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오릭 판사, 현지 대형마켓들이 제기한 집단 소송 승인

▲ 1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이 농심·오뚜기에 제기된 8700억원대의 집단소송을 승인할 뜻을 비쳤다. 사진 / 홍금표 기자

농심과 오뚜기가 미국에서 가격 담합 및 정보 교환으로 8700여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집단 소송에 휘말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12일(현지시각) LA 한인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 윌리엄 오릭 판사는 지난 4일 농심과 오뚜기 및 이들 업체의 미국 현지법인을 상대로 현지의 대형 마켓 등이 신청한 집단 소송을 승인했다.

앞서 농심, 오뚜기, 삼양, 한국야쿠르트는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에 집단 소송 기각 신청을 낸 바 있다.

오릭 판사는 판결문에서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지난 2012년 7월 농심·삼양식품·오뚜기·한국야쿠르트 등 라면제조 4개사에 가격담합 과징금 1354억원(1억 2300만 달러)을 부과한 사실이 있다”며 집단 소송 진행 의사를 밝혔다. 오릭 판사는 오는 25일 향후 재판 일정 등을 정하는 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오릭 판사는 삼양식품과 한국야쿠르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집단 소송 대상에서 제외했다. 일각에서는 두 업체가 제외된 이유에 대해 가격 담합 정도가 덜하고 이들의 소명 이유가 근거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집단 소송은 LA 한인마트인 ‘플라자 컴퍼니’, ‘피코마트’ 등이 지난해 7월 집단 소송 승인 요청을 하면서 시작됐으며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매사추세츠·미시간·플로리다·뉴욕 주 등에서도 대형 로펌들이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신청한 집단 소송에는 캘리포니아 주내 식품점·마트 300여 곳이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원고가 제기한 배상액 규모는 8억 달러(8781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법원이 이처럼 국내 라면제조사의 가격 담합에 대한 집단 소송을 승인한 것은 국내 공정위의 과징금 결정을 근거로 미국 수입업자와 일반 소비자가 손해를 입었다는 원고 측 논리를 수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가격 담합 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담합 사실을 전제로 이에 대한 배상 규모를 결정하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공정위는 당시 국내 라면제조 4개사가 2001년 5∼7월 가격인상부터 2010년 2월 가격인하 때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각사의 라면제품 가격을 정보 교환을 통해 공동으로 인상했다며 2013년 과징금 부과와 함께 담합 및 정보 교환 금지명령을 내렸다. 당시 농심에는 무려 1077억 65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고 오뚜기에는 97억 5900만원이 부과됐다. 다만 삼양식품은 공정위의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로 120억여원의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이에 농심과 오뚜기 등 2개 라면업체는 과징금 취소소송을 제기하며 반발했지만 지난해 11월 법원은 공정위의 과징금이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이들 업체는 즉시 대법원에 상고해 내년 초 대법원의 최종 판결만 남겨두고 있다.

당시 제재를 내린 공정위의 결정문에 따르면 이들 라면제조 4개사들은 가격 인상계획 뿐만 아니라 각사의 판매실적 등 경영정보까지 상시적으로 교환해 온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한편 소송이 개시되더라도 어떻게 결론이 내려질지는 아직까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라면제조 4사에 대한 우리 공정위 과징금 규모가 1,354억원이라는 점에서 시장 규모와 인구 수가 훨씬 큰 미국에서는 4,000억원 이상의 벌금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원고가 담합 증거와 현지 라면 가격간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쉽지 않고 현지와 한국의 가격 차이가 차별화 정책에 의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들어 합의로 중간에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 미국에서의 집단 소송 승인에 따라 내년 초 대법원의 확정 판결은 더욱 주목받게 됐다. 미국에서 공정위의 과징금 결정을 근거로 집단 소송이 개시된 만큼 대법원이 과징금 처분이 정당하지 않다고 판결한다면 미국의 소송도 무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법원마저 과징금이 정당하다고 판결할 경우 미국 현지에서의 재판에도 큰 영향을 끼쳐 이들 업체의 부담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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