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산에 가격 경쟁력 밀려 갈 곳 잃은 국산우유

 

▲ 국산 우유 재고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우유 가격은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원유가격연동제’를 꼽았다. ⓒ뉴시스

국산 우유 재고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유 가격은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떨어지는 가격 경쟁력에 수입산에 밀려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우유 가격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원유가격연동제 탓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시장원리 벗어난 제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유업계는 쌓인 재고를 뚫어줄 길은 중국 수출이라는 입장이지만, 중국 측이 원하는 공법과 우리 측이 시행하는 공법이 달라 수출길이 뚫릴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1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국산 우유 재고는 23만2천여 톤을 기록했다. 전년 9만2000 여 톤보다 150% 증가한 수치다. 역대 최대였던 2002년 말의 재고 16만1000 톤을 40% 이상 웃도는 수치다. 국산 우유 재고가 증가한 것은 지난해 젖소 집유량이 많아진 데다 사료값 하락으로 원유 생산이 늘어났다는 것이 유업계의 설명이다. 지난해 원유 총생산량은 219만8000여 톤으로 2013년(209만3000여 톤)에 비해 10여만 톤이 많다.

◆우유 총소비량 사상 최대…그래도 쌓이는 재고
낙농진흥회는 지난해 12월1일 이후 낙농가들의 원유생산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쿼터 물량의 96.53%에 대해서만 정상가격(1ℓ당 1096원)을 지급하고 있다. 또 일반 유업체 역시 정상가격 지급 쿼터 물량을 최대 9%까지 줄였으며,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젖소 도태를 통한 원유 생산량 감축에도 나서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1일 이후 하루 원유 잉여량은 1500t에 달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원유 초과생산분 800t 과 특히 초·중·고등학교 방학에 따른 학교우유급식 중단물량 700t 등이 하루 잉여 원유량으로 쌓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우유 총소비량은 전년대비 1.9% 늘어난 364만8000여 톤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우유 재고가 쌓이는 이유는 우선 국산 우유 소비량 자체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수입산 우유가 차지한 점에 있다.

국산 우유 소비는 199만5000톤에서 2만9000톤(1.5%) 줄어들었다. 지난해 국산 우유 소비는 199만5000톤에서 2만9000톤(1.5%) 줄어들었다. 2013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우유 소비량은 33.5kg(농림축산식품부)이었다. 유럽인들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계속해서 줄고 있다. 우유 소비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우유를 먹고 자라는 아이들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우유 소비의 60%를 차지하는 12세 이하 유·아동 인구는 해마다 3~4%씩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수입산 우유 소비는 2013년 158만7000톤에 비해 9만6000톤 (6.0%) 늘어났다. 수입산 우유가 빠르게 시장을 늘려 가는 것은 가격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국산 탈지분유(1㎏)의 생산원가는 1만2000원가량이지만 수입산의 원가는 3800원 수준이다. 일정 정도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5000원을 넘지 않아 애초부터 경쟁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즉,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치즈 등 유제품과 제과 등의 수요가 증대되면서 우유 총소비량 자체는 증가했지만 늘어난 파이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한 수입산 우유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수입산 증가분과 국산 감소분을 합치면 12만5000여 톤으로 재고증가량 14만여 톤과 비슷하다.

일부에서는 대체 음료의 인기 상승을 국산 우유 소비 하락의 이유로 거론한다. 우유에 든 성분을 초과하는 각종 기능성 음료가 다양하게 출시되면서 상대적으로 우유를 찾는 소비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 국산 우유 재고량이 쌓이는 가장 큰 이유는 수입산에 가격 경쟁력이 밀리기 때문이다. 원유가격연동제도 문제지만, 유통마진 역시도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시스

◆가격 경쟁력 잃은 국산 우유
더 큰 문제는 가격경쟁력에 밀려 국산 우유 소비가 줄어들고 있지만, 가격 인하를 통한 수요확대가 어렵다는 것이다. 바로 원유가격연동제 때문이다. 원유가격 연동제란 원유 가격을 수요공급에 따라 유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원유 생산비용과 물가상승률에 기반해 기계적으로 책정되도록 공식화한 것이다. 즉, 우유가격을 생산비용에 연동시킨 제도인 것이다.

기존에는 3~5년 주기로 낙농가와 유업체간의 협상을 통해 원유가가 결정됐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생산자의 집회, 단식, 납유 거부 등 양측 간 갈등이 심해지자 이해관계자간 합의에 따라 2013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우유가격은 철저히 생산원가에 따라 결정된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우유 소비가 침체되면서 원유가 남아도 생산비가 상승하면 원유가격은 오르는 구조다. 가격 인상은 우유 소비 감소를 심화시키고 이는 더 큰 공급과잉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녔다. 김연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연동제는 생산자 기반 확충과 갈등 해결 봉합에만 신경 쓴 나머지 소비자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원유가격 연동제를 시행하면서 1리터당 원유가격은 834원에서 940원으로 12.7% 올랐다. 이에 따라 우유 제품가격도 평균 9.3% 인상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원유가격 연동제에 의해 책정된 원유 가격은 리터당 평균 1088원으로 우유 소비자가격의 약 40%정도를 차지한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우유 가격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원유 가격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격 인하에 어려움이 있다”며 “우유의 유통 단계별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유 가공업체가 가격을 내린다고 해도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원유가격이 우유값의 7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 실질적인 가격 인하는 어렵다”면서 “대신 대형마트 1+1 행사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우유 소비는 줄고 있는데 연동제로 원유가격이 묶여있다 보니 제품 가격을 낮추면 업체 입장에서는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상수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이 제도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시장원리에 벗어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우유 소비가 침체되고 원유가 남아돌게 되면 가격을 인하해 소비가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 원유 시장은 수급과 무관하게 가격이 기계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이는 생산비와 물가상승률이 하방경직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처럼 수급 불균형이 나타났을 때 가격이 조정기능을 하지 못해서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유제품의 가격 인상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인 원유가격 연동제의 문제점을 일부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했다. 우유생산비용이 전년 대비 4%이상 증감시에만 가격을 조정하도록 제도를 손질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리터당 25원의 원유 인상요인이 있었음에도 원유의 기본가격은 동결됐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원유가격 연동제는 유업체와 낙농가의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상생노력의 결과물인데 유제품 가격 인상 등의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며 “시장의 수급 상황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석진 한국낙농육우협회 낙농정책연구소장은 “전국의 원유 생산을 통제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탄력적으로 원유 쿼터를 조정할 수 있게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통도 문제 

▲ 박상도 유가공협회 홍보부장은 “원유가격 연동제와 우유 제품 소비 부진으로 유업계가 어려움에 처해있다”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흰 우유의 중국 수출이 재개되면 재고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과다한 유통 마진을 줄여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지난해 원유 생산가격이 ℓ당 106원 올랐을 때 제조·유통가격은 130원 올랐다. 김연화 위원장은 “원유 생산가격은 사료 값 상승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유통 마진이 이렇게 뛴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일침을 가했다.

김민경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 교수는 최근 ‘합리적인 원유·유제품가격 조정 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유통 업체들의 우유 마진율은 34%가 넘는다. 약 8~10%인 미국이나 영국 대비 4배에 달한다. 김 교수는 “우유는 쌀과 같은 기초식품이다. 주요 국가들은 기초식품에 대한 유통 마진율을 최소화하고 있다. 과도한 유통 마진은 해당 업계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순철 한국낙농육우협회 부회장은 “원유가격은 2000년 1ℓ당 500원 수준에서 2013년 1000원으로 500원 정도 오른 반면 우유 소매가격은 1400원에서 2400원으로 1000원이나 올랐다”며 “생산·유통 부문의 과도한 이윤이 우유가격 인상의 주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조석진 한국낙농육우협회 낙농정책연구소장은 “2004년 이후 원유가격 대비 우유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며 “유통비용 등에 대한 투명하고 객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수 교수는 “일반적으로 농축수산물은 공급이 비탄력적이고 신선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유통마진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여타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유통마진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낙농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우유업체들까지 보호를 해주고 있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소비자만 외면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살길은 수출” 이라는데...
정부와 낙농업계가 기대하는 활로는 중국이다. 2008년 중국에서 멜라민 분유 파동이 발생한 뒤, 중국인 사이에서 자국 유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을 활용하자는 전략이다. 실제 중국으로 수출한 분유는 2009년 470만 달러에서 지난해 5630만 달러로 연평균 181%씩 늘었다. 중국내 우유소비량도 해마다 4.1%씩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해 5월 우리나라에서 130도 이상 초고온살균법을 이용해 만든 우유의 유통기한이 자국 우유보다 긴 것 등을 문제 삼아 국내 우유업체들의 수출 등록을 보류했다. 국내 제품은 135도의 초고온에서 2초간 살균하는 방식으로 생산되지만, 중국은 72~75도에서 30분정도 끓이는 저온살균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최근 중국측 실사단이 방한, 유업체들의 생산공장을 돌아보는 등 수출길이 다시 열리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돌고 있지만 중국 수출 재개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박상도 유가공협회 홍보부장은 “원유가격 연동제와 우유 제품 소비 부진으로 유업계가 어려움에 처해있다”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흰 우유의 중국 수출이 재개되면 재고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시사포커스 / 정주민 기자 ]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