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朴, 부유세-법인세까지 언급…靑 차별화 수준 넘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론'이 집권여당으로부터도 허구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청와대와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증세론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 리더십은 회복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이 휘청거리고 있다. 집권여당 내부에서조차 사실상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목소리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복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고, 이를 국민에게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기 고백적 목소리들이 들끓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증세 없는 복지’의 문제를 김무성-유승민 비박계 당 투톱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증세 문제가 당‧청 갈등의 본격적 신호탄이 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새누리당 내에서 ‘증세’는 금기어나 다름없었다. 대통령이 그동안 ‘증세는 없다’고 못을 박아 놓았던 것은 물론이고, 자칫 증세를 주도할 경우 국민적 저항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증세 문제는 정치인들에게 항상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무리한 과세나 잘못된 조세제도는 절대왕정마저 쓰러지게 하는 도화선이 돼 왔다.

그런 가운데 연초 불거진 담뱃값 인상 문제와 연말정산 문제는 집권여당으로 하여금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만큼 강한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사실상 서민들의 지갑에서 정부에 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끝까지 ‘증세는 아니다’는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를 두고 정부가 꼼수를 부리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향했고,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레임덕 수준인 20%대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박 대통령 지지율 하락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는 집권여당에게도 분노의 여파가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있는 여당 입장에서는 더 이상 국민적 저항에 처해 있는 청와대에 끌려갈 수 없다는 위기감이 생긴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 선출이 그 방증이다. 그리고 직후부터 청와대와 차별된 여당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장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증세’부터 그 시작이다.

◆문제의식은 이미 있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새 사령탑을 맡기 며칠 전 당내에서 묘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됐다. 지난달 29일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인 나성린 의원은 정의당 박원석 의원 주최로 열린 ‘연말정산 파동, 문제와 해법은’ 토론회에 참석해 “박근혜식 증세가 한계에 다다랐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어떻게 증세를 할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고 처음 ‘증세’를 언급했다.

나 의원은 그러면서 “국민대타협기구를 만들자고 당에 이미 제안했고, 새누리당 안에서도 이런 주장이 많이 나올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탈세를 줄이고, 비과세 감면을 줄이면서 우선 걷을 수 있는 것을 다 걷으려 했다. 이것이 박근혜식 증세인데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나 의원은 야당이 거듭 요구하고 있는 ‘법인세’ 인상 문제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이와 관련, “정부와 여당이 법인세를 전혀 건드리지 않겠다고 얘기하지는 않았다”며 “국민적 대타협이 이뤄지면 법인세를 인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법인세 인상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청와대와 정부의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입장이었다.

나성린 의원에게서 이 같은 발언이 나온 이튿날 주호영 정책위의장도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복지를 더 늘리려면 세금을 더 받아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데, 다만 여기에 관해서는 국민전체의 동의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호영 의장은 “지금은 복지를 늘리라는 국민적 요구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복지자원 자체의 조달이 기존대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복지로 무상급식, 무상보육 같은 것을 많이 요구하고 있는데 그걸 다 충당하려면 지금 현재 세금 체계로는 곤란하지 않느냐”며 “복지 수준을 낮추든지, 그 다음에 세금을 좀 더 받는 결정을 하든지, 국민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 됐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삐죽삐죽 새어나오던 ‘증세’론은 지난 2일 유승민 원내대표가 선출되면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선출 직후 곧바로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증세 문제와 관련해 “원유철 정책위의장과 공통으로 인식하는 것은 현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라고 한 기조는 바꿀 필요가 있다”며 “담뱃세가 오르고 소득-세액공제 전환 세법 개정안을 모두 증세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답답한 상황에 빠지므로 그 기조는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원내대표 취임과 동시에 ‘증세’를 놓고 청와대에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었다.

◆거침없는 유승민, 눈치 안 본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취임 이튿날인 3일에도 CBS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증세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특히 그는 “증세를 한다면 당연히 가진 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는 증세가 돼야한다”며 부자증세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유 원내대표는 아울러, 연말정산 파동과 관련해서도 ‘증세’라고 규정하며 “(정부가) 이게 증세가 아니라고 속인 것이 문제”라며 “그건 분명히 증세였고, 그래서 국민이 더 분노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5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는 “우리가 세금을 올려야 한다면 법인세도 성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법인세 인상 추진까지 시사했다. 앞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달 22일 야당의 법인세 인상 요구에 대해 “현 정부로서는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던 바 있다. 안 수석은 “국내 기업뿐 아니라 외국 기업에게도 상당한 불이익을 주고 그로인해 투자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비과세-감면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면 되지 세율 인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법인세도 성역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밝힌 것은 청와대의 이 같은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유 원내대표는 “만약 어느 정도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세금이라는 것이 부가세도 있고, 소득세도 있고, 법인세도 있는데, 그 다양한 세금 종류 중에서 법인세는 절대 못 올린다. 이렇게 성역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을 얻어 김무성 대표도 국회교섭단체대표연설을 통해 증세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직설보다 강도는 약했지만, 사실상 증세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김무성 대표는 “최근 한 여론조사를 보면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서는 국민의 65%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보였다”며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 유승민 원내대표 선출 이후 당내에서 증세론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오자, 김무성 대표도 국회 원내교섭단체대표연설을 통해 증세 없는 복지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며 강경한 발언을 내놓았다. 김무성-유승민 비박계 지도부가 청와대와 전면 각을 쌓기 시작한 분위기다. 사진 / 홍금표 기자

김 대표는 다만,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국가재정건전성을 지키려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복지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전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며 “복지 지출의 구조조정을 시행해 지출의 중복과 비효율을 없애야 한다. 증세는 이 결과를 토대로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을 때 국민의 뜻을 물어보고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김 대표는 “국민의 권리로서 복지라는 혜택을 누리려면, 국민의 의무인 납세라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다”며 “국민들이 이처럼 건전한 의식을 가질 때, 대한민국은 건강하게 미래로 발전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복지확충에 따른 증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무성-유승민 집권여당 투톱과 함께 원유철 신임 정책위의장 역시 4일 CBS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국민들 앞에 정직하게 털어놓고 동의와 선택을 구하는 논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원유철 의장은 특히, “현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믿는 국민들이 별로 안 계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내 대표적 비박계 인사인 이재오 의원도 이날 오전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담뱃세를 느닷없이 2,000원 올려 2~3조 돈 더 거둬들이고, 연말정산 느닷없이 해서 2~3조 돈 거둬들여 5~6조를 더 거둬들였으면 그것이 증세지 서민들이 정부에 후원금을 준 것이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의원은 “그것을 인정하고 복지부분을 다시 손을 대든지 해야지 서민 주머니의 돈은 나갔고 그 돈이 정부로 들어갔는데 ‘증세는 없다’고 이렇게 말하면 나라가 안 된다”며 “원내지도부와 정책위에서 적절히 논의해 이제 1년 동안 정말 정직하게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 등 비박계를 중심으로 이처럼 ‘증세 없는 복지’ 비판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두고 당내 일각에서는 “맞는 말”이라면서도 순수한 의도로 보지 않는 시선도 있다.

이명박 정부 개국공신으로 친이계 핵심이었지만, 최근 “이명박 정부는 실패했다”면서 등을 돌린 정두언 의원은 MBC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거듭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맞는 얘기”라면서도 “그런데 불가능한 얘기다. 두 분들 얘기 들어보면 또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국 하나마나한 얘기가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 의원은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라는 말 자체가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데, 야당은 당연히 반대할 것”이라며 “그리고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면 (김무성-유승민) 본인들도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거듭 “어제 인터뷰를 들어봤더니 가능하지 않다는데 동의하더라”면서 “그러면 가능하지도 않은데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그러니까 결국은 대국민 메시지가 아니고 청와대 메시지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정 의원은 “청와대와 선긋기를 하는 것이다. 이제 다르게 가려고 한다. 이런 것”이라며 “그래서 저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논쟁은 사실 불필요한 논쟁”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어, “복지는 확대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 재원이 필요하다”며 “그럼 그 얘기를 해야 되는 것이다. 순서가 있는 것이다. 첫째는 일단 부자증세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자증세에 대해서는 법인세 인상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지금까지 부자증세도 안 하고 복지도 낭비가 많고 세출도 엉뚱한데 많이 가서는 그런 건 정리 안 하고 바로 우리들한테 세금 내라는 건 국민이 납득 안 한다”며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세금을 더 걷어 적어도 온 국민이 노후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 이렇게 가야 된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거듭 “저는 복지를 늘려야 된다고 보고 복지를 늘려야 되는 게 정치권이 할 일이다. 그런데 세금이 없기 때문에 못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며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재원을 확보하겠다, 이렇게 나가야 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처럼 ‘증세 없는 복지’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서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아직 증세까지 갈 단계가 아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국민 공감을 얻어 마지막 수단으로 증세를 고민할 수 있다”는 게 최 부총리의 입장이다.

최 부총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연말정산 파동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 “가능하면 복지를 확충하되 새로운 세목 신설이나 세율 조정 없이 지하경제 양성화나 세출 구조 조정 등으로 충당하는 게 우선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우선 저부담 저복지, 중부담 중복지, 고부담 고복지 등 복지 기준에 대해 여야 정치권에서 컨센서스를 만들어 줘야 재원조달 방안 얘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세 없는 복지’ 입장과는 다르게 담뱃세나 연말정산 등을 통해 사실상 서민증세가 이뤄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부는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을 증세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다만, 최 부총리는 “제 스스로 ‘증세 없는 복지’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면서 “현 정부의 복지나 증세 문제에 대한 입장을 언론 등에서 그렇게 해석한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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