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종교인 과세 법안이 드디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논의가 시작된 지 47년 만이라고 하니 그간 정부 수립 이후 반 세기 넘게 공식적으로 세금을 부과받지 않았던 종교인들도 이제 납세의 영역에 편입되는 날이 눈 앞으로 다가 왔다고 볼 수 있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과세 형평주의의 실현에 한 발짝 더 다가간 셈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납세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이번 법안 통과가 화룡정점을 찍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회자될 듯하다. 시행 시기가 즉시 또는 조만간이 아니라 2년 간 유예됐기 때문이다. 종교인 과세 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2018년부터 시행된다. 이미 많은 국민들이 지지하는 법안인 것을 모를 리 없는 정치인들이 기왕 하는 거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시행 시기를 잡았더라면 더욱 큰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당초 정부는 내년 1월부터 즉시 시행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에 벌써부터 여론은 박수가 아닌 질타를 보내고 있다. 좋은 일 하고도 욕을 먹는다는 꼴이라는 말이 제격이다. 공교롭게도 내년에는 총선이, 내후년에는 대선이라는 ‘빅 이벤트’가 예정돼 있는 터라 굳이 시행 시기를 2년이나 유예한 의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질타는 과연 제대로 시행이 되겠느냐는 의구심으로 번지고 있다. 이미 다수의 국민들뿐 아니라 종교계 역시 종교인 과세에 대해 공감대를 표해 왔다. 천주교는 자진 납세를 해온 지 오래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다. 개신교 역시 대형 교회들인 자진 납세를 해 왔다. 결국 개신교 일부에서 반대해왔을 뿐인데도 종교인 과세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가 이렇게 힘들었던 것이다.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어떠한 공약이 나와 시행이 또 다시 유예될지 우려된다.
 
이미 우리는 과거 수 차례 종교인 과세 논의가 무산되는 과정을 지켜본 바 있다. 1968년 초대 국세청장이 종교인에게 세금을 걷겠다고 공언한 후 40여년 간 관련 논의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2006년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많은 국민들의 요구와 함께 논의가 탄력을 받기도 했지만 국회는 미적대기만 했다.
 
지난해에도 국회 기재위 조세소위에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지만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다.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된 법안에 대해 국회 부의장이라는 사람이 “저승 가서 무슨 낯으로 하나님과 부처님을 보겠나”라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고 있는 것이 현재 국회의 현실이다. 정말 2년 뒤에 시행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종교인 과세로 인해 확보되는 세수는 사실 별로 안 된다. 기재부 분석에 따르면 과세 대상자는 전체 종교인의 23만 명 중 5만 명도 채 안 되고, 추가 세수 역시 연 100억원 가량에 그친다. 하지만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조세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종교인 과세 법안은 반드시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시행돼야 한다.
 
이미 많은 서민들은 갖가지 세금에 시달리면서 서민 증세를 원망하는 곡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치권이 서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준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반면 일부 종교인들이 내는 목소리에는 참으로 민감한 모습이니 세금을 내는 사람만 바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 개세주의를 적용하는 데에 47년이나 걸렸다는 것도 놀랍고, 가까스로 통과시킨 법안이 2년이나 지나야 시행된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지금도 일부 보수 개신교 재단은 반대의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75%의 국민들은 물론 기독교인들조차 72% 이상이 찬성한다고 하는데 국회가 도대체 얼마나 더 미적댈지 궁금하기만 하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