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영화의 변천사를 통해, 그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어떤 식으로 이동했는지 살펴보자

다시 추운 계절이 돌아왔다. 우리 주위의 불우하고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 때, 시대를 조망하는 최적의 대중적 스펙트럼인 영화 쟝르를 통해, 그간 시대는 사회적 소외계층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장애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예술은 이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이번 리스트에서 주목할 점이라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시대는 물론 국가별로도 다르다는 부분이며, 나름의 민족적 색채가 드러나 추후의 향방 또한 다르게 진행되리라는 예상이다. ■ 미라클 워커 (1962) 감독: 아서 펜 출연: 앤 뱅크로프트, 패티 듀크, 빅터 조리 '장애인의 현실 극복' 사례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위인'의 일종으로까지 여겨지는 헬렌 켈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미라클 워커"는 역시 널리 알려진 헬렌 켈러와 그녀의 가정교사인 앤 설리번과의 관계를 담고 있으며, 실화에 근거해 펼쳐진 이 '정상인'과 '장애인' 사이의 교감 테마는 이후 장애인 영화에 반드시 설정되는 모종의 '버디 요소'로서 작용하게 되어, 인물에 대한 이해를 돕고 관객의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장치 역할을 맡고 있다. 앤 설리번 역의 앤 뱅크로프트와 헬렌 켈러 역의 패티 듀크가 모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낳았을 만큼 훌륭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영화이지만,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헬렌 켈러의 생존 당시 시각을 그대로 답습하여, '장애인은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정상인과 같은 사회적 역할을 해야한다'라는 일률적 제도화를 역설하고 있어 근래의 시각으로는 실망감과 함께 어느 정도 불쾌감까지도 느껴진다. ■ 토미 (1975) 감독: 켄 러셀 출연: 올리버 리드, 앤 마그렛, 로져 댈트리 그룹 "더 후"의 논란많은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로, 변태적 비쥬얼리스트 켄 러셀이 연출을 맡아 독창적이면서도 어딘지 끔찍스럽고 불쾌스런 영상을 끝없이 선보이고 있는 작품이다. "토미"의 주인공 '토미'는 자신의 계부가 친부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를 묵과하려는 어머니로부터 "너는 어떤 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다"라는 암시를 받은 뒤 실제로 맹인이자 농아가 되어버린, 그야말로 사회적 무드와 금기, 세대간의 갈등을 상징하기 위해 '설정'된 인물이다. 이처럼 1970년대에는 장애인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모종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상징하고 풍자하기 위한 도구로서 장애인을 '설정'하는 영화가 많았는데, 가장 대표적으로는 저지 코진스키의 원작을 영화화한 "촌시 가드너, 그곳에 가다"(1979)를 들 수 있으며, 이런 '상징'으로서의 장애인 배치는 훗날 "포레스트 검프"(1994)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 작은 신의 아이들 (1986) 감독: 랜다 헤인즈 출연: 윌리엄 허트, 말리 매틀린, 파이퍼 로리 얼핏 단조로운 멜로드라마처럼 보이는 "작은 신의 아이들"은, 그간 모종의 상징으로서, 혹은 '인간승리' 드라마의 포커스로서 다루어진 장애인들에 대해 사실적이고 다면적인 시각을 도입한 최초의 영화들 중 하나이다. '정상인과 장애인의 교감' 테마는 여전히 적용되고 있지만, 극중에 등장하는 농아 사라 노먼의 캐릭터는 당시까지 등장했던 그 어떤 장애인 캐릭터보다도 생생히 살아있으며, 거추장스런 미화 과정을 뒤엎고 성적으로 문란하며 아집과 괴팍함으로 그득찬 인물을 묘사해냄으로써 진정한 장애인의 삶을 가감없이 바라볼 수 있게끔 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도왔던 로맨스 파트들인데, 특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두 배우의 열연으로 인해 '설정을 뛰어넘는' 화학작용이 일어나며, 실제 농아이기도 한 여주인공 말리 매틀린은 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 제 8요일 (1996) 감독: 쟈코 반 도마엘 출연: 다니엘 오떼유, 파스칼 뒤껭, 미유-미유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렸던 "제 8요일"은 그간 좀처럼 다루어지지 않았던 '다운증후군' 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바쁜 비지니스맨이 순수한 다운증후군 환자 소년과 교류하며 얻어지는 '인간성 회복'의 테마와 함께, 역시 장애인 영화에 반드시 등장하는 '정상인과 장애인의 교감'을 답습하고 있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운증후군 환자 죠르쥬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현실감이 없다. '정치적으로 조정된 시각'을 도입한 것까진 좋으나, 이를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권장하다 보니 '장애인은 모두 선하고 꾸밈없는 몽상가이며, 정상인에게 없는 참다운 인간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 류의 설정이 근간의 장애인 영화에서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데, <제 8요일>은 이런 기묘한 시대적 방향성에 편승한 대표적 케이스이며, 이 때문에 감동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인공적이라는 느낌을 전해주기도 한다. 유럽과 미국의 '시각차'와 사회적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한 지표이기도 한 것 같다. ■ 오아시스 (2002) 감독: 이창동 출연: 설경구, 문소리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장애인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조망한 많지 않은 작품들 중 하나이며, 이창동 감독에게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수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는 앞서 언급한 "제 8요일:의 경우처럼, '때묻지 않은 순박하고 순수한 존재'라는 식의 고정된 패턴에 머물고 있으며, 이 역시 '정상인과 장애인 사이의 교감' 테마를 이용해 너무나도 판에 박힌 장애인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 또한 받고 있다. 마치 문명과 비문명 간의 대립처럼 설정됐던 정상인과 장애인의 관계가 이 영화에서는 '사회적 소외계층 간의 교류'라는 형식으로 재구성되어 일정부분의 호감을 사며, 다소 억지스런 상황설정과 판에 박힌 인물설정에도 불구하고 설경구와 문소리의 열연 덕택에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해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경제불황 이후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재조명이 TV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심도있게 다루어지고 있어 "오아시스"는 오히려 이런 프로그램들이 보여준 생생한 인물들에 비해 다소 안이한 시도를 한 것은 아닌가 생각되지만, 그간 국내에서 등장했던 장애인 소재의 영화들 중 가장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진지한 인간 드라마로서 '장애인 영화'의 기능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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