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관리 대책과 군대문화 달라져야 한다

지난 6월 21일 저녁 8시 무렵 강원 고성군 육군 22사단 GOP(일반 경계소초)에서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임 아무개 병장(22)이 동료 병사들을 향해 수류탄을 터뜨리고 K-2 소총 10여 발을 난사해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고생하는 전우들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다 소중한 목숨들이 스러져간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관심병사’란 말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허점투성이 사병관리 대책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임병장은 왜 폭주하게 되었나?

키 169cm에 몸무게 55kg, 다소 왜소한 체격이지만 현역판정을 받고 2012년 입대해서 작년 1월 22사단에 배치됐다. 그런데 왜 전역을 3개월 앞둔 시점에서 말년병장 임 병장은 폭주하게 되었을까? 먼저 국방부의 말을 들어보자. 15일 오후 육군본부 헌병실장 선종출 준장은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임 병장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선 준장은 “임 병장은 지난달 21일 오후 4시 이후 초소 순찰 일지 뒷면 겉표지에 자신을 빗댄 그림이 더 늘어난 것을 보고 입대 후 일부 간부와 동료 병사들로부터 무시나 놀림을 당하는 등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을 회상하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어 선 준장은 “순찰 일지에는 소초원들의 특성을 묘사한 캐리커처 형식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임 병장에 대해서는 엉뚱하고 어수룩한 캐릭터의 ‘스펀지밥’과 라면을 좋아하는 것을 희화화한 ‘라면전사’ 등으로 그렸다”면서 “임 병장은 다른 소초원과 달리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 강원도 동부전선 GOP서 총기난사 후 도주해 구속된 임 병장이 8일 오후 동부전선 22사단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뉴시스

동료들은 임 병장을 보면 ‘슬라임, 야 슬라임’ 이런 식으로 성가시게 괴롭혔다고 그의 변호인 김정민 변호사가 밝혔다. 슬라임은 컴퓨터 게임이나 공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젤리처럼 물컹물컹한 느낌의 기분 나쁜 생명체를 말한다. 임 병장은 성장기부터 입대하기 전까지 혼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임 병장의 할아버지는 한 인터뷰에서 “대인관계가 넓은 편이 아니었고, 친구들과 장난치고 어울리는 걸 싫어했다”고 말했다. 지나칠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 탓에 고등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임 병장은 2012년 말 군에 입대했다. 입대 장병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인성·적성검사에서 ‘근무 부적합’ 결과가 나왔다. 군은 임 병장을 ‘A급 관심사병’으로 분류했다. 임 병장은 군 소속 전문상담관과 심리 상담 과정에서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상관이나 후임병을 대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호소했다. 임 병장은 자신의 그런 성격을 고치려고 했지만 원하는 대로 안 돼 좌절할 때도 많았다. 그러다가 임 병장은 지난해 11월 실시한 인성검사에서 ‘B등급’ 판정을 받았다. 올해 3월15일 실시된 재평가에서도 ‘양호’ 판정을 받았다. 임 병장은 지휘관의 판단 아래 GOP 경계근무에 투입됐다. 그렇게 복무하던 중 GOP 초소 근무일지에서 ‘비쩍 마르고 탈모증으로 머리카락이 빠진 남자’가 그려진 그림과 자신을 비하하는 낙서들을 발견하자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분노가 총기난사로 이어졌다.

임 병장에 대한 관심병사 평가가 A급에서 B급으로 평가 조정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겉으로 조금 좋게 달라졌다고 해서 마음까지 확 달라질 수 없기 때문에 관심병사 등급 조정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관심병사 제도의 문제

지난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 28사단 530GOP에서 장병 8명이 죽고 4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국방부는 김 아무개 일병이 수류탄 1발을 내무실에 던지고, K-1 소통 44발을 쐈다고 발표했다. 김 일병은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과 욕설 등 인격모독을 당한 데 앙심을 품고 살해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군 당국은 심리검사와 면담으로 위험병사를 따로 분류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관심병사’라는 용어가 나타났다. 그 취지는 민간인 생활을 하다가 온 청년들이 낯선 군대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살상용 무기를 다루는 군대에서 돌발적인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는 데 있다.

보호관심병사 분류 기준은 3등급으로 나뉜다. A급은 특별관리대상으로 GOP 근무를 할 수 없다. 자살우려자 중 계획?시도 경험자나 사고유발 고위험자가 이에 포함된다. B급은 중점관리대상으로 GOP 근무가 가능하다. ▲결손가정, 신체결함, 경제적 빈곤자 ▲성 관련 규정 위반 우려자 ▲성격 장애자 ▲구타 및 가혹행위 우려자 ▲사고유발 위험자 등이 포함된다. C급은 기본관리대상으로 물론 GOP 근무가 가능하다. ▲입대 100일 미만자 ▲허약체질자 ▲보호가 필요가 병사 ▲특별관리대상에서 등급조정자 ▲동성애자가 포함된다.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22사단에는 1800명의 관심병사가 있으며 A급은 300명, B급은 500명, C급은 1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에 따르면 군 전체 병사의 20%가 관심병사이고 이 중 A급이 3.6%인 1만7000명이다. 전체 병사의 20%가 관심병사라면 5명 가운데 1명이 관심병사라는 얘기다. 이도 문제지만 ‘관심병사’에 대한 기준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 ‘결손가정’이나 ‘경제적 빈곤자’는 무조건 B급으로, 동성애자는 C급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왜 이들이 ‘관심병사’인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 다른 조항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국방부의 고충을 이해 못할 바는 없다. 천차만별인 사람의 체질과 체력, 더더구나 마음속까지 등급을 매겨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기도 하다. 어떤 관점에서든 그 분류 기준이 임의적이라는 인상을 받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관심병사 개개인에 대한 정확한 대책을 기대한다는 것이 좀 무리처럼 보인다.

▲ 23일 오후 군 당국이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해 고성 GOP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인 임 병장이 탄 것처럼 속인 앰뷸런스를 앞세우고 강릉동인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물론 임 병장의 폭주에는 자기 책임도 있다. 임 병장도 이를 인정한다. 육군이 공개한 자살 시도 직전에 그가 작성한 메모에는 “모두에게 미안하다…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건 살인을 저지른 건 크나큰 일이지만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사는 게 죽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고 괴로울 테니까”라며 “나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그들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적혀 있다.
군대 특유의 역동적이고 남성적인 문화가 체계적인 사병관리제도와 결합했더라면 임 병장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군은 임 병장 사건의 책임을 물어 22사단의 사단장(소장), 대대장(중령), 중대장(대위)을 보직해임을 결정했다. 그러나 관심병사와 관련된 사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임 병장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지난 27일 하루 동안 ‘A급 관심병사’ 2명이 잇따라 목을 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8일 군은 중부전선 모 사단에서 박 아무개 이병이 영내 화장실에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동부전선에서도 신 아무개 이병이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히 신 이병은 22사단 소속임이 밝혀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5월 입대한 신 이병은 입대 전 여러 차례 자살 시도 전력이 있었지만 군은 판정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 이병을 복무 부적합 심사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저출산으로 인한 군대 병력 부족 때문이라고 하는 설이 파다하다. 22사단의 경우 관심사병을 죄다 열외시키면 초병 순환근무조를 짜기도 힘들다는 말이 나왔다. 분단국이자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주변 열강에 둘러싸인 한국 안보에 그야말로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관심병사만 문제가 아니라 장교?부사관급에서 ‘관심간부’도 해마다 늘고 있어 이 또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9일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현역 복무 부적합 전역 인원 현황’에 따르면 2010년 이래 모두 1099명이 전역했다. 국민 세금으로 키운 간부들의 대량 전역 사태는 세금 탕실이요 전력 손실에 다름 아니다. 이제 관심병사와 관심간부 관리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다.

▶ 사병 인권 의식과 병영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나라 20대 남성 평균 자살률은 10만명 당 23.5명이다. 장병들의 자살률은 10만명 당 11명 정도로 그보다는 훨씬 낮다. 그러나 자살한 병사 열 명 가운데 4명 정도는 관심병사로 분류됐다. 이는 관심병사 분류기준이 어느 정도 효용성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군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진단방식을 더욱 정교화해서 정확한 개인별 처방을 목표로 해야 하고, 또한 부족한 상담관을 늘리며 근무 부적합 병사와 간부의 조기전역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국방부는 다행히 이런 계획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대급에 1명씩 전문상담관을 배치하는 방안을 앞당겨 실시하고 고위험 부대는 대대급까지 전문상담관을 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병무청에서는 징병검사를 통하여 정확한 정신과 질환 검사를 위해 종합심리검사를 도입하고 임상심리사와 정신과 의사를 늘리는 방안을 국방부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국방부는 연이은 관심병사 관련 사건을 계기로 심리상담관을 늘리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뉴시스

한편, 이러한 관심병사 제도의 보완과 더불어 군대 문화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시작은 사병과 간부들의 인권이 서로 존중 받는 분위기가 군대 내에 정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군대 내의 왕따 문제는 사실 인권 의식이 취약한 데서 일어난 문제다. 나와 다른 것을 차이로 인정하지 않고 모멸해야 대상을 보게 되면 이는 군대 내의 불화를 가져와 결국 전력 약화 내지 붕괴에 이르게 된다. 관심병사로 분류됐다 전역한 이들은 주위 사람들이 자기들을 보는 시선에서 차별 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자기들의 성격적 결함을 고쳐주기보다는 무슨 사고를 칠 수도 있다며 감시에 목적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사병을 관리하는 상관이 관심간부처럼 행동한다면 관심사병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임 병장의 아버지는 모 매체에 출연해 ‘(아들이) 불미스런 일이 있어 사단 내 후방으로 보내달라고 하자 지휘관이라는 사람이 소초에 가서 너희 총으로 쏘던지 알라서 하라’는 식으로 말하며 묵살했다는 말을 전했다. 동료와 상관들은 관심을 주어야 할 관심병사에게 감시와 묵살로 응대했던 것이다. 관심병사로 분류된 당사자는 그 기준의 타당성에 의문을 갖고 있는데 관심병사라는 낙인만 찍고 나면 획일적으로 사고부터 막고 보자고 덤비는 태도가 오히려 그들을 더 궁지로 몰고 갈 수 있다. 이런 무시와 괄시를 당하는 관심병사가 특히 GOP처럼 30명 미만이 한 부대 단위를 이뤄 고립된 생활을 하는 곳에서 소외될 경우, 총기 발사와 같은 외부적 폭주나 아니면 자해나 자살 같은 자신을 향한 폭주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개병제의 분단국에서 사병관리를 위해 앞으로 전문상담사를 늘리고 징병검사의 심리검사를 강화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관심병사 폭주 사건을 계기로 해서 병력 자원의 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심병사를 고위험 부대에 투입해서 총기난사?자살 등의 사고를 늘어나게 할 여건을 만듦으로써 군에 대한 대국민 인식이 자꾸 악화되어가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마스터플랜을 만들어야 한다. 그 목적은 분명하다. 군대를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발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맞춰 병사 개개인의 자율성과 개성을 최대한 보장해주어야 한다. 또한 군대에서 복무한 시간이 자랑스런 이력으로 남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군대는 일정 기간을 ‘썩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 자라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관’으로 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임 병장 사건과 같은 불행은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다. 아울러 사회지도층 중에서 갖은 꼼수를 다 써 가며 병역면제를 받는 이들도 줄어들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