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계, 김무성 측근만 생존…‘대구 물갈이’도 단행돼

▲ 16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공천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비공개 최고위원회의까지 열렸지만 최고위 내에서도 서로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한 채 정회한 가운데 김무성 대표가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20대 총선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새누리당 비박계에게 있어 지난 15일은 ‘눈물의 밤’으로 기억될 것이다.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날 밤 그동안 계속 미뤄오던 서울 강남 및 대구 등 일찌감치 ‘친박 신인’으로 물갈이될 조짐이 보이던 여권 우세 지역에 대한 공천 결과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앞서 6차 공천 발표 당시 대구의 유승민계 현역 의원들 상당수가 컷오프된 상황이어서 한층 긴장이 높아진 가운데 예상대로 친유승민계 전체를 낙천시키고 오로지 파장이 적지 않을 유승민 의원에 대한 공천 결과만 논란 끝에 유보해 뒀다.
 
공관위의 비박계 학살은 비단 TK지역의 친유승민계에만 그친 게 아니라 비박계 전체로 확산돼 평소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에 일침을 놓던 친이계 맏형인 이재오 의원부터 박근혜 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됐다가 기초노령연금 공약 후퇴 문제로 청와대와의 갈등 끝에 6개월 만에 사직했던 진영 의원 등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상당하다.
 
친박계 역시 비박계 숙청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 부득이 계파 내 일부 주요 인사들이나 중진급 인물들을 함께 낙마시키는, 소위 ‘육참골단’의 결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최근 김무성 대표에 대한 막말로 구설수에 오른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부터 첫 컷오프 대상에 꼽혀 탈당을 감행한 김태환 의원, 유승민계 대구 현역들과 동귀어진한 3선의 서상기 의원이 있으며 경선 결과 탈락한 안홍준 의원까지 포함하면 총 4명의 친박 인사들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16일 현재까지 컷오프 20명, 경선 패배 6명 등 전체 현역 낙천자 26명 중 친박계가 4명에 그친 데 반해 나머지 상당수는 비박계 낙천을 의미하는 만큼 비박계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이며 이는 비박계를 대표해온 김 대표의 리더십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김 대표가 비박계 구제 실패 뿐 아니라 자신이 주장해 온 상향식 공천 원칙마저 공관위에서 우선추천, 단수추천 지역을 다수 지정해 크게 퇴색되면서 이 같은 전망이 보다 현실화되고 있다.
 
다만 이번 공천 학살에서 김무성계는 모두 살아남았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데 김 대표의 최측근인 김학용, 김성태 의원이 공관위의 칼날을 피한 것은 물론 지난 4차 공천 발표에선 권성동 의원이 단수 추천받아 생존한 바 있다.
 
또 이날 발표된 4차 경선 결과로 박명재 의원도 최종 후보로 확정된 데다 김종훈, 심윤조 의원은 강남3구 경선 대상으로 꼽혀 생존 가능성이 높고 마찬가지로 경선 대상인 박민식, 김영우 의원도 경선 결과에 따라 생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여 이번 공천 파동에서도 김무성계만 비박계 중 유일하게 온전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공천 탈락 의원들은 재심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탈당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김 대표가 공관위와의 충돌을 불사하며 일부 단수추천지역과 우선추천지역에 대한 의결을 보류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끝내 원안대로 공천 결과가 통과될 경우 해당 의원들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가 이어질 수 있어 새누리당의 향후 총선 전략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대구 물갈이’로 시작된 비박계 학살
 
친박계 3선 중진인 김태환 의원 외엔 현역 컷오프가 전무했던 3차까지의 공천 결과 발표와 달리 이이재 의원이 컷오프 되는 4차 공천 결과부터 점차 유승민계 퇴출에 대한 조짐이 명확해지기 시작했는데, 그간 친박계가 별러온 대로 본격적인 대구 물갈이 신호탄을 터뜨린 6차 공천 결과 발표부터 비박계 학살의 정점에 이른 전날의 7차 공천 결과에 이르기까지 이 6·7차 단 두 차례로 앞서 있었던 5차례의 공천 발표동안 나온 컷오프 대상자보다 2배에 이르는 규모가 탈락됐다.
 
특히 유승민 측은 일찌감치 친박계의 표적이 되어 왔는데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재임하던 당시 박 대통령과 정면충돌한 뒤 원내대표 사퇴에 이르게 된 걸 계기로 그가 친박에서 비박으로 완전 돌아서면서 대구를 구심점으로 삼아온 유 의원 세력과 친박 측의 일전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여권 강세지역인 ‘TK 지역’의 심장인 대구를 유 의원측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일찍이 현역 물갈이론을 바탕으로 친박계는 신인들을 내세워 그동안 ‘진박 마케팅’을 펼쳤음에도 지지율 면에서 유 의원을 압도하지 못하자 결국 이 위원장을 비롯한 친박계가 대다수인 공관위를 통해 정략적으로 쳐낸 것으로 풀이된다.
 
친박과 비박 간 결전의 한복판이 된 대구 내 12개 지역구 중 현재까지 발표된 곳은 유승민 의원의 동구을을 제외한 11개 지역으로 이번 7차례의 공천 발표 결과 8곳이 새 후보로 확정된 만큼 지난 19대 총선을 뛰어넘는 높은 현역 교체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현역 물갈이가 이뤄진 8곳 중 불출마를 선언한 수성갑의 이한구 위원장 지역구와 초선인 이종진 의원의 달성군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중 친박계 3선으로 북구을을 지역구로 둔 서상기 의원 외엔 대체로 비박계이며 이 중 대구동갑의 류성걸, 대구북갑의 권은희, 대구 중남구의 김희국, 대구달서갑의 홍지만 등은 유승민계로 분류되고 있다.
 
이렇게 이들이 쫓겨난 지역엔 불과 얼마 전까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던 정종섭 후보 등이 단수추천 받아 들어오는 등 점차 친박계로 채워나감에 따라 일각에선 공관위가 공정성을 잃고 노골적인 비박 학살을 벌이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비박계 인사들 중 대구 지역 의원으로서 친이계 출신이면서도 친박 핵심인 윤상현 의원과 함께 박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냈을 만큼 신박을 자처했던 3선의 주호영 의원은 지난 14일 발표된 6차 공천 컷오프 명단에 자신이 포함된 것에 분개해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위원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은 물론 탈당까지 시사했으며 16일 최고위원회의장을 찾아 재심을 요청하는 등 적극 반발하고 나섰다.
 
◆ 컷오프 의원 구제 놓고 김무성-이한구 격돌
 
이에 김 대표는 주 의원을 비롯해 전날 컷오프된 이재오 의원과 진영 의원 등을 구제해주고자 16일 오후 긴급 기자 간담회를 열고 전날 발표된 단수추천 지역 중 7곳과 우선추천 지역 1곳의 의결을 최고위에서 보류했으며 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을을 전날 공관위가 여성 추천지역으로 확정한 데 대해서도 재의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김 대표의 기자간담회가 끝나자마자 즉각 당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4차 경선 결과를 발표한 직후 김 대표가 앞서 요청한 주 의원에 대한 재의 요청을 반려한다고 맞받아쳐 둘 사이의 신경전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이 위원장은 이날 공관위 회의차 당사에 들어가는 도중 기자들에게도 이미 “주 의원 건은 공관위가 만장일치로 결정한 사안이며, 사정변경도 없는데 재심할 수 없다”고 못 박아 김 대표 측과 상당기간 긴장 상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위원장은 현재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유승민 의원의 공천과 관련해서도 “최종 결정은 결국 공관위에서 해야 한다”며 김 대표를 위시한 비박계를 좌지우지할 무게추로써 유 의원 공천에 대한 칼자루를 절대 놓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유승민 의원에 대한 공천 결정을 끝내 보류한 채 당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아울러 이 위원장은 경선 결과 발표 브리핑 자리에서도 유 의원 공천에 대해 언급했는데 “우리 내부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여러 방면에서 의견 수렴할 필요가 있다”며 “다른 곳에서도 여론 수렴을 더해 언젠가는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유 의원 공천이 장기간 유보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유 의원을 마치 인질 삼는 것처럼 공천 결정을 내리지 않은 채 속만 태우게 하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선 최고위나 공관위 내 다수인 친박계는 당연히 유 의원 컷오프를 바라고 있지만 이것이 새누리당 총선 결과에 엄청난 역풍으로 나타나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은 물론 당내 친박계의 목소리가 크게 약화될 것을 우려해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것이라 보고 있다.
 
특히 유승민계는 어느 지역구 출신을 막론하고 이종훈, 이이재, 류성걸, 권은희, 홍지만, 김희국, 조해진 등 모두 숙청해 사실상 유승민 의원을 고립시킨 점에 미루어 어차피 홀로 공천된다 해도 힘을 못 쓸 유 의원이 제 발로 탈당을 택하든지 불출마를 택하게끔 유도하기 위해 친박계가 공천 결정을 미룬 채 지켜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혹 유 의원이 탈당을 택해 컷오프된 자기 진영 의원들과 무소속 연대를 이룬다고 해도 여권 표가 분산돼 총선 패배라는 결과로 나타날 경우 그 책임을 먼저 탈당을 감행한 유 의원 탓으로 돌릴 수 있어 어떤 면에서든 ‘시한폭탄’인 유 의원 공천 문제를 직접 공관위가 건드는 부담을 감수하느니 유 의원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도록 장기 보류하려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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