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놓고 김종인 몰던 친노, 하루 만에 입장선회…논란 봉합되나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22일 당 비대위 회의를 마치고 말없이 떠나고 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지난 1월 27일 문재인 전 대표가 사퇴하고 등장한 김종인 대표의 비대위 체제가 출범한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비례대표 순번 문제를 명목으로 본격 표출된 김 대표와 당내 친노 계파 간 갈등은 단 하루 만에 사실상 친노 진영이 백기 투항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이 있는 현 지도부에 대한 친노 계파의 도전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확실히 종식시킬 의도에서인지 상황이 봉합되는 수순으로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사퇴 여부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며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어 더민주의 혼란이 가라앉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김종인에 대공세 펴던 친노, 하루 만에 입장 번복
 
그간 김종인 체제 하에서 가차 없는 컷오프를 당하면서도 숨죽이고 있던 친노 주류가 끝내 총선을 목전에 두고 김 대표가 비례대표 순번 논란에 휩싸인 것에 마치 호기를 잡은 듯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친노 측은 지난 20일 김 대표의 비대위가 김 대표 몫으로 7명의 비례대표를 배정한데다 김 대표를 비례대표 2번으로 배정한 부분과 당헌 102조 3항에 있는 ‘당 대표는 후보자 중 당선안정권의 100분의 20 이내에서 선거 전략상 특별히 고려가 필요한 후보자를 선정하고 그 외는 중앙위원회의 순위투표로 확정한다’는 부분을 간과한 것이란 지적과 더불어 당 대표가 가진 3명에 대한 비례대표 공천권 중 하나를 자신에게 썼다는 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또 지난달 28일 1개월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 중 김 대표가 “내가 비례대표에 큰 욕심이 있느냐,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발언했던 점과도 배치되는 행동이라고 비난이 이어졌다.
 
여기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까지 김 대표를 겨냥해 “그럴 줄 알았다. 비례대표 취지에 어긋난다”고 공세를 펴면서 김 대표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몰렸으나 오히려 당무 거부로 맞대응하는 등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친노 측이었는데 사실상 친노 막후 핵심인 문재인 전 대표가 자신이 영입한 김 대표를 두둔하는 쪽으로 기울자 친노 인사들은 김 대표에 퍼붓던 비난을 중단하고 급거 태세 전환해 문 전 대표와 같은 뜻을 내보이는 촌극을 펼쳤다.
 
지난 21일만 해도 당내 김광진·정청래·추미애 등 친노 강경파부터 당외에선 조국·문성근·진중권 등 재야인사들까지 비례대표 2번에 배정된 김 대표를 향해 극언을 퍼부었으나 하루 뒤인 22일에는 조국 교수의 경우 페이스북를 통해 “2번에 올렸다가 14번으로 내렸다가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공’은 잊고 심한 욕설이 퍼부어지는 것도 그렇다”며 입장을 번복했고 문성근 국민의명령 상임위원장도 “김 대표의 비례 2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앞서 조 교수는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영입된 절대계몽군주’, ‘고약한 선택’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자가 공천’ 논란에 휩싸인 김 대표를 비판했고, 문 위원장도 김 대표를 향해 “후안무치도 유분수”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 ‘사퇴 카드’ 배수진 친 김종인에 문재인까지 당혹

이렇게 상황이 반전되자 ‘지도부 흔들기’에 나선 저의를 꿰뚫어 본 김 대표는 22일 새벽 비례대표를 김 대표의 뜻대로 하게 주겠다는 중앙위의 타협안이 나왔음에도 무반응으로 일관한 데 이어 당초 비대위 회의에 참석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사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는 김 대표가 이번 ‘친노 쿠데타’를 공천 결과에 대한 우발적 반발 사태가 아니라 언젠가 불거질 자신의 비례대표 문제를 구실로 준비해온 ‘계획된 반란’이었으며 총선 승리할 경우 김 대표로 급격히 당권이 쏠릴 것을 우려한 친노 측에서 총선 직전 김 대표를 길들이고 실권은 여전히 친노에 있음을 확인시키기 위한 시도였다고 보고 사퇴 의지를 거듭 굳히면서 거꾸로 친노 진영을 압박했다.
 
▲ 문재인 대표.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런 압박이 가중되자 이번 친노와 김 대표 간 충돌에도 말을 아끼며 어느 쪽도 편들지 않던 문 전 대표는 22일 김 대표 사퇴설을 듣고 급거 상경해 직접 (김 대표와) 대면한 뒤 기자들에게 “김 대표는 어려운 시기에 와서 당을 되살리는 역할을 했고, 그에 걸맞은 대접과 예우를 해야 마땅하다”며 뒤늦게 김 대표에 힘을 실었다.
 
이를 두고 김 대표는 총선 직전이라는 엄중한 상황을 이용해 친노를 굴복시키고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가는 모양새는 일견 노욕으로 비쳐질 수 있는 만큼 친노 핵심인 문 전 대표가 자신을 대신해 직접 나서 해명케 함으로써 친노 측에서 다시는 이를 구실로 흔들지 않도록 못 박고자 전날 중앙위의 제안을 거부한 데 이어 이날 사퇴 카드까지 꺼내드는 ‘벼랑 끝 전술’로 일관한 것이란 분석을 일각에서 내놓고 있다.
 
아울러 이번 사태 뒤 김 대표가 당에 돌아오게 되면 당내를 좌지우지했던 친노의 영향력은 더는 힘을 쓰기 어려워지고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인사들이 당권을 확실히 흔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친노 쿠데타’ 실패로 친노 세력이 더는 목소리를 낼 명분을 잃어버린 만큼 문 전 대표도 대권까지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이상 향후 친노 세력을 이용해 당내 주도권을 김 대표로부터 되찾으려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김 대표가 당 대표로서 자리 잡고 문 전 대표가 대권 후보로서 연대하는 연립체제를 이뤄가며 서로의 목적을 위해 충돌하지 않는다면 대선까지 김 대표와 함께 할 수 있겠지만 만일 문 전 대표가 당권까지 쥐고자 김 대표와 충돌한다면 자칫 자신의 대권 행보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 김종인, 비례대표 논란 접고 잔류할까


이런 가운데 김 대표는 이날 문 전 대표와의 회동 뒤 자택을 나와 국회로 나서면서 “당 비대위에 가서 그동안의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 나름대로의 소회를 얘기하고 회의를 마치려고 한다”며 “(거취에 대해선) 내가 종합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내놨다.
 
또 그는 자신의 비례대표 공천을 두고 당내 일각에서 반발한 데 대해선 “여태 나 스스로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산 사람이고, 그런 식으로 나를 욕보이는 것을 절대로 용납 못한다”며 이대로 덮고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밖에 중앙위의 비례대표 순위 결정 결과에 대해선 “당헌대로 결정했다고 하니 결과에 대해선 알아서 할 거라고 믿는다”며 말을 아꼈는데, 일단 이날 비공개로 시작된 비대위 회의에 참석해선 순번 결정을 비대위원에 일임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김 대표는 정작 자신의 소회를 밝히겠다고 입장 표명한 바와 달리 비대위에서 별 다른 언급조차 없이 퇴장해 사퇴에 무게를 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부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김성수 대변인은 이날 오후 당 비대위 종료 직후 브리핑에서 “김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힌 사실이 없다”며 적극 부인하고 나섰다.
 
이 뿐 아니라 전문가들도 김 대표가 이번 사안을 더 이상 당 지도부의 결정에 일일이 친노가 반발하고 나설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삼을 뿐 대표직을 사퇴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만일 김 대표가 사퇴한다면 총선을 불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인 만큼 당 지도부를 새로이 구성하기도 어려워 사실상 당을 도우러 온 사람이 오히려 파탄내고 나갔다는 정치적 부담을 떠안게 되는 만큼 이틀 뒤인 선거후보 등록일 전까지 비례대표 논란도 조속히 마무리 짓지 않겠느냐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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