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 어딘가에서 피로 물든 새가 아스팔트 위로 곤두박질쳐 그 자그마한 동체가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이 떠오르는 그런 소식이 있다. 아침에 찬연히 떠오른 햇빛만 봐도 절로 웃음이 나올 시절에 자살하는 청소년들 소식을 들으면 무언가 심하게 잘못돼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비감(悲感)이 든다.

지난 17일 저녁에 울산 북구 신천동 한 아파트에서 외식을 하고 들어온 가족들은 딸이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J(19)양은 이날 개인 소지품을 수리한다며 가족 외식에 따라 나서지 않았다. J양은 이번에 대학입시 수능 시험을 치른 학생이었다. J양은 가채점 결과 성적이 좋지 않게 나와 전문대를 가야겠다고 가족들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고 한다.

만일 정말로 그 수능 점수가 그 여리고 흔들리는 마음에 눈에 보이지 않는 비수 같은 절망의 원인이었다면 이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

공부를 잘 했건 못 했건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까지 그 얼마나 오랜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바깥의 꿈과 낭만을 찾아 뻗어가는 즐겁고 달콤한 몽상들을 가까스로 억제해 가면서 학업에서 오는 온갖 종류의 스트레스를 견디며 가끔 스마트폰으로 예능인들의 개그에 웃거나 가요를 들으며 학업의 고됨을 망각하기 위해서 인내한 세월이 그만 한순간에 날라가 버린 것이다.

도대체 수능 점수가 뭐길래 자기 목숨까지 버릴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혹자는 공부를 못하니까 미래도 어두워지고 비정규직에 돈 몇 푼 못 받고 아등바등 살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당연하다는 투로 말할지도 모른다.  

지난 15일 부산 해운대구 해상을 지나던 어선이 한 청소년이 물에 뜬 채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대전경찰과 교육청이 19일 전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인양한 시신은 여고에 재학 중인 M양으로 밝혀졌다. M양은 수능시험 그 다음날 관할경찰서에 가출신고가 접수돼 있었다. 이 여고생은 이미 서울 명문대 1차 수시에 합격한 상태였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M양은 서울의 한 명문대학의 1차 수시합격자 발표일에 학교 대신 부산으로 갔다.

보도에 따르면 교육 당국 등은 M양이 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해 오다가 수능시험 가채점 결과 바라던 성적대로 나오지 않자 이를 비관, 스스로 바다에 뛰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여고생의 자살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수능성적과 목숨이 동일한 가치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수능성적이 나쁘면 살아갈 가치도 힘도 없다!? 이는 정말 이상한 등식(等式)이다. 어떻게 수능성적을 목숨과 바꿀 생각을 했을까? 이게 가능한 일일까?

가능하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대학 가야 행복하다’는 말을 하루에 한 번씩 최소 12년 동안 들어왔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세뇌된 것이다. 어른들이 세뇌시킨 것이다. 세뇌의 힘이 너무 강한 나머지 변화의 여지를 자기 스스로 일궈낼 또 다른 가능성 쪽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이 마음이 바싹 말라 있는 것이다.

둘째, 두 여고생은 자신이 원하는 수능성적과 이어진 멋진 미래와 낮은 수능 성적과 연관된 ‘찌질한’ 미래를 비교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꿈꾼 생활을 누리지 못하게 될 바에야 ‘이제 고만 살자’는 쪽으로 생각의 가닥을 정리해 나갔을지도 모른다. 이미 학업으로 지친 아이들, 힘들고 외로울 때 스스로 추스를 힘을 배양시켜주지 않는 교육과 교육자의 희소성으로 인해 가채점 수능점수를 보고 그만 일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아 돌이킬 수 없는 한발을 내딛고 만 것이다.

그러나 생각은 현실과 퍽 다른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됐다고 해서 행복해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또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자신에 대한 몇몇 고정관념들에 너무 매달리지 않는다면 여러 기회와 축복 같은 만남, 잘 안 보이는 곳에 숨어 있는 행운과 조우할 때도 많다.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는 변화무쌍한 구름과 바람이 끊임없이 조화를 빚어내는 저 광대한 하늘이 펼쳐져 있다. 삼가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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