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법원 내부게시판 코트넷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장문의 글을 게시했다.

특히나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첫 문단이었다. “판사와 검사의 책무는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다”라고 시작한 김 판사는 권세와 무력의 패도정치(覇道政治)를 추구하는 소수의 권력자들이 “국가의 핵심기능을 좌지우지하고…권력자들의 마음 내키는 대로 통치를 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아무리 다수결의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정신의 한 축인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것이다”고 준엄한 어조로 말했다.

권력자들이 법 위에 군림하는 정치가 패도정치라면 권력자들이 법에 따르는 정치가 법치주의다. 법치주의와 패도정치는 물과 불처럼 서로 맞서는 성질이 있어 양립 불가능하다. 패도정치가 때로 법치주의의 탈을 쓸 때가 왕왕 있다. 소수의 권력자가 자신들한테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법치’를 운운하며 자신들의 불의는 덮고 타인들의 정의는 억압하려 든다.

비근한 예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하여 수사·기소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 ‘사법체계 교란’이라고 떠들던 주장을 들 수 있다. 얼마 전 법학자 수백 명이 성명서를 통해 세월호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 부여는 헌법 체계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다소 보수적 성향의 대한변호사협회까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나자 마치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요구가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무슨 대단한 것인 양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대던 나팔수들이 조용해졌다.

패도정치가들은 이렇듯 법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줄 안다. 이들이 사법체계 교란이라고 말하는 순간, 수사권과 기소권을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길 원했던 사람들은 졸지에 헌정질서 교란자로 몰리고 말았다. 이런 정치가들에게 애민 사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까? 이들은 말끝마다 애국한다고 말하는데 나라의 3대 구성요소 중 하나가 국민이다. 진정 애국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생살과 생혈 같은 내 자식이 그 차가운 암흑 속에서 손톱이 빠져라 검은 멍이 들 때까지 문과 벽을 긁어대면서 구출되기를 애타게 바라는 그 냉막(冷寞)한 절망의 시간 동안에 무슨 일이 ‘진행’됐었는지 그 진실을 규명하자는 국민들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임진왜란이 나자 악정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백성들이 제 나라 제 땅을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왜군들에게 붙어 제 나라를 상대로 싸운 사실(史實)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명량이라는 영화가 초유의 관객을 동원했다. 무엇 때문에 왜군과 싸우려고 하시는 겁니까 라는 아들의 질문에 이순신 장군은 이 나라 조정이 아니라 이 나라 백성들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나라란 궁극적으로 국민들이 나라 혼을 간직하는 날까지만 존재하는 것이다. 위정자들의 국민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옵션이 아니라 의무이자 직업윤리다.

이제 당리당략을 앞세워 법치주의의 고결한 정신을 조롱하거나 폄훼하며 국민들의 진의(眞意)를 왜곡시켜 정쟁거리로 만들어 분열과 이간질을 조장하는 패도정치꾼들이 득세하는 나라가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을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김동진 부장판사는 “현재의 나는 법치주의가 죽어가는 상황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직판사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또 좌파 판사라는 비난과 조롱을 예상하고도 토로한 작심발언을 허투루 들을 수 있을까? 그의 말대로 법치주의가 죽어가고 있다면 이를 다시 살려내야 한다. 정치인이라면 그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정치인의 법치주의 지향의 첫 걸음은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에 새 삶의 활기를 불어넣는 공감의 실천 속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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