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총책 김양건 ‘교통사고사’에 남북관계 촉각

▲ 정부는 30일 오전 김 비서의 사망과 관련해 홍용표 통일부 장관 명의로 ‘8월 남북고위급접촉에서 의미있는 합의를 이끈 김양건 당비서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조의를 표시합니다’라는 내용의 전화통지문을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에 보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남북관계에 있어 비교적 온건파로 분류되며 오랫동안 북한의 대남 정책을 도맡아온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지난 29일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하면서 향후 양측 관계에 있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그간 대남관계를 전담하던 핵심인사이니 만큼 그 파장 때문인지 김 비서의 사인을 두고도 ‘단순 교통사고’라는 견해부터 ‘교통사고를 가장한 피살’이란 주장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통일부 장관 명의로 김 비서의 사망에 조의를 표하는 한편 북한 내 권력서열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분위기다.
 
어떤 인물이 대남업무를 전담할 차기 인사로 내정되는지에 따라 북측의 대남 기조 변화를 읽을 수 있는 한편 우리 측의 대북 전략 수정도 불가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양건 ‘교통사고 사망’ 사실인가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3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위원인 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양건 동지가 교통사고로 주체104(2015)년 12월 29일 6시15분에 73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 북한의 대남총책인 김양건 비서가 지난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3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김 비서는 1942년 평남 안주에서 출생,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당중앙위원회 국제부에서 외교업무를 담당하다가 2007년 초 통일전선부 부장으로 임명된 이래 김정일 집권기를 지나 김정은 시기까지도 대남업무를 총괄하며 크고 작은 남북 대화 등을 성사시키기도 했을 만큼 우리 측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최측근에 대한 잦은 숙청으로 소위 ‘공포 정치’를 한다는 김정은 체제에서조차 자리를 보전했던 그가 이렇듯 의외의 이유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되면서 이번 사건의 이면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벌써부터 조심스러운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날 북측 보도에서 사고 장소나 경위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데다 사고시각이 차량 통행이 적은 새벽시간이고 북한 최고 실세 중 하나로 외제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녀 눈에 띄는 그가 과연 교통사고로 사망했겠느냐는 것인데, 과거 북한에서 고위층 인사들을 상대로 의문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사망하는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에 일견 설득력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특히 김 비서의 전임자로 장기간 대남 정책을 전담했던 김용순 비서 역시 지난 2003년 6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4개월만인 그해 10월 유명을 달리해 이런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교통사고로 위장한 정적 제거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며 김정은에게 숙청된 장성택 역시 생전 두 차례 이상 교통사고로 위장한 암살 시도를 당한 바 있다고 전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장성택이 당했던 교통사고는 당시 최대 경쟁자로 꼽히던 이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사주로 이뤄졌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2010년 8월엔 이 부부장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장성택이 북한 내 권력서열 2위로 급상승하면서 ‘보복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처럼 일각에선 ‘교통사고’ 역시 단순히 보기 힘들다며 김정은 집권 이후 잦은 숙청 등 북한 지도부 내 권력이동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암투 결과로 분석하고 있는 반면 국가정보원은 “현재로선 교통사고 이외의 가능성을 보고 있지 않다. 단순 교통사고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해 한편으론 최근 평양 시내 차량 수가 급증한 데 따른 단순 사고로 비쳐지고 있기도 하다.
 
◆ 통일부·野 대표 ‘김양건 사망’에 조의 표명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이날 김 비서의 사망소식이 알려진지 약 세시만 만인 오전 10시40분경 홍용표 통일부 장관 명의로 ‘8월 남북고위급접촉에서 의미있는 합의를 이끈 김양건 당비서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조의를 표시합니다’라는 내용의 전화통지문을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에 보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북측의 대남분야를 담당한 인사들에 대해 조의나 조전을 전한 건 김대중 정부 시절 김용순 노동당 비서 사망 때를 시초로 이번까지 다섯 차례인데, 김양건 비서의 경우 김씨 일가 3대에 걸쳐 대남정책을 담당해오며 지난 8월 북측의 비무장지대 도발 때도 ‘8·25 합의’의 주역 중 일인으로서 양측 갈등해소에 기여하기도 해 우리와도 각별한 인물이다.
 
특히 그는 지난 2007년 10월 평양에서 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바 있는데, 그해 3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 같은 성과를 내면서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이 같은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인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까지 이날 김 비서의 사망과 관련해 “김 비서의 갑작스런 사망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조의를 표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그러면서 문 대표는 “김 비서는 북한 내에서 나름대로 대남정책과 대외문제에 있어서 합리적인 역할을 해 온 인물”이라며 “10·4선언을 비롯해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 비서는 비단 노 전 대통령 시기는 뿐 아니라 우리 측에서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후에도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접촉을 이어왔는데 2007년 11월엔 남북정상회담 중간 평가차 청와대로 노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인천 송도와 거제도까지 둘러본 데 이어 2009년엔 김기남 선전선동담당을 수행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 조문차 방한해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면담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2014년 10월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국방위 부위원장과 함께 ‘깜짝 방문단’의 일원으로 방한해 우리 측 김관진 안보실장과 류길재 당시 통일부장관 등과 회동하기도 했을 만큼 ‘대남통’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그의 사망에 대해 이날 북측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오랜 기간 우리 당의 위업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김양건 동지를 잃은 것은 우리 당과 인민에게 있어서 큰 손실”이라며 애석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 김양건 사망 파장은? 후임은 누구?
 
이제 우리 측은 그의 죽음이 어느 정도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지에 주목하고 있는데, 일단 김 비서가 8·25 남북합의의 협상 담당자였던 점과 그를 대체할 인물을 찾기 쉽지 않아 단기적으로는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북측과 대화를 진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론 북한이 김정은의 결정에 따라 국정이 운영되는 유일 지도체제를 기초로 하는 만큼 향후에도 ‘8·25 남북합의’에 기반을 둔 현재의 대남 노선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편 김 비서의 사망으로 인한 북측의 당면과제라면 장차 대남업무와 관련해 후임 인사를 선발해야 한다는 것인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당장은 김정은 체제의 2인자이자 남북고위급 접촉에도 대표로 나섰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내정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군 출신 인사를 선임할 것이란 부분도 있지만 김정은의 심중을 가장 잘 읽어내고 수행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노동당 대남비서에도 적합하다는 평이다.
 
이밖에 일각에선 과거 노동당 대남비서를 지낸 김기남 노동당 선전선동담당 비서도 거론하고 있지만 그가 고령인 점을 고려하면 총괄 업무만 담당한 채 다수의 중간 간부들이 대남사업을 도맡는 형태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사망한 김 비서의 전임인 김용순 대남비서처럼 대미업무를 했던 강석주 노동당 국제부장이나 제3의 인물까지도 물망에 올랐는데, 김 비서 장례식의 장의위원 명단에 포함된 김완수, 원동연, 리종혁 등 한동안 남북접촉이나 대화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 다른 관점에서 주목할 부분은 지방으로 좌천된 것으로 알려졌던 실세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두 달간의 공백을 끝내고 복귀해 이번 장의위원 명단에 포함됐단 점인데, 이에 따라 그가 대남사업의 전면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어 이번 사건 이후 과연 남북관계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