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21’ 세계적 장애인 복지연구 단체로 키워나갈 것

전신마비 장애극복, 국제장애인복지네트워크 꿈꾸는 에덴복지재단 정덕환 이사장 “몸이 멀쩡할 때는 왜? 남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는가?” 사회복지법인 에덴복지 재단 정덕환 이사장은 각종유도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던 국가 대표 유도 선수 였다. 군 제대 후 72년 연세대에 복학한 그는 그날 도장에서 훈련을 하다 대련 상대가 그를 매트에 업어 친 뒤 목뼈가 부러졌다. “사흘 못 간다”던 의사 진단과 달리 그는 석 달을 살았다. 그리고 엉덩이뼈를 잘라 목에 이식하는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다. 그에게 쥐여진 것은 장애인수첩. 전신마비 지체장애 1급, 목 아래는 두 팔을 제외하곤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그의 ‘모든 것’이었던 유도와 그렇게 작별했다. “40년 전 저는 국가대표 유도선수 7년간 활약한 일반인이었습니다. 당시 화려한 미래를 약속받았던 유망선수였었죠. 그러나 사고는 누구에게나 올수 있는 것처럼 연습도중 부상으로 경추4~5번 골절로 전신마비 지체장애1급이 되었습니다. 태산도 옮길 것 같은 젊은 나이에 장애인이 되었으니 그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러나 불굴의 의지를 타고난 정덕환 이사장에게는 ‘절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나를 다치게 했던 동료가 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하여 메달을 따고 나라를 빛내는 모습들은 나에게는 절망을 넘어 제 처지에 대한 자책으로 비통함을 가져다주었죠. 방황과 절망의 세월을 보냈지만 그 시간은 ‘잘 나가던 시절의 정덕환이 아닌 현실의 나’를 볼 수가 있는 시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저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준 것은 당시 자주 오가던 길에 원호대상자 의용촌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나라를 위해 희생당한 자신들의 처지를 무기삼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그 분들 나름대로 재활을 위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아가 나와 같은 장애인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혹시 내 자신이 나만의 부귀영화만을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몸은 이렇지만 나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 겠다 며 장애인 재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덕환이사장은 “몸이 멀쩡할 때는 왜? 남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는가?”가 하는 후회를 아직도 하고 있다고 한다. 장애를 갖은 몸으로도 남을 위해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아 갈수 있는데 그 때는 왜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라고 아쉬워 하는 정덕환 이사장은 그냥 흘러갔던 시간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열정적으로 장애인 복지 개선에 힘쓰고 있다. 이미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만이 아니였기에 포기 할 수 없었다. 유도의 꿈을 버리지 못한 그는 모교에 코치자리를 부탁하는 등 장애인의 비애를 뼈져리게 느끼며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남을 돕기 위해 자신을 제자리로 옮겨 놓아야 했다. 서울 구로동에 구멍가게 ‘이화식품’을 내고 1983년 500만 원이 모이자 그는 독산동에 장애인 5명과 함께 전자부품 조립 작업장인 ‘에덴복지원’을 만들었다. 휠체어를 타고 업체를 돌아다니면서 일감을 따오고 장애인을 훈련시켰다. 그러나 2년 뒤 건물 주인이 부도를 맞고 가재도구가 거리로 내던져졌다. 이 일이 신문에 보도되자 구청에서 공간을 마련해 줬다. 1987년엔 홍수가 닥쳤다. 정이사장은 “하수구 위에 사무실을 지었는데, 갑자기 물이 솟구쳤다. 누군가 급히 달려왔기에 망정이지, 또 죽을 뻔했다. 재료, 상품…. 몽땅 물 속으로 사라졌다.”고 회상하며 “허망했지만, 이미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만이 아니였기에 포기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의 의지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개봉동에 땅 230평을 사고 이름도 에덴하우스로 바꿨다. 쉽지 않았다. 일감을 구하지 못해 굶는 날도 많았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정 이사장은 사업 영역을 비닐 쇼핑백으로 바꿨다. 그러나 이번에 주민들의 시선이 문제 였다. “애들 교육에 나쁘다” “집값 떨어진다”…. 어렵사리 공장 짓고 틈만 나면 직원들과 거리 청소를 하며 이웃과 친해지려 애썼다, “경제적 곤란도 문제였지만, 주민 반대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정이사장은 세상의 시선은 지금도 장애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적선이 아니라 최고의 품질로 이룬 떳떳한 성과였다. 1989년 에덴하우스는 쓰레기 수거용 비닐봉투 제조로 업종을 바꿨다. 보다 많은 장애인들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수요가 있고 더 많은 공정으로 나뉘는 일이 필요했다. 89년 종량제가 시작되고 이때부터 종량제 봉투 전문 생산 업체로 자리 잡았다. “중증 장애인 정신지체 장애인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고민 끝에 선택한 쓰레기 수거용 비닐 봉투 제조 사업은 1998년에는 파주에 장애인 시설을 갖춘 대규모 공장을 지을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종량제 비닐봉투를 서울시를 포함한 여러 지방 단체에서 주문을 함으로서 많은 물량을 소화해 내고 있다. 그것은 적선이 아니라 최고의 품질로 이룬 떳떳한 성과였다. 이에 힘입어 파주로 공장을 확대 이전하고 물리치료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 할 수 있었다.”라는 정이사장은 그것은 운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장애인들의 눈물겨운 사투 였다고 말한다. 다섯 명으로 출발한 직원이 올해에는 123명이 됐다. 92명이 뇌성마비, 정신지체 중증장애인이다. 매출도 작년에 54억 원으로 늘었다. 장애인 월평균 임금은 86만3000원, 여기에 정부의 장애인 지원금을 합치면 웬만한 일반인들의 수입과 맞먹는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이대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에덴하우스 가족들은 언제나 자신감에 넘친다, 대규모 부지에 최신 시설을 갖춘 에덴하우스에서는 하루 40만~50만 장의 2~100ℓ짜리 쓰레기봉투들을 제작, 수도권 20여 지방자치단체에 공급한다. 일반인들도 충분히 자부심을 갖 을 수 있는 자랑스런 에덴하우스는 올해 매출 목표는 60억원이다. 공장 지하 1층 작업실엔 10개 라인마다 장애인이 붙어서 작업에 열중이다. 벽엔 이렇게 적혀 있다. ‘오직 품질로써 경쟁력 우위 확보’ 정이사장의 “장애인도 일반인들과 똑같이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의지와 신념이 묻어나는 구호다. 비장애인인 인쇄기 엔지니어 권성택(40) 씨는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이들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다”며 동료 직원들을 치켜세운다. 양병렬(39ㆍ지체장애 2급) 씨는 성실성 덕분에 지난해엔 에덴하우스 식당의 비장애인 영양사와 결혼했다. “장애인이고 싶은 사람 없고, 장애를 가졌다 해도 일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어요. 능력은 있지만 일을 못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안타깝습니다.” 포장 작업 책임자인 김호식(49ㆍ지체장애 1급) 반장은 “장애인들도 이렇게 일자리만 주면 누구에게 신세지지 않고 가족까지 부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며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김 반장은 결혼해서 아들 둘을 두고 있다. 그는 “자폐인 직원들도 있는데 이들은 봉투를 세는 능력이 보통사람보다 10배는 빠르고 정확하다”며 동료자랑에 끊임이 없다. 장애인 재활복지 공헌해 이토카 가쯔오 상 한국인 최초 수상 이처럼 불굴의 의지로 이루어낸 이 같은 자랑스런 성과는 2002년 36년 만에 연세대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고. 2004년엔 장애인 재활복지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일본의 이토카 아쓰오 상을 한국인으로 최초로 받았다. 그리고 지난 19일에는 서울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시민단체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상임대표 서영훈·徐英勳 전 적십자사 총재) 주관으로 ‘중증장애인의 생산적 복지’에 대한 토론회도 열었다. 장애인 고용의 노하우를 정부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이 모임은 에덴하우스란 실증적 모델이 있었기에 더욱 빛을 발했다. 이날 그는 “일할 수 있는 여건만 갖춰지면 장애인도 사회에서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다”며 강조하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편향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안타가워하기도 했다. 또한 “문명과 산업의 발달로 산업재해, 교통사고, 환경오염으로 인한 장애자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모여서 생존을 위한 최소의 요구 사항을 외치고 있지만 정책적으로 반영 되지는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가 그들을 노동적 상실에 따른 무가치적 존재 또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며 장애를 가진 사람을 무조건적인 편견이나 부정적인 인식이 가장 우리사회의 장애인 문제의 가장 큰 걸림돌 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이사장은 “결코 장애재활원들이 정부나 사회의 무조건적 자금 지원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 라고 말한다. 직업재활에 대한 복지정책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혜택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재활시설을 갖추고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주는 장애인을 고용하면서 운영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의 자립 재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정책적 제도 도입을 통한 장애인 근로시설과 일반 근로시설을 갖춘 회사와는 차등을 주어 저렴한 가격으로 원자재구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에덴-글로벌 사회적기업을 꿈꾸다 정 이사장은 에덴하우스를 모델로 장애 복지시설의 21세기 글로벌 전략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정덕환 이사장의 회갑을 기념해 펴낸 ‘에덴 21세기 글로벌 전략과제집’은 1983년 임의시설로 출발해 1990년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한 에덴복지재단의 현황과 실제를 재활복지적 측면과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평가하고, 나아가 21세기에 부응한 글로벌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됐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에덴 21세기 글로벌 전략의 목적은 고용(Employment)을 신성시여기는(Divineness) 기업(Enterprise) 네트워크(Network)를 구축해 장애인, 노인 등의 직업 취약계층에 고용을 통한 복지를 실현시켜나간다는 것. 특히 이 책에서 정덕환 이사장은 에덴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직업재활시설 에덴하우스를 총 1만여명에게 직업의 기회를 주는 우리나라 대표적 사회적 기업으로 육성시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에덴복지재단이 지난 2005년부터 중국의 조선족 장애인,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의 고려인 장애인, 북한 장애인에게도 직업재활의 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유엔에스캅, 국제노동기구 등과 협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글로벌 사회적 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책의 발간추진위원회 김종인(나사렛대 교수) 위원장은 “에덴(Eden)은 평화와 사랑의 동산, 삶이 보장된 복지의 공동체라는 뜻으로 해석되나 사실상 어원은 황무지이다”면서 “정덕환이사장이 불굴의 의지로 지금까지 불모의 에덴에서 희망의 에덴으로 만들었지만, 세계적으로 장애인 고용과 복지를 선도하는 에덴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EDEN’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대한적십자사 서영훈 전 총재는 “‘에덴 21세기 글로벌 과제집’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에덴의 생활재활운동 정신과 직업재활, 고용 모형으로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이나 나아가 지구촌 재활운동의 모형이 되고자 하는 큰 뜻이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유엔에스캅 김학수(유엔 사무차장) 사무총장은 “이 전략 과제집은 국내외 정부는 물론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향후 장애인 재활전략 및 정책을 세우고, 실행해나가는데 커다란 이정표를 제시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덕환 이사장은 “에덴의 과제실현은 저와 우리 에덴의 식구로써만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에덴 과제집을 발간토록 지원과 용기를 주신 분들과 힘을 합치고, 정부당국의 정책적 지원 그리고 우리사회 구성원이 ‘일을 통한 복지실현’이라는 점에 합의가 있다면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전신마비의 중증장애를 극복하고 일반인들도 이뤄 낼 수 없는 성공을 거두고 이제는 세계를 향해 장애인 복지 네트워크를 꿈꾸는 정덕환 이사장 그의 꿈과 노력이 장애인은 물론 일반인들의 차별을 허무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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