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히딩크에 이은 진정한 챔피언, 김인식 감독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의 축구대표팀에 이어 한국 야구가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코리안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한가운데 김인식(59) 감독이 있다. 그의 야구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중히 여기는 '휴먼 베이스볼'이다. 다시 말해 그는 인화(人和)의 야구를 한다. ◆ "야구는 사람이 하는 것" 김인식 감독은 아시아지역 1라운드(3월 3~5일)에서 일본의 오 사다하루(王貞治) 감독이 야구의 작은 부분을 중시하는 '스몰 볼(small ball)'을 표방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정해놓고 하는 야구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고, 상대에 따라 다르다. 야구는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작전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이 바로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 어떤 사람을 쓰느냐가 내 야구의 기본이다." 김인식 감독의 야구는 이번 WBC에서 고유의 색깔을 유감없이 드러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졌다. 투수 교체와 대타 기용에서 마치 상대의 대응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완벽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했다. 강압과 규제로 선수단을 통제하지 않고, 스스로 절제하고 운동하도록 했다. 투수 출신인 김 감독은 투수 기용과 교체 타이밍에서도 완벽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선발로만 뛰었던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1라운드 대만 전부터 마무리로 기용, 투수진의 든든한 수호신으로 자리 잡게 했다. 박찬호는 일본전과 멕시코전에서 1점 차의 리드를 안고 마운드에 올라 모두 승리를 지켜냈다. 그때 김 감독은 "공의 구위로 볼 때 마무리는 오승환(삼성)이 있지만 긴박한 순간에서의 경기 운영은 경험이 풍부한 박찬호에게 맡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야구는 사람이 한다'는 그의 원칙이 제대로 적중한 대목이다. '예방은 치료보다 낫다'는 철학에서 그의 투수 운용이 출발한다. 한국의 구원투수진은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마운드에 올랐고, 정확히 자신의 몫을 수행했다. 이런 성공은 그 투수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데서 비롯됐다. ◆ 2002 히딩크 & 2006 김인식 종목은 다르지만, 마치 2002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호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했다. 2002한일월드컵이 끝난 후 주요외신들은 히딩크호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통산 5회 우승을 이룩한 브라질보다 히딩크호가 더욱 인상적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말이다. 4년이 지난 2006년. 그 바통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김인식호가 이어받았다. ◇ 물 샐 틈 없는 수비 히딩크호는 견고한 스리백과 폭넓은 활동량을 자랑하는 미드필더들이 환상조합을 이루며 세계적인 강팀들의 막강공격력을 무력화시켰다. 김인식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선전부터 준결승전까지 7경기를 치르면서 단 1개의 에러도 범하지 않는 '퍼펙트 수비'를 보여줬음은 물론이고, 고비 때 마다 호수비를 펼쳐 보이며 경기의 흐름을 우리 쪽으로 가져와 승리의 주춧돌을 다졌다. 히딩크호와 김인식호 모두 승리의 기본요건이지만 가장 완성하기 힘들다는 수비진의 환상하모니를 선보이며 '세계 4강'이라는 대업을 이뤄낸 것이다. ◇ 지휘봉을 잡은 감독의 능력 히딩크 감독이 보여줬던 멀티플레이어를 앞세운 변화무쌍한 전술과 김인식 감독이 추구한 '황금 계투작전'은 한국대표팀의 최고경쟁력이 되며 4강신화의 밑거름이 됐다. 또한 두 명장은 나란히 '믿음'이라는 단어를 앞세우며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줄곧 부진했던 설기현과 페널티킥을 실축한 안정환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며 승리의 주역이 되게 한 히딩크 감독과 빈타에 허덕이던 최희섭을 승부처에서 대타로 기용해 '최강' 미국을 꺾는 수훈갑으로 만든 김인식 감독은 '믿음'으로 선수들을 이끌어주며 대표팀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 선수들의 정신력과 집중력 히딩크호와 김인식호의 모든 탑승원들은 대회 초반부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멋진 경기를 펼쳤다. 과거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번번이 무너졌던 한국축구의 모습과 한순간의 방심으로 뼈아픈 패배를 당했던 한국야구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팀 전체가 놀라운 정신력과 집중력으로 똘똘 뭉치며 승부처에서 더욱 강한 모습을 보일 수가 있었다. 다시 말해 모든 선수들이 '대한민국 대표'라는 사명감을 확실히 가지고 경기에 임했고, 그런 정신력과 집중력이 합쳐져 '대한민국의 힘'이 되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세계 4강'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직은 사람이 만들고, 운영은 사람을 다루는 데서 출발한다. 야구도 경영이다. 엔트리 30명은 모두 장점이 있다. 그 장점을 살려주는 것이 책임자가 할 일"이라는 김인식의 휴먼 베이스볼. 그 야구가 한국팀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렸다.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역사를 다시 쓴 김인식 감독에게 그는 '진정한 챔피언'이다. ♣ 대한 민국은 ‘김인식 코드’에 열광한다! 일본의 3대 명장에 빗대본 그의 리더십 스타일 리더십을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일본의 3대 명장이라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이들이 울지 않는 새를 울게 하는 방법은 다혈질인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리고, 히데요시는 울게 하며, 역경을 견디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이에야스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 김인식 감독을 굳이 이들 중에서 비교하자면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는 형에 가깝다. 지연규, 문동환, 조성민, 최영필 등 각기 다양한 이유로 인해 이제는 한물갔다고 생각했던 선수들이 김 감독 밑에서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이현세 작 <공포의 외인구단>에 나오는 손병호 감독 같기도 하다. 감독이 아무리 뛰어나도 야구는 선수가 한다는 말이 있다. 김인식 감독은 눈앞의 이익에 의를 저버리지 않고, 소외된 선수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며 좌절한 선수들에게는 자신감을 안겨 주려고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 정계도 김인식! 인내와 슬기로움 본받자는 의견 줄이어 정계에서도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이 화제다. 선수들이 충분히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주는 ‘인내’와 ‘슬기로움’으로 무장한 김 감독의 팀 운영 방식.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는 "김인식 감독이 WBC에서 미국과 일본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능력 있는 선수를 골라 썼기 때문인데, 노 대통령도 새 총리를 뽑을 때 코드를 떠나 능력 있고 덕망 있는 선수들을 뽑아 국정을 수행하면 대한민국도 잘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으며 "김 감독의 믿음과 자율의 리더십을 배워 적극 활용해 보고 싶다"고 견해도 있었다. 개인보다 팀을 우선시한 선수들의 희생정신에 믿고 맡기는 김인식 감독 특유의 리더십이 우리사회에 새롭지는 않지만 재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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