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비주류 당 지도부 장악, 靑과 차별화 특명

▲ 새누리당 비박계 유승민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되면서 당청 관계에 큰 틀의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당청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자하는 여당과 국정장악력을 잃지 않으려는 청와대 사이에 충돌이 예상된다. 사진 / 유용준 기자

2일 실시된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주류-비박계로 분류되는 유승민 의원(원내대표)과 원유철 의원(정책위의장)이 친박 주류를 꺾고 선출되면서 당‧청 관계에 큰 틀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유승민 신임 원내대표는 친박계 핵심이었지만,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줄곧 비판적 목소리를 내면서 대통령과 거리가 멀어져 왔다. 사실상 脫朴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원내사령탑에 선출됨으로써, 새누리당 투톱(당대표-원내대표)은 모두 비주류가 맡게 됐다.

대통령 임기가 3년이나 남아 있는 상황에서 집권여당 원내대표에 비주류가 선출되는 일은 드문 경우다. 따라서 이 같은 결과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들과 맞물리며 대통령 조기 레임덕이 가시화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게 한다. 당‧청 관계에서 당이 주도권을 쥐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朴心에도 불구하고 친박 패배
이번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일었던 논란 중 하나는 바로 朴心이 실제로 작용하고 있는지, 또 있다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박심이 원내대표 경선에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몇 가지로 추정되고 있다.

우선, 경선 당일인 2일 새누리당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우여 사회부총리,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총출동해 투표권을 행사했다는 점에 주목된다. 원내대표 경선 참여 여부는 자유지만, 앞서 주요 언론들은 국무위원들의 투표 참여 여부로 박심을 살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었다. 언론이 주목하면서 이들의 투표권 행사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한 표를 행사했다. 해석하기에 따라 그만큼 친박 측은 절박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또, 당초 청와대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2월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일정(3일)을 고려해 통상적으로 화요일(3일)에 열리던 국무회의를 하루 앞당겨 2일 개최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일정이 오전에 잡혀 있어 다시 3일 오후로 국무회의 일정을 변경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국무위원들이 원내대표 경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국무회의 일정까지 변경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도 이날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의총장에 나왔다. 하지만, 의총 시작과 동시에 김무성 대표가 “저는 철저하게 중립이다. 저와 이완구 총리후보는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 투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결국 투표는 하지 못하고 인사만 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밖에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저울질해오던 친박 핵심 홍문종 의원이 정책위의장으로 눈을 낮춰 이주영 후보와 러닝메이트를 이룬 점도 박심을 가늠케 했다. 홍문종 의원의 정책위의장 출마는 박심이 이주영-홍문종 후보 쪽에 있다는 해석을 낳으며, 이번 원내대표 경선을 친박 주류 vs 비박-비주류 간 계파 대립 구도로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중요한 점은 이처럼 박심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비박-비주류가 승리했다는데 있다. 박심이 여당에조차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여당 내 일부 친박 인사들까지도 박심을 모른 체 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유승민-원유철 후보는 투표수 149표 중 84표로 이주영-홍문종 후보 65표를 크게 앞서며 새 원내지도부로 선출됐다. 84 vs 65 일부 친박 인사들도 유승민-원유철 후보에 표를 던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결과인 것이다.

◆인적쇄신-증세-개헌 등 곳곳 충돌지점
이처럼 유승민-원유철 후보가 새누리당의 새 원내사령탑에 선출되면서 당‧청 관계에도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여권 내부적으로는 이번 원내대표 경선 결과를 두고 여당의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사실상 레임덕 수준으로 추락하자, 더 이상 청와대에 끌려가다가는 당마저 차기 총선을 앞두고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심이 원내대표 경선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비박-비주류가 사실상 당 지도부를 장악하게 되면서 집권 3년차 청와대가 추진하는 각종 정책들을 두고 여당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당은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 목소리를 키울 것이며, 이 과정에서 국정장악력을 잃지 않기 위한 청와대의 강경 드라이브가 예상되기도 한다.

유승민 신임 원내대표는 선출 직후 곧바로 “대통령, 청와대, 정부와 긴밀하게 진정한 소통을 하겠다”며 “대통령께서도, 청와대 식구들도, 장관님들도 이제는 더 민심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당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주셔서 내년 총선승리를 반드시 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와 내각에 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벌써부터 예상되는 충돌지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과 청와대 및 내각 인적쇄신 규모에 맞춰지고 있다. 실제, 유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 개편 및 개각과 관련해 “국민 눈높이를 충분히 감안한 수준의 과감한 인적 쇄신이 됐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폭 개각’으로 선을 그어놓은 박 대통령과 입장 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증세 문제에 대해서도 유승민 원내대표는 직접적으로 정부 입장에 반기를 들었다. 유 원내대표는 “원유철 정책위의장과 공통으로 인식하는 것은 현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라고 한 기조는 바꿀 필요가 있다”며 “담뱃세가 오르고 소득-세액공제 전환 세법 개정안을 모두 증세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답답한 상황에 빠지므로 그 기조는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이 거듭 ‘반대’ 입장을 밝혔던 개헌 문제에 대해서도 유 원내대표는 “개헌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논의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여든 야든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헌에 대한 자기 소신을 밝히고 활발히 토론하는 것이야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국정운영 기조와 확실한 차별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청와대와 여당 원내지도부의 입장차는 당‧청 관계를 지금보다 더 삐걱거리게 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한편,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청와대와 분명한 차별화를 부각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별개로 비교적 안정적이던 새누리당 지지율도 최근 들어 큰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1월 4주차(26~30일) 주간집계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도는 3년여 만에 최저치인 35.9%를 기록했다. 박근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며 추락하자, 이에 따른 여파가 새누리당에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조사에서 또 다시 최저치를 경신해 32.2%를 기록했다. 여당 지지율이 박근혜 대통령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묶여 동반 추락하지 않기 위해선 새누리당이 당‧청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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