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실적 부진에 내분까지…탈출구 있나?

▲ 이건호 행장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 전산기 교체 관련 내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요구에 대해 “거취 문제는 이사회 결정에 맡길 것”이라고 답변했다. ⓒ뉴시스

KB국민은행이 최악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올 상반기 KB국민은행의 순이익이 주요 은행 중 최하위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다. 또한 내부에서는 온갖 불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관치 금융 최악의 폐해’ 사례로 꼽혀
‘임 회장·이 행장 용퇴해야’ 여론 확산
검찰 수사 착수, 향후 사태 비화될 수도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리딩뱅크’로 위상을 굳게 다져왔던 KB국민은행이 창사 이래 가히 최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업계 최하위 수준의 실적은 물론 최고 경영진 간에 벌어지는 불화, 여기에 온갖 금융 관련 사고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는 상황이다.

◆ ‘사실상 꼴찌’ 총제적 난국

무엇보다 KB국민은행·KB금융그룹을 옥죄고 있는 요인은 실적으로 꼽힌다. 지난 9월 우리은행(5267억원)과 더불어 순익이 가장 적었다. 지난 9월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국민은행이 거둔 순이익은 고작 5,462억 원에 그쳤다. 이는 올해 상반기 5,267억 원의 순이익을 거둔 우리은행과 더불어 업계에서 가장 낮은 순위로 기록된다.

KB국민은행의 이 같은 극심한 부진은, 단순히 경쟁 관계로 꼽히는 신한은행(8,421억 원)보다도 크게 뒤쳐진다는 면에서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특히 KB국민은행보다 총자산 규모가 작은 곳으로 꼽히는 기업은행(5,778억 원)보다도 훨씬 못한 이익 규모를 올렸다는 게 더더욱 충격으로 다가온다. 가히 총체적 난국이라 해도 무방한 것이다.  하나금융지주 산하의 하나은행과 외환은행도 올해 상반기 두 은행의 순이익을 합산하면 무려 8,658억 원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리딩뱅크’로서의 KB국민은행의 입지는 걷잡을 수 없이 쇠락되고 만다.

이러한 KB국민은행의 ‘몰락’은 특히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연속으로 2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렸던 과거의 전성기를 생각하면 보다 뼈저리게 다가온다. 은행권에서는 “이후 극심한 경쟁 속에서 KB금융그룹 자체의 경쟁력이 예전만 못한 여파가 현재 불어 닥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는 분위기다.  여기에 KB국민은행은 순이익 규모뿐만 아니라 총대출·총수신 시장 점유율도 크게 떨어져 있어, 일시적인 부진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기도 하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12년 말까지만 해도 총대출 시장 점유율이 25.6%에 이르렀지만, 올해는 6월 말 현재 24.5%로 1.1포인트 떨어진 상태다.

이렇게 KB금융그룹이 극도로 부진을 면치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관치금융이라는 고질적 병폐와 이에 따른 후유증 탓”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KB금융지주는 MB정권 출범 후인 지난 2008년 9월부터 금융지주 체제를 본격적으로 출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KB금융그룹은 금융당국의 잇따른 제제 조치는 물론 지주 회장과 은행장 사이에 끊임없이 불화가 발생했다. 금융가는 “상황이 이렇게 어수선해짐에 따라 KB국민은행의 경쟁력도 그 여파로 서서히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 “거취 문제 이사회 결정에 맡길 것” 강공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이렇게 올해 상반기 내내 지주와 은행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고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나서 임영록 KB금융그룹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 모두 중징계 대상에 오르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이렇게 경영공백 사태가 일어나며 KB국민은행의 영업력과 KB금융지주의 실적은 곤두박질쳤다”며 “아울러 KB국민은행의 영역 능력까지 단기간에 치유되기 힘든 치명타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제는 거의 ‘고질병’의 지경에 이르게 된 최고 경영자간 사이의 갈등 및 반목은 오늘날에도 해결될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현재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은행장 간의 격한 불화는 해소될 기미 없이 마치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최악의 국면을 향해 치닫는 측면이 강하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9월 1일 이건호 행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행장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배수진을 치는 취지의 발언을 해 이를 둘러싼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 KB국민은행에서 잇따라 악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을 놓고 “이제는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 모두가 용퇴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점차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뉴시스

이날 오후 3시 30분 국민은행 여의도 본사 4층에서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이건호 행장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 전산기 교체 관련 내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요구에 대해 “거취 문제는 이사회 결정에 맡길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건호 행장은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된 KB금융그룹 및 KB국민은행 임원들을 검찰에 고발하는 과정에서 “내분을 일으켰다”는 비판에 시달려온 바 있다. 이에 이 행장은 ‘나를 그만두게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일종의 극약 처방을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8월 26일 국민은행은 “기존 전산시스템을 교체할 유닉스의 잠재적 위험 요인을 알고도 이사회 보고서에 고의로 누락시켰다”며 김재열 KB지주 최고정보책임자·문윤호 KB지주 IT기획부장·조근철 국민은행 IT본부장 등 세 명을 업무방해죄 혐의로 검찰에 전격 고발한 바 있다. 당시 이건호 행장은 “이들은 엄연히 업무방해죄에 해당되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사법 당국의 판단을 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렇게 이건호 행장이 단호한 조치를 내린 데 대해 은행권 일각에서는 “평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들을 주 전산기 교체에 따른 명분으로 쳐내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금융가에 오르내렸다. 고발당한 세 명의 임직원은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줄곧 이건호 행장과 대립한 것으로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에 이러한 추측은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건호 행장은 “향후 거취 문제는 이사회 결정에 맡길 것”이라고 밝힌 이유에 대해 “주 전산 교체 관련 범죄는 덮을 수 없는 문제였지만 이 과정에서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것에 대해선 은행장으로서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건호 행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본인의 거취 표명을 밝힌데 따라 KB금융그룹 이사회는 이 행장의 거취를 놓고 이사회를 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경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 ‘국정감사에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현재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은행장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의 경징계 결정을 최종 결재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이사회가 먼저 나서서 이 행장에게 사퇴를 요구할 수는 없는 묘한 처지에 놓여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발 사건이 검찰에 배당됨에 따라 향후 검찰 수사에 따라 KB금융지주는 최악의 경우 ‘형사 처벌’ 논란에 빠질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이로 인해 KB금융지주그룹 전체의 정상화를 향한 길은 험난해 보인다.

지난 9월 2일 서울중앙지검은 KB국민은행이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KB금융지주와 은행 임원들을 고발한 사건을 조사부(장기석 부장검사)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이분만 아니라 검찰 조사부는 KB국민은행노동조합(새노조)이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은행장에 대해 고발한 사건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KB국민은행노조는 지난 3월·6월 임 회장과 이 행장을 비롯한 전·현직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KB금융지주가 LIG손해보험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임원들이 당초 입찰금액인 4,200억 원 보다 2,000억 원 이상 많은 6,400억 원으로 최종 입찰에 제안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은행에 손해를 입혔다”는 의혹을 제기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노조 측이 제출한 고발장에는 “전·현직 경영진이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에 투자했다가 7,993억 원의 손실을 봤다”는 배임 혐의도 들어 있어 이에 대한 수사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검찰 측은 이와 관련해 지난 9월 1일 윤영대 KB국민은행노조 위원장을 고발인 자격으로 불러 사실관계를 집중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 사건이 밀접하게 연관 있는 것으로 보고 금융감독원의 KB금융지주, 국민은행에 대한 특별검사 관련 자료를 넘겨받는 대로 검토할 계획이다.

▲ KB국민은행노조는 지난 3월·6월 임 회장과 이 행장을 비롯한 전·현직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뉴시스

이처럼 현재 KB금융지주는 노사 간 갈등도 예사롭지 않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KB국민은행 노조는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뿐 아니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까지 모두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KB국민은행 도쿄지점이 '신규영업 중단'이라는 초강력 제재를 받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일본 금융청은 국민은행 도쿄지점 및 오사카지점이 4개월 동안 신규영업을 못 하도록 하는 강력한 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이렇게 KB국민은행에서 잇따라 악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을 놓고 “이제는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 모두가 용퇴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점차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임 회장과 이 행장 사이의 갈등이 수습되기에는 이미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 이르렀다”며 “오히려 사퇴를 압박하거나 금융당국의 제재로 두 사람의 퇴진을 유도해야 하는 게 KB금융지주그룹의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또한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정치권에서도 ‘KB사태’라는 내홍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향후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임영록 회장·이건호 행장 등 당사자들은 국정감사에 소환되어 여·야 의원으로부터 상당한 ‘곤욕’을 치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사포커스 / 하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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