태경 의원과 만난 원 원내대표는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혁신모임측이 요구한대로 오는 22일로 예정됐던 전국위원회 개최를 취소하고 26일에 당선인대회를 열 예정이라고 전했다.
 
특히 원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현재 신분에 대해 “나는 대표 권한대행이지 비대위원장이 아니다”라며 ‘비대위원장’이란 직함에 대해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는데, “책임감 때문에 하는 것이지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고. 내가 얼마나 곤혹스럽겠느냐”면서 당내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부득이 맡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당내 비박계는 물론 일부 친박계 인사들까지 자신에 대해 비대위원장직 퇴진 압박을 가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수동적으로 퇴진하게 된 셈이라 여겨지고 있는데, 이에 따라 당내 ‘진박’ 등 전통적 친박계의 입지도 함께 위축될 것으로 보여 향후 차기 전당대회나 원내대표 선출에 있어서도 비박계가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친박계를 밀어낼 수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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