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사옥이 위치한 서울 상수동은 기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밥집’이 많지 않다. 젊은이들의 거리 ‘홍대’ 인근이어서 그런지, 2030세대들이 좋아하는 이색적인 메뉴들의 식당이 주를 이룬다. 집에서 먹는 ‘밥상다운 밥상’을 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밥집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맛있는’ 밥집은 아직 찾지 못했다. 덕분에 회사 근처에서 식사를 하게 될 때면 마땅한 곳을 찾느라 고민 아닌 고민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최근 기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순댓국밥집을 발견하고 외근이 없을 때마다 찾게 됐다. 프랜차이즈 브랜드임에도 음식에는 정성이 담겨 있었다. 이 집의 뽀얗고 얼큰한 국물과 푸짐한 내용물은 전날 과음의 후유증을 든든하게 달래줬다.
 
그런데 최근 이곳을 찾았다가 크게 상심했다. 가게는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생겼다. 망연자실한 기자의 머릿속에는 최근 ‘자영업자 생존율’에 대한 뉴스가 스쳐갔다.
 
뉴스에 따르면 직장인들에게 회사 밖 세상은 드라마 ‘미생’의 말처럼 지옥이었다. 드라마에서는 다른 의미의 지옥이었겠지만 자영업자들의 생존율을 놓고 보면 그야말로 ‘헬조선’이다.
 
국세청 조사결과 2004∼2013년 10년간 개인사업자 창업은 949만개, 폐업은 793만개를 기록했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생존율은 고작 16.4%에 불과하다. 10명 중 8~9명은 문을 닫은 셈이다.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베이비붐 세대가 생계유지 수단으로 창업을 선택하는 횟수가 잦은 만큼,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3·5·7포 등 이른바 ‘N포 세대’들 일부는 취업을 포기하고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지옥불’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삶마저 포기하게 됐다.
 
높은 폐업율은 경기불황 등의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구조적으로 이같은 사태를 양산한 점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예가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이다. 거대 자본과 다수의 유통망을 무기로 한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은 자영업자들에게는 맨손으로 전쟁터에 나서는 것과 다름없다.
 
애초에 게임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일까. 이들 대부분이 선택하는 건 시쳇말로 ‘안전빵’인 치킨집. 그러나 전세계 맥도날드 매장 수(3만5439개)보다 많은 치킨전문점(3만6000여개)은, 꾸준한 수요는 있지만 높은 경쟁률로 인해 성공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더구나 음식점 창업 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피땀으로 개발한 신메뉴는 후발업체들의 ‘베끼기’에 공멸하고 마는 양상이다. 최근 ‘스몰비어’, ‘밥버거’, ‘통오징어튀김’ 등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자, 너도나도 간판만 비슷하게 걸고 가게를 차려대는 통에 메뉴 개발자는 속이 터질 노릇이다.
 
자영업자들의 창업 성공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전통시장 보존구역 도입이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등 대기업에 대한 사업영역 보호에 치중된 점이 없지 않다.
 
정부는 좀 더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창업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면, 현재의 극심한 취업전쟁도 한풀 꺾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정부만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환자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다면 의사가 아무리 훌륭해도 병은 나을 수 없다. 자영업자들 스스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야 창업 실패율을 낮출 수 있다.
 
이상은 은퇴 후 자영업을 꿈꾸는 기자가, 즐겨 찾던 밥집이 사라진 데 대한 아쉬움에 내뱉은 한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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