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테크윈, 예상 깨고 보유지분 매각…KAI 인수전 가시밭길 되나

▲ 두 차례 무산됐던 한국한공우주(KAI) 매각이 세 번째 시도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유력 후보인 한화의 이탈로 삐걱대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두 차례 무산됐던 한국한공우주(KAI) 매각이 세 번째 시도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유력 후보인 한화의 이탈로 삐걱대고 있다.
 
6일 한화테크윈은 전날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보유하고 있던 KAI 지분 10% 중 5.01%를 매각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4%인 390만주의 매각이 성사됐다고 밝혀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초 한화는 KAI 보유 지분을 바탕으로 산업은행 및 두산 등 기존 주주들의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하지만 한화가 갑작스럽게 이탈하면서 당장 수 조원에 달하는 매각 예정 지분을 인수할 원매자를 찾는 일이 급선무가 된 상황이다. 한화가 인수전에서 발을 뺐다는 소식이 들리자 이날 KAI 주가는 인수전 전망이 어두워졌다는 판단 속에 전날보다 10% 넘게 빠졌다.
 
◆한화의 예상 깬 결단 주목
한화테크윈이 보유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한화는 2014년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등을 인수하며 본업인 방산업계에서 굵직한 행보를 보여 왔다. 당시 대형 인수합병(M&A)로 인해 한화는 몸집을 크게 불리는 데에 성공했다.
 
이에 한화가 내친 김에 KAI 경영권까지 확보하면서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노릴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KAI는 지난 1999년 항공기 제조업체인 대우중공업·삼성항공·현대우주항공이 통합해 설립한 회사로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비롯해 국산 군용기 대부분을 개발하고 있어, 전투기 엔진과 렌딩기어 등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한화가 인수할 경우 전투기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구축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울러 지난달에는 한화테크윈이 보유하던 한화종합화학 지분을 모두 한화종합화학에 넘기면서 4000억원 이상의 실탄을 추가로 확보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자연스럽게 한화테크윈이 KAI 인수에 이 자금을 보탤 것으로 추측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화테크윈은 예상을 깨고 갑작스럽게 KAI 보유 지분의 절반을 매도하겠다고 밝히고 대부분을 매각했다. 비록 목표치인 5.01% 전량을 매각하지는 못했지만 보유 지분 매도에 나섰다는 것은 사실상 KAI 인수전에서 한화가 철수했다는 의미라는 평가다.
 
◆한화, 내실 다지기 나서나
한화는 KAI 지분을 매각한 것에 대해 “한화테크윈이 글로벌 항공 방산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고 회사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김승연 회장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내실 다지기’의 일환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 3일 신년사에서 “올해를 혁신과 내실 다지기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해로 삼아야 한다”면서 “기존 사업의 경쟁력 강화에 에너지를 결집하자”고 강조했다. 외연 확장보다는 기존 사업에 집중하자는 얘기다.
 
결국 최근 글로벌 경제상황이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한화그룹은 대형 인수합병(M&A)을 또 다시 시도하기보다는 리스크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는 삼성그룹과의 빅딜 이후 편입된 4개 계열사의 화학적 결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장남인 김동관 전무가 주도하고 있는 태양광 사업 역시 안정화와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빅딜에 2조원 가량을 지출한 한화로서는 그간 안고 있던 재무구조 악화 부담을 간과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풀이된다. KAI는 시가 총액만 6조7000억원이 넘고 26.75%를 보유한 산업은행 지분 가치만 해도 2조원에 육박한다.
 
방산업계의 업황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방산업체 가동률은 2009년 61.8%에서 2013년 58.0%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영업이익 역시 2012년 4229억원에서 2013년 2435억원으로 수직낙하했다.
 
증권가에서는 한화의 결정에 놀라워하면서도 지지를 보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날 KTB투자증권은 “(한화테크윈에게) KAI 지분 매각은 호재”라면서 지분 매각으로 확보된 현금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아직 한화가 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KAI 주가가 현실화될 경우 한화가 다시 관심을 보일 수 있다는 전망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화테크윈 측은 인수전 철수 여부에 대해서는 확정된 게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KAI 지분을 매각할 것이 확실시되는 산업은행과 두산 측은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KAI
◆KAI 인수전은 미궁 속으로
반면 KAI 지분을 매각할 것이 확실시되는 산업은행과 두산 측은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가뜩이나 KAI 지분 매각은 거대한 덩치 때문에 앞서 두 차례 무산된 바 있다. KAI는 산업은행이 26.7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한화테크윈과 현대차가 10%씩, 두산그룹 출자사인 DIP홀딩스가 5%를 보유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예고됐던 매각 대상만 32%에 달한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전량 매각이든 분할 매각이든 조만간 보유 지분 매각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10%를 보유하고 있던 한화테크윈이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산업은행 보유 지분이 한화테크윈으로 향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했지만 한화테크윈의 철수로 당장 원매자를 찾는 일이 급선무가 됐다. 재무구조 개선에 한창인 두산 측 역시 지분 매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세계적인 경영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국내 대다수 대기업들은 잇따라 긴축경영에 돌입하고 있다. 방산업계 특성상 해외 자본이 인수하기도 힘들다. 과거 관심을 보였던 현대중공업이나 대한항공 등은 그룹 사정상 다시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사실상 제로다. 1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는 수 년간 자동차 부문의 수직계열화를 올해 완료하고 제네시스 독립 브랜드 론칭으로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결국 한화 외에 딱히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한화의 이탈은 뼈아프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유안타증권은 오버행 부담이 갑자기 생겨나 KAI의 주가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고 삼성증권 역시 추가 오버행 관련 우려가 주가를 제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진투자증권 역시 예상치 못한 대량 대기매물이 발생했다며 주가 상승이 제약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SK증권과 대신증권은 지분 매각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KAI가 여전히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보이는 매력을 갖고 있고, 이미 한화가 재무구조 부담 때문에 KAI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 바 있어 한화의 이탈이 매각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다만 이 경우에도 경영권 프리미엄이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산업은행과 두산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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