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경기도 동두천시가 올해 말까지 탑동동 산236-1번지 미군이 사용하던 옛 짐볼스 훈련장에 ‘국내 유일의 일본 황궁 세트장’을 포함한 테마파크를 조성한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위안부와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냉기류에 휩싸인 상황에서 한일 관계가 얼마나 민감한 수준에 와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일을 겪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동두천시는 지난 2008년 12월 ㄱ주식회사와 드라마 세트장 건립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최근 건축허가 절차를 마쳐 다음 달부터 세트장 건립에 들어갈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현재 진입도로 공사 중이라고 말했다.

“사업비 159억원을 들여 8만8천778㎡ 규모에 19동의 황궁 세트장과 일본식 정원”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나가자 일부 시민들은 페이스북에 이 보도를 게재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시사포커스>에 들어온 제보를 통해서 이 ‘황궁’ 사업에 대해 시민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먼저 문화관광체육부(문체부)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한서인 주무관은 전화 통화에서 “동두천에 19동의 일본 황궁 세트장과 일본식 정원이 조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며 무척 당혹스런 반응을 보였다. 이어 한 주무관은 이 사업은 동두천시가 결정한 일로 문체부와는 사전에 어떤 협의와 연락도 없었다고 밝혔다.

동두천시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8만8천778㎡ 규모에 19동의 일본 황궁 세트장과 일본식 정원, 산책로, 시 홍보관 등이 조성된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19동 전체가 아니라 2~3개동 정도라고 알고 있다. 전통 사극을 제작할 경우 일본 현지 촬영 비용 절감 등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하자 “황궁이 아니라 궁이라고 표현된 자료를 갖고 있으며 업체에 최신 사업계획서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19동의 황궁이 아니라 2~3동이라고 했으나 ‘반(半)영구적’으로 짓는 것이니 수요일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는 나라에서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영구적’이라는 단어가 민감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 시민단체에 전화를 걸어 일본의 ‘황궁’이 갖는 역사적 의미에 대해 묻자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한국인들이 왜 천황을 ‘일왕’이라고 부르는 줄 아느냐”며 “황궁은 일본의 조선 침략과 세계2차대전의 총책임자인 천황의 거처다. 당시 일본은 천황제 파시즘 체제였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일본인들과 일본 식민지의 주민들은 황궁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여 절을 해야 했다. 이것이 궁성요배, 동방요배였다. 천황은 최고 전범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일본강점기 시대에 남아 있는 유적지는 역사의 교훈을 위해 남겨 두어야 한다”면서도 “프랑스가 히틀러 기념관을 짓는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만일 이 황궁 드라마 세트장 건립 사업이 일본 관광객 유치나 다른 경제적 동기만 고려했다면 세계사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금치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프로모션 업체 관계자(여·47)는 미군 기지촌으로 유명했던 동두천시에 황궁 드라마 세트장이 세워진다는 것에 대해 “무슨 사업이든 상징적 의미도 고려해 봐야 한다. 황궁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만일 일본의 방송·영화 제작자가 와서 황궁 세트장을 빌려서 일본의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작품을 찍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안마당 내주며 뭐하는 짓이냐? 왜 하필이면 일본 황궁이냐. 고조선이나 고구려 궁실을 지어 관광객을 유치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 황궁 드라마 세트장 테마파크에 관련한 전체 시행계획서나 사업계획보고서의 제출을 요청해 받아 무슨 사업을 벌이려고 하는지, 사업 자금의 성격 등에 관해 시민들이 알아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한 영화 프로듀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일본 황실의 내부를 찍는다고 하면 보통 실내 세트장을 만들어 촬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외경(外境)이 필요하다면 일본에 가서 허가 받고 찍으면 된다. 굳이 그런 장면이 필요하다면 요즘은 컴퓨터그래픽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황궁을 그것도 반(半)영구적으로 짓겠다고 하는 건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촬영 비용 절감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데 과연 일본 황궁을 배경으로 해서 찍을 드라마·영화가 과연 얼마나 있겠느냐. 드라마 수요가 많지 않을 것 같다. 경제성 등 여러 면을 살펴봐도 황궁 드라마 세트장 사업 명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사업을 시행 중인 업체 쪽 얘기를 들을 필요가 있었다. ㄷ대표는 “왜 그런 기사가 나갔는지 모르겠다”며 “황궁이 아니라 일반 성(城)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표는 “황궁을 짓는 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 줄 아느냐”며 “그저 성을 한 채 짓고 부속 건물을 지을 뿐이다. 중국은 제작비용이 싸서 현지 촬영을 많이 하지만, 일본은 엔화 가치가 높아 로케 비용이 많이 든다. 부안, 포항, 부산 등에도 일본 세트장이 있지만 거리가 멀어서 동두천에 짓는 것이다. 판자로 지은 부안 세트장보다 더 견고하게 짓자는 말이 ‘반영구적’이란 말로 와전된 듯하다. 또 일본식 정원 보도도 나왔는데, 그냥 성 안에 작은 정원 하나 만드는 정도”라고 말했다.

황궁 세트장 관련 기사는 2011년 9월에도 나갔다. 그 기사를 보면 “임야 21만㎡ 일본 황궁 세트장, 일본식 정원, 휴양림, 산책로 등이 조성된다”고 나와 있다. 이 기사에서도 “드라마 세트장은 일회성 가건물이 아닌 반영구적 건물로 촬영이 없을 때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야외음악회나 목공체험교실 등도 운영된다”고 나와 있다.

일본의 강점기의 굴욕과 상처를 기억하고 있는 시민들은 이 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황궁 주변에서 야외 음악을 듣거나 아니면 체험 교실을 갖는 모습을 자연스레 상상했을 터였다. 특히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아와 ‘반영구적인 황궁 건물’을 보게 될 때 그들이 어떤 감회에 젖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11년 관련 기사를 보면 ‘동두천시’ 자료 제공이란 이름의 이미지를 보면 분명히 ‘에도시대 테마파크 구역 f. 황궁구역’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동안 업체 사정으로 사업 내용이 바뀌었다면 이후 사업 주체, 동두천시청, 이를 보도한 매체에서는 의도성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것에 대해 정정 보도를 내거나 사과함이 옳다.

그런데 사업 주체는 왜 그런 보도가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동두천시청은 업체에서 받는 대로 공개했다고 하고, 기자는 그냥 동두천시 보도자료를 기사화했다고 하면 독자는 뭐가 되는가.

혹자는 그깟 드라마세트장 하나 가지고 왜 그러느냐고 할지 모른다. 지난 19일 민족문화연구소(민문연)는 우리나라 국회가 작년 연말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일본 야스쿠니 신사 반대’ 홍보예산 3억원(3년간 매년 1억)을 전액 삭감한 반면, 일본은 역사·영토 홍보에 4,610억원을 증액했다고 밝혔다.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인식과 실천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일본은 돈이 펑펑 남아돌아서 수천억을 자국 역사 문화 홍보에 쓰겠는가.

민문연의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일본 문화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지면 문화 침략의 기반이 조성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기사를 보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민족의 자존심을 걱정하는 우국지정에 격앙된 목소리로 제보한 보통 시민 여러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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