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공천룰 합의안 놓고 친박-비박 날선 공방

▲ 9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비박 이재오 의원이 결선투표제를 꼬집어 공천 룰 합의 결과를 비판하자 범친박계인 이인제 의원이 즉각 반박하고 나서면서 여권의 계파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이 날이 갈수록 격화되면서 이를 타산지석 삼은 새누리당 지도부는 일단 당내 갈등의 발화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공천 룰에 대해 지난 6일 친·비박계 핵심인사끼리 만나 합의하는 등 사전 차단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채 며칠 지나지 않아 당내 일각에서 ‘공천 룰 합의 결과’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자 이를 계기로 또다시 계파 간 충돌이 이어지는 것 아닌지 당 지도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친박계에 유리하단 측면에서 논란이 된 ‘결선투표제’와 관련해 9일 비박계 중진인 이재오 의원이 직접 나서 질타하면서 ‘공천 룰 갈등’에 본격 불을 붙인 분위기다.
 
문제는 앞으로 공천룰 특별위원회에서 쟁점 내용을 세세히 정할 것으로 관측되는데 이 과정에서 양측의 해묵은 감정이 폭발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어 일각에선 이날 일어난 갈등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견해까지 내놓고 있다.
 
◆ 비박 이재오 “결선투표제, 당헌·당규에 없어”
 
공천 룰을 둘러싼 갈등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의 비박계 중진 이재오 의원의 발언으로 표면화됐다.

이 의원은 이 자리에서 지난 6일 최고위원회에서의 공천 룰 합의 결과를 겨냥해 “후보경선의 중차대한 문제를 의총에서 말도 하지 않고 기정사실화 하는 건 옳지 않다”고 포문을 열었다.
 
지난 6일 공천룰 회동 당시 친박과 비박 양측은 처음에 공천룰 특위 위원장직부터 경선 룰까지 상반된 입장을 보였는데 위원장직을 두곤 친박계는 최고위원이나 중진 의원이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김무성 대표 측은 비박계인 황진하 사무총장을 내세웠다.
 
또 경선 룰에 있어서도 김 대표는 현역의원에 유리한 ‘여론조사 100%’ 비율의 ‘국민경선제’를 주장한 반면 친박계 측에선 현행 당헌당규대로 여론조사 50%, 당원투표 50%를 고수하면서 여기에 ‘결선투표제’까지 덧붙여 제시했다.
 
결선투표제란 경선 과정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는 후보가 없으면 결선투표를 추가로 진행하는 제도로 현역의원에는 불리한 점이 있지만 청와대 인사들을 비롯해 정치 신인들을 대거 총선에 출마시킬 계획을 갖고 있는 친박계에겐 지지층 분산을 줄이는 방법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입장차를 인식한 양측은 민감한 사안을 속히 매듭짓기 위해 위원장직엔 김 대표를 위시한 비박측 의견대로 황 사무총장을 내정하기로 하고, 경선 룰에 있어선 서청원 최고위원을 필두로 한 친박측 주장대로 여론조사 비율을 현행대로 유지하고 결선투표제도 반영하는 선에서 타협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 차원에서 이날 이 의원은 친박 측에 유리한 ‘결선투표제’가 수용된 것과 관련, “이건 중요한 문제이기에 당헌당규에 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당 당헌당규에는 결선투표제 자체가 없다”며 “절차도 옳지 않고, 특히 수도권에서는 부작용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어 “결선투표에서 떨어진 후보가 본선에서 지원을 하겠나”라며 “진 사람은 지원을 안 한다. 1차에서 떨어진 사람도 당선자를 안 돕는데 2차 결선투표에서 떨어진 사람이 돕겠나”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본선이 따로 있는데 후보 경선을 2번 치르는 제도가 과연 어느 나라에 있는건지 모르겠다”며 “이게 합당한 건지. 물론 장점도 있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결선투표는 문제점이 더 클 수가 있다”고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다.
 
또 이 의원은 현행 당헌당규대로 당원50%, 일반국민 50%로 결정된 경선룰과 관련해서도 “신인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야 하는데 그러려면 원내위원장이 관리하는 당원들의 경선 참여 비율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당원 권한행사를 50대 50으로 하는 건 맞지 않다”고 주장하며 국민 참여비율을 높여야 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친박계를 겨냥해 “특정지역에서 특정인 배제를 위해 공천 룰을 만든다는 게 사실이면 이게 민주정당에서, 특히 국민정당을 표방하는 우리나라에서 공천 때만 되면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해 새로 제도를 만들고 이렇게 하면 당이 되겠나”라고 일침을 가했다.
 
◆ 친박 이인제 “결선투표제, 당헌·당규와 무관”
 
이 같은 이 의원의 주장에 대해 범친박계로 꼽히는 이인제 최고위원이 “결선투표제는 경선의 한 방식으로 이건 당헌당규와 아무 상관없는 문제”라며 “아무 문제없다”고 일축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어 “결선투표제는 여러나라에서도 많이 하고 있다”며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도 결선투표를 하고 있다”며 이 의원의 발언을 맞받아쳤다.
 
그는 또 “결선투표제를 전 지역구에서 다 하는 게 아니라 1차 경선에서 1등한 사람이 과반인 50퍼센트를 넘지 못할 경우 차점자와 마지막 결승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1차 예비경선에서 1위 득표자가 과반을 넘지 못해도 차점자와 오차범위 이상 득표차가 날 경우 결선투표제가 필요없다고 한 비박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 최고위원은 이어 “오픈프라이머리든 당내 경선이든 형식이 문제가 아니다. 경선 레이스 자체가 핵심”이라며 결선투표제가 오히려 오픈프라이머리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이를 듣고 있던 김을동 최고위원이 논쟁에 뛰어들었는데 “1차에서 50퍼센트를 넘는 득표를 할 수 있는 지역구가 몇 군데가 있겠냐. 전무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렇다면 전국에서 결선투표를 해야 되는 게 아닌가. 그러면 더욱 더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견해는 1차 예비경선에서 50% 득표를 올리지 못하더라도 차점자와 득표차가 클 경우, 결선투표 없이 바로 후보로 확정해야 한다는 비박계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인데 그간 친박계로 구분됐던 김 최고위원이 공천 룰 문제에 있어선 결선투표제를 인정치 않는 비박계의 입장을 대변해 이례적으로 비쳐졌다.
 
이날 충돌은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뒤에도 이어질 정도로 격화됐는데 대표적인 친박계로 꼽히면서 당 대변인까지 맡고 있는 이장우 의원은 비공개 회의에서 이재오 의원을 향해 “대통령과 당이 시급한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 공개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건 부적절하다”며 날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은 새누리당 계파 갈등의 정점에 달했던 지난 7월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파동 때는 앞장서서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할 정도로 친박계의 핵심 인물로 자리잡고 있는데 그는 이날도 이 의원의 발언에 격분해 일일이 논박하며 몰아세웠다.
 
이에 정도가 심하다고 느꼈는지 비박계로 분류되는 권성동 전략기획본부장이 “당 대변인의 발언으로는 부적절한 것 아니냐”며 이 의원에 제동을 걸고 나섰고 사태가 험악해질 조짐이 보이자 김무성 대표까지 나서 “오늘은 최고중진연석회의이니 만큼 중진 의원이 한 얘기에 대해 무례하게 발언하지 말라”며 수습하기에 이르렀다.
 
◆ 친박 “전략공천 필요”…비박 “있을 수 없는 일”

 
그럼에도 이날 내내 ‘결선투표제’를 둘러싼 당내 논란이 끊이질 않았는데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바 있는 대표적인 친박 핵심 인사인 윤상현 의원은 9일 친박계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오찬 뒤 기자들과 만나 “방점은 결선투표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몇 명의 후보에서 1등이 과반을 못 넘으면 1, 2등을 붙이자 이게 우리가 받아들이는 결선투표제”라며 오차범위 내에서만 결선투표를 제한적으로 실시하자는 비박계의 주장에 대해 “그건 순위투표 아니냐. 순위투표가 아니라 결선투표를 하자고 최고위원들이 합의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떻게 보면 가장 자유롭고 민주적인 방법 아니냐”라며 “최고의 경쟁력 있는 후보를 뽑는 방법이다. 그래서 순위투표가 아니라 결선 투표를 하자고 한 것”이라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했다.
▲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바 있는 친박계 핵심 유기준 의원은 9일 친박계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회적으로 전략공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한 발 더 나아가 친박계에서는 ‘전략공천’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까지 내놨는데 이날 ‘국가경쟁력강화 포럼’에 함께 참석한 친박계 유기준 의원은 “신인 영입이라든지 인재 영입이 이뤄져야 (총선을) 치를 수 있는데 그건 (공천)특별기구에서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앞으로 공천관리위원회를 구성하면 공천관리위에서 전체적으로 큰 하나의 틀에서 하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거듭 “당헌당규를 보면 우선추천 지역이라든가 결선투표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우리 당의 문을 두드리는 많은 인재들이 들어오도록 문호를 개방하는 게 필요하다”며 전략공천을 시사해 향후 전략공천을 절대 불허하기로 천명한 김 대표 측과의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비박계이면서도 김 대표의 측근이기도 한 박민식 의원은 김 대표가 친박계와 타협해 수용한 ‘결선투표제’와 ‘당원 대 국민 참여비율’에 대해 다른 비박계 의원들보단 한결 완화된 반응을 보였는데 ‘당원 대 국민 참여 비율’에 대해선 “당헌당규엔 50대50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지방선거나 보궐선거할 땐 그 비율을 조정했다”며 갈등할 이유가 없단 입장을 보였다.
 
또 결선투표제에 대해서도 “현역들의 기득권을 상쇄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며 “2, 3, 4등이 우리끼리 뭉쳐서 누구를 밀어주자 이렇게 한다고 국민들이나 유권자들이 일사분란하게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다만 그는 전략공천에 대해선 김 대표와 마찬가지로 용인할 수 없단 뜻을 내비쳤는데 “특정인을 솎아내고 특정인을 내리꽂는, 이런 식의 인위적 물갈이 수단으로 악용되던 것이 전략공천으로 그런 것은 지금 있을 수 없다”며 확고한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이처럼 계파 내부에서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합종연횡하고 있는 복잡한 상황에서 장차 본격적으로 공천 특위가 가동되고 세부 쟁점을 놓고 조율에 들어가는 시점에 이르면 현재 조금씩 표면화되고 있는 친·비박 간 갈등이 극대화될 것이란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공천 룰을 둘러싼 향후 여권의 향배가 주목되고 있다.[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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