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박 후보 무더기 탈락 직면…친박계 ‘어안이 벙벙’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4일 현재까지 최고위에서 의결이 보류된 5개 지역을 무공천 지역으로 지정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총선 후보 선거 등록일인 24일 직전까지 이재오, 유승민 의원 등의 지역구를 놓고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및 최고위원회 내 친박계 인사들과 팽팽한 기 싸움만 이어가던 김무성 대표는 유 의원 등 논의 대상 의원들이 시간에 쫓겨 불가피하게 탈당을 택하는 지경에 이르자 이를 노렸던 친박계의 ‘치킨 게임’에 끝내 패한 듯 보였다.
 
24일 오전만 해도 전날 밤 유 의원 등 4명의 현역이 연쇄 탈당한 데 대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직접 브리핑을 열고 끝까지 결정을 내지 못하던 대구 동구을을 결국 친박계 이재만 후보에게 단수 공천한다고 확정·발표한 것은 물론 유 의원의 과거 행적을 일일이 꼽아 맹비난하는 등 일견 친박계의 승리로 사태가 마무리되는 것처럼 비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전은 있었다. 최후의 카드로 남겨 뒀던 ‘당 대표직인’을 내세워 아직 최고위에서 의결되지 않은 5개 지역 공천 결과를 보류하겠다고 김 대표가 전격 발표하면서 다 끝난 줄 알고 있던 친박계는 뒤통수를 맞은 표정이다.
 
마침내 ‘옥새’를 최후의 저항수단으로 꺼내 들 정도로 배수진까지 친 김 대표가 총선 일정을 앞세운 친박계의 압박 속에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30시간 법칙’ 김무성, ‘48시간’ 버텨낼까
 
비박계가 대거 숙청된 이번 공천 파동 속에서도 김무성계 인사들은 거의 모두 공관위의 칼날을 비껴갔기 때문인지 일각에선 이번 공천 결과를 두고 김 대표가 친박계와 사전 담합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섰는데 소위 비박계 수장으로서 이 같은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김 대표는 이재오, 유승민, 주호영 등 비박계 핵심인사들의 지역구에 대해선 공관위의 컷오프 결정을 재고해야 된다며 보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총선 후보 등록일이라는 데드라인이 임박했음에도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친박계의 지연작전에 말려든 모양새를 보이자 김 대표만 바라보던 대상 의원들은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고 23일 자정 직전 결단을 내리면서 최후의 탈당인사들로 기록됐다.
 
이로 인해 논의 대상 자체가 사라져 당초 친박계의 의도대로 의결 보류 지역에 대한 무공천만은 피할 수 있게 되자 24일 공관위는 그동안 지체하던 모습과 반대로 ‘진박 후보’인 이재만 전 동구청장을 탈당한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에 단수 공천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김무성계를 제외한 비박계는 김 대표가 더는 미덥지 못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는 등 자연히 김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현 시점에서 김 대표가 내놓을 수 있는 최후의 방편은 오로지 ‘대표 직인’ 뿐이었다.
 
그간 가능성은 거론돼왔음에도 과연 김 대표가 단행할 수 있을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옥새 투쟁’까지 벌어진 것인데 당연히 친박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김 대표는 이날 오후 예고 없이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는 회견을 통해 이번 공천 결과가 당헌당규로까지 명시한 상향식 공천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면서 ‘잘못된 공천’이라고 분명히 규정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저는 그동안 일관되게 당헌당규에 어긋난 공천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언해왔다”며 “현재 서울 은평을, 송파을, 대구 동구갑, 동구을, 달성군 등 최고위 의결이 보류된 5곳에 대한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의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천명했다.
 
그는 “의결이 보류된 5곳에 대해선 무공천 지역으로 남기겠다”며 “지금부터 후보등록이 끝나는 내일까지 최고위원회의를 열지 않겠다”고 강조한 뒤 곧바로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가 버렸다.
 
그러자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가만히 있다가 일격을 맞은 친박계였는데 김 대표가 선거후보등록일인 24, 25일 이틀간 최고위원회의를 열지 않아 결국 공천안을 의결하지 못하게 된다면 보류 대상 지역 후보로 선발된 5명의 진박 후보들은 사실상 컷오프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친박계가 김 대표에 맞대응할 카드로 어떤 것까지 내놓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텐데 과거 ‘상하이 개헌 발언’이나 ‘김영란법 논란’부터 최근 살생부 파문에 이르기까지 ‘30시간’을 채 버티지 못하고 김 대표가 먼저 발언을 번복하며 백기를 들어 정두언 의원이 ‘30시간 법칙’이라고 비아냥거렸던 만큼 이번에도 이틀이 채 못 되는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지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김 대표를 비롯해 김무성계 의원들까지 공천이 완료된 데다 ‘진박 후보’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여지조차 차단돼 친박계도 당장 김 대표를 무력화하거나 압박하기 위해 내놓을 만한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도 현 시점에 김 대표가 폭탄선언을 하게 된 이유로 꼽히고 있다.
 
게다가 공천 보류가 그저 계파 투쟁을 위한 권한 남용이 아니라 총선 경쟁력을 고려한 것이란 김 대표 측의 주장도 어느 정도 ‘옥새 투쟁’을 정당화하는 배경으로 설명되고 있다.
 
실제로 김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이번에 공천을 보류해 5석을 잃는 것보다 유승민 탈당을 방치한 채 그대로 진박 후보들에 공천을 줄 경우 역풍을 맞아 50석을 날릴 수도 있는 판인데 선거를 생각하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비호하고 있다.
 
아울러 김 대표의 계산대로라면 총선 공천 문제는 국회에서 다룰 사안인 만큼 청와대 측이 직접 개입하기엔 야당에 구실을 주게 되는 정치적 부담이 크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진박 후보’ 구원을 위해 김 대표를 공개적으로 압박할 명분이 없고 결국 우회로를 택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선거후보등록일이 이틀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기에 단기적 효과를 낼만한 ‘초강수’를 친박계에서 내놓기 어렵기 때문에 김 대표가 이틀간 ‘지연작전’으로 버텨낼 경우 무공천 지역에서 나오게 되는 유승민 의원 등의 당선을 도와 비박계의 재신임을 받게 돼 리더십을 회복하는 한편 친유승민계와 친이계를 우호세력으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끝내 친박계의 전방위적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과거처럼 두 손 들게 될 경우 김 대표는 향후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도 크게 흔들리게 되고 당내 파워 게임에서 크게 밀려나 사실상 ‘식물 대표’나 ‘직인 거수기’ 역할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 김 대표로서도 이번 결단은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건 ‘배수진’을 쳤다고 볼 수 있다.
 
◆ 격앙된 친박계, 대표 없이 강행 처리 시도할까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24일 김무성 대표의 일방적인 무공천 방침 선언에 반발해 즉각 친박계 최고위원들과 긴급 간담회를 열고 논의한 끝에 대표직 직무대행 가능성 등을 포함한 5개 의결사항을 내놓은 뒤 이를 바탕으로 김 대표에 최후통첩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김 대표의 이 같은 ‘무공천’ 조치를 일방적으로 통보받게 된 친박계는 그야말로 벌집을 쑤신 분위기다.
 
자칭 ‘신박’인 원유철 원내대표는 물론 친박계 ‘맏형’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해 이인제, 안대희, 김태호 최고위원 등은 이 소식에 격분해 이날 오후 대책 마련을 위해 급히 모여 머리를 맞대고 “무책임의 극치”라며 김 대표를 성토했으나 정작 김 대표가 빠진 만큼 최고위원회의가 아닌 간담회에 불과해 지방으로 내려간 김 대표를 데려오지 않는 이상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들은 이날 논의를 이어간 끝에 5가지 의결사항을 내놨는데 우선 김 대표가 당무를 거부하고 방해하는 해당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최고위는 합의를 통해 의사 결정하는 집단지도체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대표가 사전 조율이나 정상적 의결과정을 거치지 않고 언론에 발표하는 것은 당 차원의 결정사항이 아닌 개인 의견에 불과하다며 무책임한 일탈행위이자 정치 쿠데타로 규정했다.
 
또 최고위원들이 소집된 긴급 최고위에 김 대표가 속히 참석해 공천 의결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며 계속 불응하면서 당무를 거부할 경우 당헌 제30조, 당규 제4조와 제7조에 의거 직무대행체제로 전환해 원내대표가 최고위를 개최하겠다고 경고했다.
 
특히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김 대표가 무공천 결정을 내렸다는 건 총선을 앞둔 당 대표가 무려 의석 5석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질타하고 있는데, 실상 무공천 지역 5곳 중 대체로 비박계 무소속 의원들과 새누리당에서 공천 받은 친박계 후보들이 맞붙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큰 만큼 김 대표의 결정은 의석을 버린다기보다 정확히는 친박계 5명을 버리고, 복당 의사가 있는 5명의 비박 무소속 후보들을 얻어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한편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김 대표의 ‘무공천 발언’은 협의 없는 일방적인 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가운데 새누리당 국민배심원단은 이번에 비박계 학살에 앞장선 공관위가 오히려 정상적 절차도 없이 비례대표 공천을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며 반발하고 있어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은 논란이 된 인물들의 탈당으로 수습 국면에 접어들기는커녕 장기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데, 이로 인해 총선 결과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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