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섬유산업 이끈 한국 제조업 1세대

▲ 8일 오후 4시 향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한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뉴시스

우리나라에서 섬유산업을 이끌어 왔던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8일 향년 92세로 별세해 경제인들의 애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이날 “이동찬 명예회장이 노환으로 오후 4시에 별세했다”고 밝혔다.

이 명예회장은 대표적인 한국 제조업 1세대다. 1960-1970년대 코오롱상사, 코오롱나일론, 코오롱폴리에스터 대표이사를 지내며 섬유산업 발전을 이끈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인은 1922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2년 수료한 뒤 1957년 4월 12일 부친인 고(故)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와 함께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립하고 국내 최초로 나일론사를 생산해 한국 섬유 발전에 기여했다. 설립 20주년이 되던 1977년에는 코오롱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화학·건설·제약·전자·정보통신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고인은 1982년부터 1996년 1월까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983년부터 3년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지내며 섬유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섬유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는 대한농구협회 회장과 대한골프협회 회장, 2002 한·일 월드컵대회조직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하며 아마추어 스포츠 발전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이바지했다. 특히 코오롱구간마라톤대회, 코오롱마라톤팀 등을 창설해 대한민국 마라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엔 사회공헌에 적극 나섰다. 2001년 자신의 호 ‘우정’을 딴 우정선행상을 만들었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범죄가 잇따르자 미담을 발굴해 널리 알리자는 뜻이었다. 지난 4월엔 14회를 맞은 시상식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1996년 코오롱그룹 회장 퇴임 이후 이 명예회장은 미술 작품 활동에 전념해 1992년 고희전(古稀展), 2001년 팔순전(八旬展), 2009년 미수전(米壽展)을 열었다.

고인은 1982년 기업인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2년에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국내 최고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기업인 최초로 수상했다.

이 명예회장은 1945년 신덕진(2010년 작고) 여사와 결혼해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을 비롯해 1남 5녀를 뒀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코오롱그룹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2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경북 김천시 봉산면 금릉공원묘원이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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