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 이유로 징계위 회부…노조 “창사 이래 처음”

 

▲ 연초 사무직 과장급 이상과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잇따라 희망퇴직을 실시했던 현대중공업이 거부자들 일부를 저성과를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괴롭히기 논란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연초부터 잇따라 희망퇴직을 단행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회사에 남아있는 거부자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사실상 보복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13일 현대중공업 일반직 노조에 따르면 지난 10일 현대중공업은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회사에 남아 있는 한 근로자에게 ‘저성과’를 이유로 오는 17일 열릴 징계위원회에 출석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근로자는 연초 진행된 사무직 과장급 이상 대상의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회사에 남아 지난달부터 직무역량교육을 받아 왔다. 노조 관계자는 현재 사무직 과장급 이상 60여명이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회사에 남아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노조 측에 따르면 이 근로자는 오는 20일부터 다음달 22일까지 폴리텍 대학에서 희망퇴직 거부 여직원들에 대해 실시할 계획인 CAD 교육을 또 받을 예정이다.

특히 잇따른 교육과 저성과를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근로자를 회부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 측이 사실상 ‘찍퇴’로 불렸던 희망퇴직을 거부한 근로자들을 내몰기 위해 괴롭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교육에 참석한 근로자들은 2주 내로 악성 미수금을 회수할 방안을 내놓으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희망퇴직 거부자, ‘퇴출’우려 본격화되나
지난해 창사 이래 최악의 적자를 낸 현대중공업은 연초부터 과장급 이상 사무직과 15년 이상 장기근속 여직원들을 상대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사측은 일관되게 “신청자들만 대상으로 하는 자발적인 희망퇴직”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희망퇴직을 거부한 근로자들은 직무역량 향상 교육프로그램을 두고 사측과 제2라운드를 펼치고 있는 상태다.

지난달부터 현대중공업은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거나 거부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여직원들에게는 설계에 필요한 CAD교육을, 과장급 이상 사무직들에게는 직무역량 향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노조 측은 희망퇴직 거부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사실상의 강제 퇴출 프로그램”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노조 측은 현대중공업이 간부 사무직 퇴출 전용 프로그램으로 불렸던 현대차의 PIP교육을 채용하는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2013년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이 교육은 초심자에게 어려운 수준의 교육과 강도 높은 과제와 시험 등을 실시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시험점수 및 교육태도 점수에 따라 징계를 내린다. 또한 퇴소 후에도 2차 교육이 진행되는 등 과정을 반복하고 최종적으로 최대 해고까지 가능한 징계 수위가 결정된다.

현대차 측은 보도 당시 “개발적인 능력 향상 프로그램”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처럼 교육 자체가 근로자를 괴롭힌다는 인상을 주고 있고 실제 참가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 바 있어, 지난달 현대중공업의 직무역량 향상 교육 방침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큰 우려를 낳았다. 노조 측에 따르면 징계위 회부로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 지난달 15년 이상 장기 근속 여직원들에 대한 희망퇴직도 뒷말이 무성한 상태다. 현재 희망퇴직을 거부한 여직원들은 조만간 업무와 무관한 CAD교육을 강제로 받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

◆노조 “괴롭히기 목적 드러나” 우려 제기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관계자는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명목상 이유는 ‘저성과’라고 하지만, 실제 정확한 무슨 기준인지는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면서 “해당 근로자의 회부는 지난 주에 결정된 것이고 이번 주에도 추가로 몇 명 정도 징계위 회부가 통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징계위 회부는 사업부 별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괄 회부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노조 관계자는 “이런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하는 것이 창사 이래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는 만큼 징계위에서 해고까지 가능한 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실제 해고까지 가게 되면 문제가 지나치게 커지기 때문에 아마 적당한 수준에서 징계가 이뤄질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괴롭히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교육 내용에 대해서도 “상식적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한 내용은 대외비로 돼 있어 파악도 힘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인지어스’라는 교육 위탁 기관에 대한 의혹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이번 직무역량향상 프로그램을 인지어스라는 전직(轉職) 지원 민간 업체에 위탁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의혹을 받은 바 있다.

교육기관 성격부터가 희망퇴직 거부자들의 퇴직을 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 관계자는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해온 현대중공업을 이끌어 오신 분들에게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외부 교육기관이 무얼 교육을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그는 “‘인지어스’라는 교육 기관은 20개 정도의 지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의 거의 없다”며 “강제 퇴출을 위한 괴롭히기 용도의 직무 역량 교육을 위한 희망퇴직 시장을 노리고 있는 업체로 추측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노사 갈등의 또 하나의 단초가 됐던 여직원들 대상 CAD교육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여직원들의 CAD 교육도 괴롭히기 용도나 다름없다”면서 “CAD 2급도 없이 3개월여 만에 1급을 바로 따게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다만 그는 “회사 측은 희망자들을 대상을 CAD 교육을 진행한다고 했지만, 누가 희망을 하겠느냐”면서 “현재 교육에 대한 계획은 노사 의결사항인 만큼 강제 할당 문제가 불거져 면담과 인원 할당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징계위 회부와 수위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이 사안은 정부의 저성과자 해고 요건 완화 등의 방침과 맞물려 금속노조 등 상위 조직과 함께 본격적인 대응이 준비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하고 “노조도 상위 조직과 함께 부당한 징계를 막기 위한 조치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현대重 “괴롭히기 아냐…직무 역량 향상 위한 것” 부인
한편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교육 기준 미달에 따른 징계위 회부가 아니라 저성과에 대한 징계위 회부”라면서 “앞서 두 차례 경고를 했음에도 딱히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징계위 회부가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추가 징계위 회부 가능성에 대해서 그는 유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현재까지 교육 결과에 따른 징계위 회부 계획은 없고, 다만 재교육 등으로 교육을 강화할 예정”이라면서도 “이번처럼 교육 결과 때문이 아닌 저성과를 이유로 한 징계위 회부는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아직까지 추가 징계위 회부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덧붙여 노조의 주장과 엇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인지어스’가 퇴직 전문 기관이라는 얘기에 대해서도 “인사 부서에서 담당하는 부분이라 담당 부서에 문의한 결과, 대상·인원·지리적 요건 등의 여러 요인들을 감안해 선정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본사가 울산이다보니 아무래도 여러 요인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업체 선정에 고충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괴롭히기 논란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그는 “현대차 PIP 교육 때문에 세간의 시선이 그 쪽으로 흘러가는 면이 없지 않다”면서 “우리가 행하고 있는 것은 전혀 그런 목적의 PIP 교육이 아니며, 실제로 직무 역량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교육”이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일부 무리한 교육 내용에 대해서는 “교육 내용에 대해서는 파악이 다 되지 않은 상태라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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