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석 유지하며 정치개혁’ 명분에 ‘오픈프라이머리’까지 관철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새누리당의 오픈프라이머리와 자당의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일괄타결하자는 빅딜을 제안하면서 새누리당의 계산이 복잡해진 모습이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새누리당의 오픈프라이머리와 자당의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 일괄타결 하는 방식의 ‘빅딜’을 제안하고 나서면서 정치권 셈법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반대 입장으로 가닥을 잡았던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일각에서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새정치연합의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확실한 반대 입장을 밝혀왔었다. 국회의원 정수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새정치연합 혁신위도 이를 감안해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전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표가 정수 300명을 유지하면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구성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나서면서 얘기가 달라지게 됐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지역구도 타파 등의 명분을 가지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마냥 반대만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무성 대표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버린 오픈프라이머리를 무리 없이 도입할 수 있게 된다는 점도 생각해볼 여지를 만들게 됐다. 완전한 빅딜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분 타협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文, 돌연 비례대표제-오픈프라이머리 빅딜 제안
여름휴가를 다녀온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저와 우리 당은 망국적인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방안으로 권역별비례대표제를 오래전부터 제안해 왔다”며 “반면, 김무성 대표와 새누리당은 공천제도의 혁신방안으로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표는 그러면서 “선거구획정위원회는 8월 13일까지 국회가 획정기준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 3가지를 여야가 함께 논의해서 일괄타결할 것을 제안한다”고 사실상 ‘빅딜’을 제안했다.

문 대표는 이어, “선거구를 재획정하는 이번 기회에 권역비례대표제 도입을 결정하지 못하면 내년총선에서 시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며 “논의방식은 정개특위 내 논의든, 여야 대표가 만나든 어떤 형식이든 좋다”고 말했다. 또, “새누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수용한다면, 우리 당도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당론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문 대표는 “우리 당은 권역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서 의원정수 확대 없이 현행 의원 정수를 유지하면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배분만 조정하자는 중앙선관위의 안에 찬성한다”면서 “여야가 각자의 방안만 고집하지 말고, 선관위의 제안을 중심으로 통 크게 합의할 것을 제안하면서 새누리당의 조속한 호응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표의 갑작스런 제안에 이종걸 원내대표는 일단, 지도부와 사전 교감이 없었다는 점을 밝혔다. 딱 잘라 좋다 나쁘다 얘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 원내대표는 “아직 심층적인 생각이나 토론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픈프라이머리는 공천제도고, 권역별 제도는 선거제도”라며 “이를 같은 평면에서 거론하기는 어렵고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날 오후 故 박상천 전 대표 빈소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딜을 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서로 입장을 나누고 필요하다면 서로 협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거듭 “정당명부식 권역별비례대표제의 태생적 확산 과정은 오픈프라이머리와 전혀 다르다”면서 “하여튼 선거제도든, 공천제도든 결합돼 한국 정치가 발전하고, 국민주권주의와 의회주의를 잘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내대표를 제외한 지도부는 대체로 문재인 대표의 제안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수 대변인에 따르면, 당 최고위는 이날 오후 국회 정치개혁특위 소속 야당 의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이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간담회는 문재인 대표의 갑작스런 제안에 지도부와 조율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불거지면서 마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간담회 자리에서는 문 대표의 제안에 아무런 이견 없이 공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의원 정수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민적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안인데 국민적 반감이 크다는 점에 인식을 함께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수 대변인은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일괄 타결하자는 것은 여야 대표든, 정개특위에서든 한 테이블에서 동시에 논의하자는 것”이라며 “(빅딜 등) 주고 받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與, ‘수용 불가’ 우세
문 대표의 제안에 새누리당은 즉각적으로는 거부 입장을 밝혔다. 황진하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야당이 의원정수를 360명으로 하자, 390명으로 하자는 등 엄청나게 숫자를 늘리자는 안이 나와 국민의 공분을 사고 실망시켰다”며 “이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인식한 것으로 생각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당이 우리당이 제안한 오픈프라이머리를 고려할 수 있다고 한데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겠다”고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황 사무총장은 “지금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같이 이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선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지역 균형과 군소정당 등장이라는 이점은 있지만, 비례대표제라는 고유의 특성을 퇴색시킨다는 점에서, 또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게 되면 부득이 의원정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수용하는데 대해서는 환영하지만,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은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사실상 빅딜 제안을 거부한 것. 황 총장은 “따라서 이런 점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 야당에서 좀 더 심도 있는 논의를 한 다음에 다시 제안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 김무성 대표는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해 절대 거부감을 드러내며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특위 차원에서 논의해 의원 정수 확대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면 수용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뒀다. 사진 / 홍금표 기자
김무성 대표는 일단 거부하면서도 ‘검토하겠다’는 여지를 남겼다.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무성 대표는 문재인 대표가 빅딜을 제안한 직후에는 기자들과 만나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 같이 말하면서도 “모처럼 야당 대표가 제안한 것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여지는 남겨뒀다. 신의진 대변인 역시 “(문 대표의 제안을) 거절한 게 아니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무성 대표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우선,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유지한다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원 정수 확대를 전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반대해왔던 입장을 그대로 견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울러 이 같은 방안은 선관위 제안이기도 하며,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현실적 최선의 제도 개선 방안이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기도 하다. 야당의 제안을 거부할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치개혁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선 중진 정병국 의원은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우리 당에게 유리한 측면만 가지고 정치개혁을 하면 그건 정치개혁이라고 할 수 없다”며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지금 현재의 비례대표만 가지고 시행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도가 도입되면 특히 영남지역에서 지역구도 변화가 불가피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누리당이 실질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과반 의석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게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당내 분위기는 ‘수용 불가’ 입장이 우세하다.

이런 고민 속에서 김무성 대표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구미가 당길 수 있는 제안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친박 핵심 의원은 이에 대해 “김 대표가 겉으로는 반대했지만 어떡하든 딜이라도 해보고 싶은 구미가 매우 당기는 제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픈프라이머리는 김 대표의 트레이드마크가 돼 버렸잖냐”며 “오픈프라이머리만 통과시키면 김 대표가 정치판 개혁의 아이콘을 선점할 수 있다는 유혹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핵심부에서는 권역별비례대표제는 무조건 반대한다는 것이 방침”이라고 전했다.

◆전향적인 金, 해볼 만하다?
김무성 대표는 결국 6일, “국회 정치개혁틀별위원회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우리 실정에 맞는 안으로 조정하는 논의를 하자”는 정리된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원래 취지가 좋고, 야당 대표의 제안인 만큼 여러 방안을 놓고 논의하자”며 이 같이 밝혔다. 사실상 문 대표의 빅딜 제안에 수용적 자세를 보인 것이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선관위가 제안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현행 선거제도와 정당 지지도, 의식 비례성의 편차가 큰 점을 해소하고 지역별 인구수 의석비율이 맞지 않는 것을 해소하는 등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다”며 “그러나 전문가를 위한 기존의 비례대표제의 의미는 퇴색되고 특히 의석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제도이므로 실제 적용이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여전히 고심의 흔적을 드러냈다.

이어, “내년 총선부터 적용될 선거 제도와 관련해 새누리당은 국민은 항상 옳다는 원칙하에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며 “오늘부터 오픈프라이머리를 국민공천제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덧붙여 말했다.

김 대표는 “국민과 당원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리는 공천 행정은 정치개혁의 결정판이자 원칙으로 다른 제도와 맞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의원 정수를 300명 이상으로 늘리는 것도 국민 대다수 정치권을 어떻게 볼지 생각하면 (반대)”라고 말했다.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거듭 “권역별 비례대표는 좋은 취지지만 이걸 하면 의석수가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선관위에서는 (지역구를) 200 대 (비례대표) 100으로 하라고 했지만 그게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의석이 늘어나면 국민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면서 “원치 않는다는 게 아니라 절대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김무성 대표의 이 같은 부분 수용 의지에 문재인 대표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문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정개특위든 여야 대표가 만나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문 대표는 “결국 정치혁신에서 중요한 사항이 우리의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타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혁신과제가 어디 있냐”며 “새누리당이 진정으로 의지가 있다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국민들의 요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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