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결국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통과됐다. 이날 84.73%라는 높은 출석률을 기록한 임시 주총에서 합병안이 담긴 1호 의안은 수검수를 거듭한 끝에 69.53%가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써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추가 지분을 매입하면서 촉발된 ‘삼성물산 사태’는 막을 내렸다.

물론 엘리엇 측이 주총 결의 무효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일련의 가처분 소송들에서 모두 삼성물산이 승리를 거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판세를 뒤집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당초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 정국이라는 분석이 대세였음을 감안하면 70%에 가까운 찬성률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합병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55.72%가 필요했지만 삼성과 뜻을 같이한 소액 주주들은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까지도 대거 삼성 측의 ‘안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예상치 못한 높은 찬성률에 삼성 측은 매우 고무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삼성물산 사태’가 우리 사회에 남긴 많은 숙제들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삼성물산은 소액 주주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향후 주주가치 제고에 힘쓰겠다는 약속을 거듭했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민원을 제기하던 소액주주를 조직적으로 감시하고 미행한 게 불과 4달여 전이다. 미행 사실이 알려지자 삼성물산이 군더더기 없이 재빠른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내놓으면서 사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소액주주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는 대대적인 광고전을 보면서 거북함을 느낀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소액주주를 위한다는 그 마음이 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합병 반대가 매국이고 합병 찬성이 애국이라는 ‘애국심 마케팅’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당초 이번 합병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불법으로 싸게 취득한 구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바탕으로 상장을 통해 수 조원을 벌고도 이를 승계 구도에까지 이용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와중에 이를 반대하면 매국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논리까지 대두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국익이 무엇인가도 생각해 볼 문제다. 특히 의결권위와의 내부 갈등까지 겪은 단일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는 과정은 과연 재벌 지키기가 국익 지키기인지 혼란을 주고 있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국민이 낸 돈으로 운영되지 않는가. 국민연금이 명확하게 기업 가치 향방에 대한 분석 결과를 검토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기는커녕 의결권위와의 갈등조차 쉬쉬하는 모습을 보이자 엘리엇의 문제 제기 이전의 행보들에까지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엘리엇에 많은 소액주주들이 동조한 것과 한국투자공사가 엘리엇에 5000만달러나 투자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재벌 지키기가 국익 지키기라는 ‘국익 프레임’이 먹히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오너 일가의 이익을 지켜주는 것이 당장의 안정을 담보해줄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지배구조의 후진성과 경제 체제의 낙후성을 개선할 기회를 놓치는 악수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숱한 화제를 뿌린 삼성물산 사태는 엘리엇이 추가 지분을 취득해 7%가 넘는 지분을 확보했다고 공시한 지 44일 만에 마무리됐다. 하지만 승리에 취한 삼성 측이 잊어서는 안될 것들이 너무 많다. 엘리엇은 이미 향후 각종 경영 사안에 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이고 곳곳에서 감지된 우리 사회의 비판적인 조언들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삼성의 역사에서 이번 합병이 오너 일가의 배를 불리는 합병이 아닌, 삼성공화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경제 전반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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