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문보고서와 퍼거슨 사태 속에서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지난 9일 「중앙정보국(CIA) 심문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520 쪽이 넘는 보고서는 중앙정보국이 2001년 9·11 이후 ‘강화된 심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테러 용의자들에게 조직적으로 자행한 고문과 다를 바 없는 심문 프로그램을 담고 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아예 ‘고문 보고서’라고 부른다.

수면 박탈, 물고문, 매달아놓기, 전기 드릴 위협, 모의(가짜) 처형 등 언론을 통해 보도된 고문의 종류를 대강 몇 가지만 훑어봐도 여기가 인권을 개선하라면서 중국이나 북한 등을 비난해온 인권선도국인 미국인지 미국이 ‘순수한 악’이라고 규정했던 이슬람국가(IS)인지 잘 구분이 안 간다.

중앙정보국과 공화당은 ‘애국심’을 운운하면서 테러 용의자로부터 정보를 빼내려면 ‘강화된 심문’이 불가피했고 실제로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보고서를 작성한 위원회의 최종 결론은 사실상 이런 ‘만행’을 통해서도 쓸 만한 정보는 별로 건진 게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앙정보국의 심문관들은 별 성과도 없는 심문 방법으로 10년 넘게 테러 용의자를 괴롭혔다는 말이 된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고문보고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우리는 고문에 반대한다”며 “미국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 티벳인들이 2009년 이후 중국의 지배에 항의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목숨을 잃었다는 데 대해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는 대신에 가난한 티벳이 중국 덕택에 발전하고 있다며 연쇄 분신은 망명해 있는 달라이 라마가 사주한 일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오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고문보고서 공개 이전에 발생한 퍼거슨 사태에 대해 논평을 내놓았다.

퍼거슨 사태란 10대 흑인 남성이 비무장 상태에서 백인 경관의 발포에 의해 목숨을 잃은 후에 살해자인 경관이 불기소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태를 말한다. 시위대에 가담한 일부가 방화, 약탈을 저지를 정도로 시위의 열기가 뜨겁고, 흑인 인권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는 사법 당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가 기세등등하다.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의 고질적인 흑인 차별 상황에 대해 ‘퍼거슨 사태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란 논평에서 “미국이 인권유린의 표본국, 인종차별의 왕국”이라며 “제 집안의 인권 문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북한 노동당은 그러나 탈북자 약 300,000명이 인신매매범들의 표적이 되어 심지어는 어린 소녀들까지도 노예로 팔리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탈북자 박미연 씨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의 탈북민들은 짐승 같은 취급을 받으며 약 21만원 정도에 팔린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이들이 어디로 팔려 가는지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번 미국 중앙정보국이 테러 용의자들에게 가한 잔인한 심문을 전세계에 공개한 인물은 미국 대통령도 인권 운동가도 종교 지도자도 아니었다. 그는 미국 의회에서 81세로 최고령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여성의원이었다. 파인스타인은 CIA의 행위로 미국의 가치와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며 이번 보고서 공개로 오점이 사라지지 않겠지만 미국이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는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고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고 말했다. 유체화법의 대가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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