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SK’ 의혹 증폭시키는 영국계 펀드 세력

영국계 연기금 펀드인 '헤르메스(Hermes Investment Management Limited : HIML)'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 4일까지 삼성물산 주식 777만2000주를 장내에서 매수해 5% 지분을 확보했다고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이에 따라 헤르메스는 삼성생명을 제치고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부상했다.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지분 취득은 인수·합병 의도? 헤르메스가 밝힌 취득 사유는 '투자목적'이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소버린이 SK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SK(주)의 지분을 취득할 때도 취득 사유는 '투자목적'이었기 때문. 또한 헤르메스가 템플턴 등 외국계 주주들과 함께 소버린 측의 SK(주)경영진 퇴진에 가담하기도 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의 삼성물산 지분율이 14.88%에 불과해, 헤르메스의 지분 취득이 M&A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만약 헤르메스가 M&A 의도를 갖고 있다면 삼성그룹은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4%, 제일기획 12.6%, 삼성정밀화학 5.6%, 삼성테크윈 3.8% 등 10여개 계열사의 지분율 보유한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 더군다나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실제적인 최대주주다.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는 삼성생명이지만, 의결권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실제 지분율에서는 삼성물산이 1대 주주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삼성그룹에서 삼성물산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지만, 삼성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은 그리 높지 않다. 현재 삼성그룹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삼성생명 4.8%, 삼성SDI 4.7%, 이건희 회장 1.38% 등 총 14.88%에 불과하다. 이처럼 헤르메스가 삼성물산 최대주주로 부상한 것에 대해 삼성그룹은 아직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지난해 말 헤르메스가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지만 일반적인 회사 정보는 지분구조를 묻는 평범한 IR 차원이었다"며 "아직 이들의 정확한 의도에 대해 파악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전달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난해 JP모건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했다고 신고한 뒤 매각한 적이 있고 2000년에는 템플턴이 14% 정도 확보했다가 다시 매도한 적이 있어 아직 위기를 느낄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SK와 삼성은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다" 증권 관계자들 가운데서도 헤르메스가 연기금 펀드임을 감안하면 지분 매입을 장기투자나 자산가치를 노린 것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 자산가치가 5조원 가까이 되는 반면, 시가총액은 2조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저평가 된 자산가치를 보고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적개선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관계자는 "SK와 삼성은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다"며, "삼성은 자금력이 SK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M&A나 경영권 분쟁에 대해 크게 우려할 것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버린의 경우 SK그룹이 어려울 때 들어왔지만 현재 삼성그룹은 상황이 다르다"면서 "설사 헤르메스가 M&A의도를 갖고 주식을 사들였다고 하더라도, 그룹의 막강한 자금력을 통해 무난한 경영권 방어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헤르메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헤르메스는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자산운용회사로 현재 200여 군데의 연기금, 보험회사, 정부기관 등에서 440억파운드(약 94조원) 규모의 자금을 맡겨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헤르메스는 지배구조 문제로 저평가 된 기업의 지분을 5% 전후로 사들인 뒤 이를 발판으로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요구하거나 M&A 등을 시도, 20% 전후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헤르메스는 올해 들어 국내 기업에 대해 집중적인 공략을 하면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헤르메스가 올해 들어 5% 이상 지분율을 취득한 상장사는 현대해상화재보험 7.38%, 새롬기술 8.4%, 삼성물산 5% 등 3개사이다. 이밖에도 헤르메스는 현대산업개발 5.37%, LG산전 7.04% 등의 주요주주로 등재돼 있다. 이러한 헤르메스의 정체 때문에 전문가들은 "헤르메스가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국내 M&A 및 지배구조개선 펀드 시장에 뛰어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헤르메스는 국내 기업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 특히 올 1월부터 새롬기술 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입, 의도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낸 적도 있다. 당시 헤르메스는 지분율을 8.4%(304만2936주)까지 끌어올린 바 있다. 새롬기술은 헤르메스와의 면담 결과, 지분매입 의도가 단순 투자목적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새롬기술의 최대주주 지분율이 특수관계인을 합해도 17%에 못 미친다는 점을 감안해 M&A의도를 갖고 접근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바 있다. 헤르메스는 LG산전 지분 7.04%(211만2000주, 지난해 11월13일 기준)도 보유하고 있으며 한솔제지 지분은 7.76%(338만5222주)를 확보, 최대주주로 올라선 상태다. 올 초에는 현대해상화재보험 66만주에 대한 장내매입을 통해 7.38%의 지분율을 확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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