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요동 속 신당 세력 통합 움직임도

▲ 김한길 의원은 4일 기자간담회에서“문 대표가 결단을 해줘야 야권의 통합을 위한 시도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제 입장이었지만 끝내 문 대표의 결단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탈당 이유를 밝혔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지난 3일 김한길 전 대표의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계기로 야권 내부에 심상찮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더민주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을 탄생시킨 주역이었던 안철수, 김한길 전 공동대표가 모두 탈당을 결행하게 되자 그간 탈당을 저울질하던 인사들까지 더 이상 당내 잔류할 명분이 없어지면서 덩달아 탈당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벌써부터 정대철 상임고문 등 구 민주계 전직 의원들의 집단 탈당이 초읽기에 들어갔고,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권노갑 상임고문 등 동교동계도 탈당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있어 호남 출신을 비롯한 비주류 대다수의 더민주 탈당 사태가 사실상 가시화되고 있다.
 
이 같은 파장에도 이날 더민주 문재인 대표는 탈당 사태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채 짐짓 태연한 양 총선 승리의 당위성만 피력한 반면 최고위원을 비롯한 주류 의원들은 ‘분당 위기’까지 일으키고 있는 탈당 인사들을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까지 더민주를 겨냥해 분열 사태를 비판하는 한편 야권 분열을 반면교사 삼아 계파 갈등의 단초가 되는 공천 룰에 대해 ‘상향식 공천’으로 입장 정리해야 한다는 뜻을 김 대표가 내비치면서 여권 내에서도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 김한길, ‘더민주 균열 확대’ 박차
 
앞서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비주류 중진인 김한길 의원은 4일 오후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당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한 의원들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준(현역의원 20명)을 이미 넘었다”며 더민주당을 재차 뒤흔들었다.
 
김 의원은 탈당 배경이자 원인으로 문 대표를 지목하며 “문 대표가 결단을 해줘야 야권의 통합을 위한 시도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제 입장이었지만 끝내 문 대표의 결단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그간 문 대표에 결단을 촉구했으나 “작아져도 더 단단하게 가겠다”는 답변만 들었다면서 “더는 통합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게 됐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이런 상황으로 인해 탈당이 불가피했음을 거듭 역설하며 “당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의원 외에도 심각하게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그 규모는 예측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그는 안철수 신당에 합류할 것인지에 대해선 “야권의 총선승리를 위해 제가 어느 자리에 서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좋겠는지 생각하고 있다”며 “주변에 여쭤보면 제게 들려주는 의견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고 유보적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김 의원은 탈당 전날 안 의원과 회동한 데 대해 “가끔 보는데 전체적인 정치상황에 대한 인식에 대해 서로 확인할 부분을 확인하고, 의견을 구하기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마음만큼은 공감대를 이뤘고 약간씩 관점이 다른 부분은 대화를 통해 맞춰가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또 그는 양당 중심의 정치구조를 타파하겠단 자신의 주장에 대해 “양당 중심 정치에서 다당제를 기대하는 건 헛된 일”이라며 “일단 양당제를 허무는 것이 중요하고, 우선 제3지대 신당이 자기 자리를 제대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더민주를 떠나 이날부터 독자 행보를 내딛은 김 의원은 야권 표심의 중추인 호남을 의식했는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는데, 이는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안 의원 역시 마찬가지여서 탈당 이후 처음으로 이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동교동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특히 안 의원과 함께 새해인사차 방문한 동료 의원들(안철수 신당 합류 인사)이 이 여사를 향해 “김 전 대통령의 유업과 정신을 받들겠다”, “여사님이 이끌어준다면 제1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이날 방문의 속내를 내비쳤다.
 
또 안 의원이 이날 방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그리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꼭 이루겠다. 열심히 만들겠다”고 천명하자 이 여사는 “좀 새 소식을 일구기 위해 수고하는 것 같았다. 잘 하실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처럼 이 여사는 싫은 기색 없이 안 의원과 20여분간 비공개 독대까지 하며 지난 1일 문 대표의 예방 당시 시큰둥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는데 이는 호남 민심의 변화를 감지한 이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을 상징으로 한 야권의 대표성을 더민주당이 아닌 안 의원의 신당 측에 부여했단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호남 표를 둘러싸고 천정배, 박주선 등 다양한 신당 세력이 난립한 상황에서 이 여사가 안 의원 측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이들과의 경쟁에서도 한 발 앞서게 됐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그래선지 안 의원은 이날 독대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 여사가)신당이 정권교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는 말씀도 해주셨다”며 자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 더민주, 집단 탈당 움직임에도 ‘요지부동’
 
이렇듯 탈당 세력이 기존 거대정당들의 견제와 압박 속에서도 꾸준히 약진하고 있는 가운데 더민주 내부는 한층 혼란에 빠져든 모양새다.
 
이미 오는 13일 탈당키로 입장을 밝힌 바 있는 주승용 의원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호남의 민심을 얻지 못하는 당과 호남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대선후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며 문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호남 출신 비주류 핵심인사인 주 의원은 “더민주가 왜 호남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지 깊이 고민해봤다”며 “호남은 오랜 기간 차별과 소외를 겪은 ‘아픔’의 땅인데, 패권세력은 호남의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면서 호남정치를 죽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호남 민심은 갈수록 요동치고 있는데 이를 지나가는 바람처럼 대수롭지 않게 폄하하는 세력들이 있다”며 “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선 후보를 지지한 호남의 선택, 역경과 승리의 역사를 토대로 쌓여온 호남정신과 호남 민심을 더 이상 모독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정대철 상임고문 등 구 민주계 전직 의원들까지 가까운 시일 내에 40~50명 규모의 집단 탈당을 예고하면서 더민주 지도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 더불어민주당 전병헌 최고위원은 4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탈당 인사들을 겨냥해“야권이 분열해나가는 모습을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목도했다면 통곡할 일”이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하지만 문 대표 등 더민주 지도부는 갈등 완화에 나서기는커녕 맞불 공세로 방향을 정하면서 친노 주류를 중심으로 한 내부 결속에 중점을 두는 분위기다.
 
특히 당 지도부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와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 등 외부인사를 영입해가면서까지 당 이미지를 쇄신하고 안 의원 탈당의 여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음에도 김한길 의원이 민감한 시기에 ‘탈당’ 후속타를 때려 ‘분당’으로 몰아가는 데 대한 반감을 이날 여과 없이 드러냈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들은 결코 당 분열을 원치 않는다”며 “야권이 분열되면 안 된다고 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계승하는 우리 당의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 야권이 분열해나가는 모습을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목도했다면 통곡할 일”이라고 탈당 대열에 합류 중인 호남 출신 인사들을 겨냥해 이 같은 입장을 내놨다.
 
한 발 더 나아가 추미애 최고위원은 김한길 의원을 향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새정치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민주라는 절차를 약속하고, 연합이란 연대의 정신과 통합의 정신을 약속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창업주가 탈당했다”며 “책임은 남에게 전가시키고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약속을 이행치 않고 떠나는 것으로 면책되면 그건 막장정치”라고 맹비난했다.
 
◆ 野 일각 “야권 분열, 與 어부지리 돼”…통합 시도도 ‘꿈틀’
 
이 같은 상황에 비춰 더민주와 신당 측이 근시일 내에 통합을 이루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결과가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겨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 정의당의 경우 분열을 거듭하는 야권 전체에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의에서 “박근혜 정부가 점점 더 사납고, 후안무치해지는 데에는 야당의 무능과 무기력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문제인식”이라며 “많은 야권지지자들이 일여다야 구도의 전개로 인한 선거참패를 우려하고 있다”고 이런 시각을 여실히 드러냈다.
 
심 대표는 탈당 및 신당창당세력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양당체제 속에서 그 이점을 누리던 사람들이 너도 나도 양당체제 극복을 말하는 것도 신뢰하기 어렵다”며 “야권승리를 위한 자기희생적 결단이 없다면 어떤 명분을 거론하더라도 현재의 이합집산은 금배지를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심 대표를 비롯한 야권 일부의 우려에 공감했는지 ‘통합신당’을 추진 중인 무소속 박주선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8일까지 ‘신당통합연석회의’를 구성해 저를 포함한 신당세력이 한자리에 모여 통합을 약속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통합의 진정성이 있다면 정당체 성격을 갖추기 전에 즉 창당 준비 출범 전에 통합 논의를 시작해서 공동으로 창당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만약 신당통합연석회의가 성사된다면 저는 10일로 예정된 통합신당창당준비위원회 출범식을 중단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했다.
 
만일 박 의원의 제안대로 최소한 현재 난립 중인 신당 창당세력들이 단일정당화 된다면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총선 직전 새누리당에 맞서기 위한 당위성을 내세워 더불어민주당과의 연대까지도 작게 나마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총선이 이제 100일 남짓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과연 이런 결과가 이뤄질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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