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만 최대 3조원 적자 예상…의도적 은폐 의혹 솔솔

▲ 대우조선해양의 숨겨진 부실 규모가 2조원이 훌쩍 넘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연임 의지를 드러내던 고재호 전 사장과 반대 여론에도 사장 교체를 추진해 온 산업은행 홍기택 회장이 부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 홍금표 기자

지난해 조선 ‘빅3’ 중 유일하게 실적 호조를 보인 대우조선해양에 숨겨진 부실 규모가 2~3조원이나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금융권이 패닉에 빠진 가운데,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 고재호 전 사장이 이미 이를 알았을 것이라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16일 KDB산업은행 등의 채권단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2분기에만 최대 3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적자 규모는 지난해 해양플랜트 부문 손실 등으로 창사 이래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세계 최대 조선사 현대중공업의 연간 적자 규모가 3조2495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분기 적자로는 일반적으로 상상하기도 힘든 수준이다. 삼성중공업도 해양플랜트 예상 공사 손실 5000억원 등을 공사손실 충당금으로 반영해 지난해 전년보다 80% 감소한 183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이 같은 손실 규모는 주로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설계 변경으로 인해 공정 지연이 발생해 막대한 비용이 추가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2011년 반잠수식 시추선 4척을 척당 약 6000억원에 수주했지만 평균 10개월~1년 가량 지연되면서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덮친 ‘악성 해양플랜트’의 저주가 대우조선해양도 덮친 셈이다. 지난 6월 1척의 인도가 완료됐지만 이미 상당 수준의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2척은 오는 3~4분기 인도 예정이고 나머지 1척은 내년 1분기 인도될 예정이다.

여기에 자본잠식 상태로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 있는 자회사 루마니아 망갈리아조선소의 부실과 9조원에 달하는 장기매출채권 중 회수가 불가능한 금액도 포함된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털어내지 않은 손실분에 추후 해양플랜트 3기에 대한 손실분까지 반영해 충당금을 쌓을 경우 적자가 3조원대까지로도 기록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유동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점에서 채권단은 고강도 구조조정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핵폭탄’급 소식에 조선업계는 물론 채권 시장과 금융권은 패닉에 빠졌다. 앞서 정성립 사장이 미반영 손실이 있음을 예고하면서 반영되지 않은 손실이 어느 정도는 2분기 실적에 반영될 것이라는 예상이 돌았지만, 이 정도 규모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새롭게 수장으로 취임한 대우조선해양 정성립 사장은 지난달 25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작년에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상당히 많은 적자를 발표했는데 대우조선해양만 잘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면서 “부임 후 가장 먼저 회사의 실상을 파악했는데 해양 쪽에서 어느 정도 손실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 파악돼 2분기 실적에 자연스럽게 반영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고재호 전 사장, 연임 위해 숨겼다?
파장이 확산되면서 전 경영진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산업은행과 고재호 전 사장을 위시한 대우조선해양 전 경영진들이 부실 징후를 일부러 숨긴 것 아니냐는 얘기다.

가장 유력한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고재호 전 사장이다. 당초 고재호 전 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연초까지 산업은행이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차기 사장 선임이 지연되던 상황에서도 내외를 불문하고 연임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만큼 견실한 성장세와 무난한 노사 관계 등으로 안팎에서 신뢰가 높았다.

지난해 업황 불황에도 LNG선 등 고부가가치선 수주에서 호조를 보인 대우조선해양이 발표한 연간 실적은 4700억원의 영업이익과 330억원의 순이익이다. 함께 ‘빅3’를 구성하고 있는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크게 고전했던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실적은 홀로 돋보였고 고재호 전 사장도 찬사를 받았다. ‘빅3’ 중 유일하게 수주목표를 달성했던 것도 대우조선해양뿐이었다.

노사 관계에서도 고재호 전 사장은 빛을 발했다. 차기 사장 선임이 지연되던 당시 낙하산 인사를 경계하던 노조 측이 고재호 전 사장의 연임을 지지하며 산업은행의 고심을 깊게 만들기도 했다. 산업은행이 왜 굳이 교체를 검토하고 있냐는 안팎의 비난 섞인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현재 고재호 전 사장에 대한 평가는 드라마틱한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증권가에서는 고재호 전 사장이 연임을 위해 의도적으로 부실을 은폐해 온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지난해 실적이 조선 ‘빅3’ 중 유일하게 호조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을 때 증권가에서는 고재호 전 사장이 연임을 위해 부실을 숨겼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업계에서는 이미 지난해 조선업계 빅3 중 홀로 실적 호조를 보였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수면 위로 드러난 부실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면서 조선업계와 금융권 등이 연달아 패닉에 빠진 상태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연임 의지 독 됐나…반론도 제기돼
사실 고재호 전 사장은 사장 선임 지연 사태를 겪으면서 말을 아꼈지만 연임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3월말 임기가 만료된 직후 고재호 전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최고경영자 메시지에서 “현재의 상황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이러한 상황이 이른 시일 안에 정리되기를 간곡히 소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이를 두고 고재호 전 사장이 연임 의지를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간간히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이 임시 사장 체제로 돌입한 4월 1일 발표된 인사조직 개편안도 뒷말을 낳았다. 고재호 전 사장이 박동혁 부사장과 고영렬 부사장 등 당시까지 후임 사장으로 유력히 거론되던 2명을 포함한 부사장 4명을 모두 보직해임했기 때문이다. 당시 노조는 외부인사의 낙하산 인사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며 내부승진을 주장하던 상태였는데, 이 인사 조치로 내부 승진자로 거론되던 경쟁자가 모두 자리를 잃었다.

이에 따라 당시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외부 인사를 보내기 전에 갈등 요소를 미리 제거한 것이라는 추측과 더불어 고재호 전 사장이 연임에 걸림돌이 되는 경쟁자들을 미리 쳐낸 것이라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이후 차기 사장에 대우조선해양 출신이었던 정성립 당시 STX조선 대표가 부임하면서 산업은행 제거설은 힘을 잃고 경쟁자 제거설이 힘을 얻었다. 이후 고재호 전 사장은 산업은행에 차기 사장 후보로 지원해 면접을 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부사장단 교체라는 ‘무리수’까지 뒀던 고재호 전 사장의 강력한 연임 의지가 이번 사태를 야기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현재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 측은 이미 전임 경영진들이 대규모 손실을 초래하게 한 원인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거나 횡령·배임 또는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의혹이 반결될 경우 손해배상 및 민·형사 고발까지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주인 없는 회사여서 일부러 숨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미 건조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마지막에 한꺼번에 반영하는 것 자체가 분식회계”라고 지적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경영진 교체 시점에서 대규모 손실을 반영하는 건 조선업의 특징이지 최고경영자(CEO)의 특별한 의도로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다. 특히 해양 플랜트의 특성상 실적을 뒤늦게 회계 처리하는 건 드물지 않다는 얘기다.

아울러 산업은행 출신이 대우조선해양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있는데 사장이 혼자 의도적으로 부실 반영을 미루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 CFO에는 산업은행 김열중 부행장이 임명됐고 이전 CFO였던 김갑중 전 부사장도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이었다.

◆“산은이 몰랐을 리 있나”…책임론 급부상
아울러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홍기택 회장 역시 이 같은 부실을 몰랐을 리 없다는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다.

특히 업계는 산업은행이 지난해 말부터 실적 호조를 이끌었던 고재호 전 사장을 교체한다는 방침을 세우자 안팎에서 산업은행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음에도 이를 묵묵히 밀어붙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주가 하락 책임설, 지난해 초 발생한 임직원들의 대규모 비리에 대한 책임설, 매각 대비설 등 온갖 추측이 수 달여간 쉴 새 없이 쏟아졌지만 어느 것 하나 납득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결국 산업은행이 조 단위의 부실이 은폐된 정황을 포착하고 고재호 전 사장의 교체를 추진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대우조선해양 경영진 곳곳에 산업은행 출신이 포진해 있었다는 사실도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CFO는 산업은행이 최대주주가 된 이후 줄곧 산업은행 출신이 맡아 왔고 등기임원에도 이영제 산업은행 기업금융4실장이 비상임으로 재직 중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31.46%를 보유한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이다.

이처럼 회계를 책임지는 CFO를 지난 5년 이상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들이 맡아왔기 때문에 재무상태를 손바닥 보듯이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아무리 매출 규모가 크더라도 2조원대의 부실은 회계전문가인 CFO의 묵인 없이 숨길 수는 없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산업은행 측은 수 차례 경영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밝힌 만큼 묵인하거나 감춘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산업은행은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대우조선해양에 부실 덩어리인 STX프랑스의 인수를 의뢰해 대우조선해양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꼬리 자르기’에 나선 산업은행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산업은행 책임론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의혹대로라면 이미 사실을 파악하고도 은폐한 잘못이 있고, 해명대로라면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국책은행으로서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이같은 사실을 몰랐다면 기업을 지원해야 하는 국책은행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으로서 대우조선해양을 관리해 온 산업은행 책임론도 급부상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라며 은폐 의혹에 손사레를 치고 있지만, 이 해명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부실 관리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조선업계·금융권, 도미노 쇼크에 패닉
파문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조선업계와 채권시장, 금융권 등은 연쇄적인 쇼크를 겪고 있다.

우선적으로 주가가 이틀 간 크게 빠지면서 ELS(주가연계증권) 투자자들은 소위 ‘멘붕’에 빠졌다. 대규모 부실 은폐 사실이 알려진 지난 15일 하루에만 주가가 하한가로 추락해 30%가 빠졌고 다음 날인 16일에도 6.51% 하락했다. 14일 1만2500원이었던 주가는 8180원으로 수직낙하했다.

이미 지난해부터 업황 악화로 대부분의 ELS 상품들이 50% 내외 수준으로 설정된 녹인(원금손실가능구간)에 진입했던 상황에서 주가의 폭락은 치명타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이 편입된 ELS 상품 21개 전부가 녹인 구간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ELS 상품들이 손실을 내지 않기 위해서는 대우조선해양의 주가가 지금보다 2~3배 이상은 올라야 하게 됐다. ELS 상품 규모는 총 224억9200만원 규모로 대부분 2만4700원~3만7000원 사이에서 발행됐다. 16일 기준 손실폭은 76%에 달한다.

은행권들도 갑작스레 초비상이 걸렸다. 금융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국내 은행들의 신용공여액은 총 22조원으로 수출입은행 12조5000억원, 산업은행 4조1000억원, 농협 1조6000억원, 통합을 앞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도합 1조95억원, KB국민은행 8967억원, 우리은행 5469억원, 신한은행 4087억원 등이다. 환매조건부채권과 미확정지급보증,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등은 빠져 있다.

연초 대우조선해양이 발행한 회사채를 사들였던 채권투자자들도 패닉 상태다. 올해 상반기 대우조선해양은 고금리를 내세워 3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설이 제기되면서 금리가 3.276%에서 12.4%까지 급등했다.

지난 15일 가격은 장 막판 투매가 일어나면서 발행가 대비 20.4% 낮은 7960원까지 주저 앉았다. 일각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이미 부실 규모를 알고 있었음에도 올해 상반기에 회사채를 발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회사채 대표 주관을 맡았던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주관사단도 뭇매를 맞는가 하면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2년 연속 감사의견 ‘적정’을 제시한 안진회계법인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지난해부터 대우조선해양을 추천해 온 증권사와 애널리스트에 대한 비난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이밖에 금융당국은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설을 살펴보기 위해 실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초비상 상태인 신용평가사들 역시 뒤늦게 신용등급을 내리면서 비난을 사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은 대우조선해양 주식을 대거 처분하며 탈출에 나섰다. 15일 기관투자가들의 순매도 물량은 767만1106주로 734억2400만원 규모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나섰다. 다만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워크아웃까지는 현재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자율협약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다만 산업은행은 워크아웃은 물론 자율협약도 없다고 못박았다. 금융권에서는 산업은행의 유상증자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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