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정규직화, “지나친 특혜” vs “차별 철폐”

▲ 금융위가 “시간이 없다”며 사실상 하나‧외환은행 간 통합에 힘을 실어주자 노조 측이 사측에 본협상을 제안하면서 양 은행의 통합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뉴시스

하나-외한은행 통합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지난 6개월 간 양 사측과 노조는 ‘정규직 전환’을 놓고 서로 이견을 좁히지 않아 교착상태에 빠졌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최후통첩을 날리자 금융권에서는 하나-외환은행의 통합이 사실상 가시화 됐다는데 입을 모았다.

지난해 10월 말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이 합병 계약을 체결하면서 연내 조기통합을 결의했다. 그러나 사측은 외환은행 노조와의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 문제 등으로 불거진 갈등으로 합병기일을 올해 2월 1일에서 다시 3월 1일로 미뤄야만 했다.

이에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 12일 정무위원회에서 “작년 7월 이후 하나와 외환 간 노사 합의를 6개월 동안 기다려왔다”면서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아직까지 노사 합의에 진전이 없는데 대해 유감이다”라며 양 사측의 통합에 무게를 실어주는 입장을 밝혔다.

노사간 합의 없이도 통합 신청서를 처리할 여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신 위원장은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다만 그는 “지금이라도 회사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며 노조 측에 당부했다.

◆ 하나-외환 합의 ‘표류’ 멈추나

앞서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은행과의 통합 협조 조건으로 ▲2000여명 전원의 6급 정규직 전환 ▲6급 정규직군(대졸 군미필 신입직원)과 동등한 급여 지급 ▲일정 기간 경과 후 6급 직원의 5급 자동 승진 등을 주장한 바 있다.

이같이 노조가 끈질기게 급여수준, 승진방식, 승진시기를 협상 쟁점으로 주장하는 것에는 그만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과 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이 2013년 10월 29일 “무기계약근로자(2200여명)를 2014년 1월 중 6급 행원으로 전환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합의서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노조는 지난해 12월 29일 하나금융과의 통합에 반발하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 휴직자 등을 제외한 투표대상 조합원 5423명 가운데 4821명(88.9%)이 투표에 참여, 4402명(91.3%)이 쟁의행위에 대해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이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금융 측을 압박했다.

이에 하나금융 측은 “2013년 당시 외환은행 노사 간 합의서에 무기계약직을 6급 행원으로 전환한다는 ‘원칙적’ 합의만 있을 뿐 무기계약직 전원을 6급으로 전환한다는 문구는 없다”고 반박했다.

더불어 금융위가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의 통합승인 신청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 ‘조기 통합론’이 순풍을 만났다는 의견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이윤수 금융위 은행과장은 “방침이 정해진 것은 아직 없으나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조 간의 통합 합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통합 신청을 하면 받아들일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사안에서 노조와의 협상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금까지 노조와의 대화를 종용해왔지만, 만약 하나금융이 합병 승인 신청을 하더라도 이를 주저 앉힐만한 근거는 없다”고 언급했다.

이에 사측과 노조 간의 합의점 도출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노조의 요구를 선뜻 들어줄 수 없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만약,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노조의 요구조건을 수락해 무기계약직들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될 경우, 직원들의 인상된 급여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크게 가중되기 때문이다. 현재 무기계약직의 급여 수준은 은행마다 다르지만 통상 정규직의 비슷한 연차 대비 60∼80% 수준이다. 만약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첫해 74억원의 인건비를 부담해야 하고, 그 다음해에 2200여명의 무기계약직 직원 전원이 승진된다고 가정했을 때 570억원의 추가 인건비를 지불해야 한다.

이후 호봉 상승에 따른 급여 인상분까지 고려하면, 매년 600억원 이상의 추가 인건비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은행과의 통합 협조 조건으로 급여수준, 승진방식, 승진시기에 대한 합의를 주장했다.사진 / 홍금표 기자

◆ 금융권, 정규직화 진행 ‘속속’…장그래는 없다?
이와 관련해 과연 다른 은행들의 ‘정규직화’는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도 뜨겁게 일었다.

통계에 따르면 은행권의 정규직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만여명이나 늘어났다. 이에 대해 ‘바람직한 추세’라는 주장도 있지만, ‘과도한 특혜’라며 신규 채용 규모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 12일 금융권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지난 2008년 9월 말 9만8396명이었던 은행권 직원수는 지난해 9월 말 11만5936명으로 1만7540명(17.8%) 늘었다.

같은 기간에 은행권의 지점 수는 6871개에서 6983개로 거의 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원 수가 증가한 것은 그 동안 은행원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각 은행의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가 빠르게 진행된 영향이 컸다.

신한은행은 2013년 838명의 계약직 창구 직원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4100명의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옮겼다. 우리은행은 2007년 은행권에서는 가장 먼저 3076명의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이어 2013년 다시 443명을 전환해 정규직 전환 인원이 3519명에 달했다.

기업은행은 매년 120명의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2008년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된 무기계약직이 700명에 이르렀으며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농협은행도 지난해 50명을 전환하는 등 매년 무기계약직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같은 금융권의 동향에 대해 노조는 “대단한 성과”라고 칭하는 반면 경영진들은 “지나친 특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엇갈린 찬반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노조의 경우 “고용의 질을 높인 대단한 성과”라면서 “외환은행 무기계약직 전면 정규직 전환을 즉각 이행하라”고 주장하며 정규직화에 대한 찬성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오치화 금융노조 홍보부장은 “은행권의 무기계약직 정규직화는 지난해 산별 교섭에서 노사 간 합의한 사항”이라면서 “외환은행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은 2013년 말에 이미 합의한 만큼 즉각 시행해야 할 것이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금융노조가 투쟁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반면, 은행 경영진들은 정규직이 지나치게 증가될 경우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신규 채용이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은행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장기 근무 창구 직원도 계약직으로 연봉이 3만달러에 못 미친다”면서 “선진국에도 없는 창구 직원의 정규직화는 은행 인건비의 지나친 증가로 이어져 신규채용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예전에는 무기계약직이 10년 이상 근무해도 연봉이 4천만원대를 벗어나기 힘들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그 이상 연봉이 올라갈 수 있게 됐다”면서 “정규직과의 차별이 줄어드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지만, 경영진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훨씬 커진 만큼 앞으로도 논란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외환은행 노조가 본협상을 제안한 것과 관련해 사측이 이달 말 이내로 협상을 마무리 짓자고 제안해 “진정성 있는 대화 분위기를 저해한다”며 반박했다.사진 / 홍금표 기자

◆협상테이블 위 비정규직 문제 ‘관심’
금융권 내부에서도 기존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화에 대한 이견이 치열한 만큼 외환은행 노조와 하나금융 간의 향후 행방에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 외환은행 노조가 돌연 사측에 본협상에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은근한 하나은행 ‘손 들어주기’에 노조가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완전히 빗나갔다.

지난 12일 외환은행 노조는 사측에 예비협상 격인 ‘대화기구 발족 합의문’ 관련 논의를 중단하고 곧바로 본협상에 들어가 앞으로 60일 이내에 통합여부, 통합원칙, 인사원칙 등에 대한 실질적 협상을 통해 새로운 합의서를 체결할 것 제안했다. 이에 13일 양 사측이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사측은 노조가 제안한 60일 협상 기간이 아니라 이달 말 이내로 협상을 마무리하자고 노조에 제안했다. 그러나 외환은행 노조는 기한을 정해놓고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대화 분위기를 저해한다며 사측의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김근용 노조위원장은 “47년간 존속해 온 외환은행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을지 여부와 5년간 외환은행의 독립경영과 책임경영 등을 감독당국과 국민 앞에서 공개 합의한 2·17 합의를 어떻게 개정할지를 결정하는데 불과 며칠이면 된다는 발상은 그 진의를 의심케 한다”고 비판했다.

또 김보헌 외환은행 노조 본부장은 “협상에는 기한이 아닌 제대로 된 논의가 중요하다. 본협상 착수로 대화가 재개되면 노조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은 조만간 금융위원회에 통합을 위한 예비인가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예비인가는 당국이 법적 요건을 따져 신청서 접수 후 60일 이내에 이뤄진다. 전산·운영·경영능력 등 세부적인 사항을 심사하는 본인가는 신청서 접수 후 30일 이내다.

금융위는 하나·외환은행 합병이 자회사 간 통합인데다 법적 요건이나 합병에 따른 금융안정성 등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심사는 예상보다 빠르게 결론이 날 수도 있다.

이에 노조와 사측의 협상 테이블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할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동안 접점을 찾지 못했던 외환은행 노사가 본협상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서 “세부내용에 대해서는 노사가 엇갈린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협상테이블이 마련되면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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