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원짜리 제품을 250만원으로 부풀리고 이를 바탕으로 대출 ‘돌려막기’

▲ 관세청은 31일 3조원대의 허위 수출 등의 혐의로 모뉴엘 박홍석 대표 등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뉴시스

숱한 의혹이 제기되며 베일에 휩싸였던 ‘모뉴엘 미스테리’가 실체를 한꺼풀씩 드러내며 그 파장이 금융권 및 정·관계로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31일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3조원대의 제품을 허위 수출한 혐의(관세법 위반) 등으로 모뉴엘의 박홍석(52) 대표, 신모(49) 부사장, 강모(42) 재무이사 등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한 범죄에 가담한 모뉴엘 자금팀장 박모 씨 등 13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에 따르면 박 대표 등은 2009년 1월부터 지난 7월까지 3,330차례에 걸쳐 홈씨어터 PC 케이스(이하 HTPC; 가정용 영상 음향 재생장치) 120만대를 3조 2천억원 상당의 정상제품인 양 허위수출하고, 446억원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 대당 8천원~2만원에 불과한 HTPC를 무려 120배인 2,350달러(250만원 상당)로 허위 수출판매하고 이를 바탕으로 은행에 허위 수출 채권을 매각해 자금을 유용한 것이다. 이날 드러난 규모는 당초 1조 3천억원대로 알려진 허위 수출 규모보다 3배 가까이 많다.

박 대표는 2007년 HTPC가 국내에 재고로 쌓이면서 자금난에 봉착하자 이 처럼 수출가격을 고가로 조작하고, 수출실적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그는 150~180일의 대출 만기가 도래하면 다시 이를 반복해 대출 금액을 갚는 수법을 썼다. 이런 방식으로 모뉴엘은 최근 6년 동안 총 10개 은행에서 모두 3조 2천억원의 사기 대출을 받았고, 현재 6745억원을 상환하지 못한 상태다. 법원이 법정관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대금은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게 된다.

또 박 대표는 홍콩에 실제의 가공공장이 있는 것처럼 100만달러(약 10억 5천만원)을 투입해 창고와 위장조립 공장을 마련했다. 이 공장에서는 고용된 30여명의 현지인들에 의해 가동중인 것처럼 위장되거나 4만여대의 HTPC 박스가 쌓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물 이동 없이 허위 수출입을 반복한 것이다.

모뉴엘의 자회사인 잘만테크 역시 홍콩에서 2012년 3월부터 지난 6월까지 76차례에 걸쳐 8800만달러(약 927억 7천만원)를 위장수출한 사실도 적발됐다. 잘만테크는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박 대표가 전체 지분의 64%를 가진 대주주로 있고 대표는 동생인 박민석 씨다.

박 대표는 허위 수출과 더불어 자금 횡령 혐의도 받고 있다. 박 대표는 국내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자금을 자신이 관리하는 홍콩 페이퍼컴퍼니 계좌에 송금하고 이 가운데 446억원을 빼돌려 브로커 로비자금, 주택구입 등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또 개인 비자금 목적으로 국내 다른 업체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해외 페이퍼컴퍼니에 물품을 수출하는 것처럼 위장, 수출대금을 수령하는 방식으로 120억원 상당의 자금을 세탁해 국내에 반입했다. 이 자금은 카지노 도박 자금, 제주도 개인별장 구입, 연예기획사 투자, 개인채무변제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성일 서울세관 조사국장은 “허위수출 대부분을 해외에서 발생시켜 당국의 감시망을 피했고, 홍콩에 위장조립공장을 만들어 회계감사나 은행의 실사에 대비해 일련의 범죄가 장기간 적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1.5∼10%에 이르는 과도한 커미션을 브로커에게 지급하는 방법으로 대외 신뢰도가 높은 해외 대기업과 거래했다”며 “국내 금융기관이 외형적 실적에 의해 여신한도 부여했고 수출채권 서류의 세밀한 검토도 미흡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 국장은 “LED(발광다이오드) TV와 PC 시대에 홈씨어터 PC로 어떻게 1조원대 매출이 일어날 수 있느냐”면서 “금융권에서 이런 점을 미리 알고 심사에 반영했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관세청은 오는 다음주 말쯤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계획이다. 검찰이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하면 박씨의 배임, 횡령, 뇌물수수 등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모뉴엘은 로봇청소기와 홈시어터 PC 등으로 급성장한 가전업체로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2007년 세계가전박람회(CES) 기조연설에서 주목할 회사로 지목해 주목받았다.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견실한 회사로 평가받고 있던 터라 모뉴엘이 지난 22일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큰 파문이 일었다. 세간에서는 그 배경으로 경영진과의 불화, 허위 수출, 수출 대금 미수, 잘만테크에 대한 무리한 지원 등 갖가지 분석이 제기돼 왔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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