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167일 만에 여야 합의했지만…유가족 반발 여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67일 만인 지난달 30일, 여야가 진통에 진통을 거듭한 끝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이날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더 이상 민생법안 처리를 미룰 수 없다는 여당의 요구를 수용, 본회의 개의를 예고한 날이기도 해서 사실상 여야는 벼랑 끝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타결한 것이다. 이로써, 국회 장기파행 사태는 종식됐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여전히 여야 합의 사항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서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아울러 세부쟁점 및 정부조직법, 세법개정안, 내년도 예산안 등 여야가 여전히 대립하고 있는 사안들이 있어 당분간 진통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 장기파행 사태의 근원이었던 세월호 특별법에 극적 합의했다. 세월호 참사 167일 만에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처리된 것으로, 이로써 장기간 이어져온 국회 파행도 멈출 수 있게 됐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30일, 마라톤 협상 끝에 더 이상 국회를 파행으로 이끌 수 없다는 공감대 속에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다. 양당 원내대표 주요 합의 내용은 ▲지난 8월 19일 원내대표간 합의는 그대로 유효하며 여야 합의로 4인의 특검후보군을 추천한다 ▲특검 후보군 중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어려운 인사는 배제한다 ▲유족 참여는 추후에 논의한다 ▲정부조직법,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 세월호법은 10월말까지 처리한다 ▲국정감사는 10월 7일부터 27일까지 실시한다 등이다.

◆유가족 참여 놓고 또 다른 논란 예고
이날 이완구 대표와 박영선 대표가 합의한 내용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지난 8월 19일 2차 합의가 유효하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여야는 합의로 4명의 특별검사 후보군을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에 제시키로 했고, 아울러 특검 후보군을 선정할 때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인사는 배제키로 합의했다.

2차 합의안에서는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국회 추천 몫 4인 가운데 여당 추천 2인의 경우 야당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사전 동의를 얻도록 했었다. 하지만, 3차 합의안에서는 특검 후보 전원에 대해 여야 합의를 거쳐 추천이 가능하도록 강화했다. 다만 여야는 유족의 특검후보군 추천 참여 여부는 추후 논의키로 했다.

앞서 박영선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에 특검 후보 4명을 여야와 세월호 유가족이 특검추천위원회에 합의해 추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유가족 참여에 난색을 표하면서 ‘여야 합의’로 못 박고, 유가족들의 특검후보군 추천 참여 여부는 추후 논의키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유가족 참여 문제를 계속 논의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유가족 참여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어 향후 진통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이날 합의 내용과 관련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반응에는 온도차가 나타났다. 새누리당은 국회 장기파행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합의안에 만족하지 못한 유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밝혔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윤영석 원내대변인은 현안브리핑에서 “그동안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국회 본연의 업무를 하지 못한 데 대해 국민께 죄송스런 말씀을 드린다”며 “그 동안 송구스러움을 최선의 노력으로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변인은 그러면서 “새누리당은 이번 합의를 환영한다”며 “이번 정기회 남은 기간 동안 국민을 위한 예산심사, 법안검토, 국정감사에 최선을 다해 진정한 민생국회를 달성할 것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유가족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해 가슴이 무겁다”며 “협상의 현실조건상 최선을 다했으나 유가족들이 충분히 만족할 수 없는 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늘 합의는 세월호특별법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면서 “유가족과 국민을 위해 시대적 사명인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을 위해 분연히 나아갈 것임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진보정당 “도리어 후퇴한 합의” 맹비난
양당의 합의 소식에 군소 진보정당들의 반발은 거셌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이와 관련, 입장을 내고 “합의가 이뤄져 다행이라고 얘기할 수가 없다”며 “유가족의 요구와 국민의 기대를 한참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천 대표는 그러면서 “겨우 이를 위해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국민갈등을 조장한 (정치권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제남 원내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규명을 해달라는 유가족과 국민의 염원과는 크게 동떨어진 내용의 특별법을 양당이 합의한데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다”며 “양당합의는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 합의를 통해 국회를 정상화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일갈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특히, 특검후보 추천과정에 대한 유가족들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은 이번 합의는 결국 유가족의 뜻을 배제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면서 “이러한 결과를 낳기 위해 5개월 보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데 대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은 국민들께 죄송스럽게 여겨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 대변인은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 마련을 통해 국회를 정상화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요구에 대한 정치권의 노력은 비록 매우 미흡하나, 국회 의사일정이 더 이상 미뤄지는 것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외면할 수 없어 정의당 의원단은 본회의에 임하고자 한다”며 국회 정상화에는 함께한다는 뜻을 밝혔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도 세월호 특별법 여야 협상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도리어 후퇴한 합의, 매우 실망스럽다”면서 “이 합의 어디에 세월호 사건 이후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이날 통합진보당 의원단도 공동 성명을 내고 “여야 원내대표의 협상 결과는 세월호 유족들의 요구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며 “기소권·수사권 보장은 제쳐두고라도, 특검추천과정에 유족 참여조차 보장하지 못한 이번 합의안에 유가족들이 동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족들의 요구가 또다시 외면된 현실 앞에 참담하기 그지없다”고 개탄했다.

의원단은 이어, “세월호 특별법은 유가족들의 뜻이 반영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부족함이 있더라도 유가족들이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이라야 한다”며 “그것이 곧 성역 없는 진실규명의 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껍데기뿐인 ‘민생국회’를 핑계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외면하고 본회의 개의를 서두른 거대 양당의 행보에 통합진보당 의원단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본회의를 불참하고, 유가족들과 함께 이후 세월호 특별법 제정 방안을 모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여야 양당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 소식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유가족과 국민의 염원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철저히 외면하고 여야 자신들의 당리당략만을 추구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 / 원명국 기자

◆유가족 “수용할 수 없다” 반발
세월호 특별법의 직접적 당사자격인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대책위는 여야 합의안에 대해 또 다시 거부한다는 뜻을 밝히고 나섰다. 가족대책위는 30일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타결 소식에 반발해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 집결, “이번 여야 합의는 유가족과 국민의 염원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철저히 외면하고 여야 자신들의 당리당략만을 추구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가족대책위는 또, “유가족이 원하는 진상규명을 위한 3가지 원칙은 수사기관 독립성, 충분한 수사를 위한 조사기간 보장, 수사·조사·기소 사이의 유기적 관계 유지”라며 “여당과 야당은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다시 머리를 모아 고민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여야는 특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내세워 유가족이 빠진 채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 특검후보군을 형성하기로 했다”며 “여당과 야당, 유가족 중 청와대와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력은 여당이고, 수사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해 특검후보 추천에서 배제돼야 할 주체는 여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야당에 대해서도 “합의 전날 논의 자리에서 유가족 특검추천 참여는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했다. 혈서까지 쓰겠다고 했는데 하루 만에 뒤집어졌다”며 “이번 합의안은 진상규명을 위한 법이라 할 수 없다”고 재차 거부의사를 밝혔다.

한편,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 같은 반발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유가족들에게 여야 합의안을 수용해달라고 호소했다. 김무성 대표는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세월호 참사는 여야 문제가 아니라 전국민의 슬픔이고 다시는 이런 슬픔이 되풀이 되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한 문제”라면서 “100% 만족을 못하겠지만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만큼 수용해주는 것이 빠른 진상조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여야는 중립적인 인사를 특별검사로 임명해 사고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엄중 처벌, 재발방지 시스템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으니 국회를 믿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정기국회 정상화에 대해선 “많이 늦었지만 10월 첫 날을 국회 정상화라는 좋은 소식으로 시작해 다행”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인데 정치를 잃지 않고 타협으로 잘 마무리돼서 참으로 잘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길고 힘든 과정을 거쳐 합의를 이룬 이완구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 야당 지도부 모두 수고 많이 했다”며 “문희상 대표를 비롯한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노고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아울러 “합의안이 여야나 국민들 보기에 100% 흡족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서로 양보에 양보를 거듭한 끝에 도출한 결과로 이해해주고 존중해주길 바란다”고 재차 당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세월호특별법 협상 타결에 대해 “전원이 만족하는 안을 만들지 못했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30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생에 가장 긴 하루였다”며 이같이 밝힌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정치의 본분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고 협상의 불가피성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는 유족, 여야만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이고 해결은 빠를수록 좋다”며 “이 결정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끝나는 순간까지 유족 편에서 원하는바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남은 힘을 다할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유가족들의 반발에 대해서는 “유족들께서도 좀 최선을 다한 안이라는 점을 양해해 줬으면 좋겠다”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법. 세월호특별법”이라며 “그 법이 참 슬프게 타결됐다”고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이어, “이 땅에서 약자의 서러움과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 이렇게도 힘든 것인지…”라고 진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의 이 같은 심경에 당내에서는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 같은 당 김경협 의원은 트위터에 “그렇게 슬픈법에 왜 합의했나”라며 “차라리 결렬선언을 하는 게…”라며 비판적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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