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유산, 근검(勤儉)

 

보통 일반적인 가정은 부모님으로 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받는데, 우리 형제들은 밥상머리 교육보다는 밭둑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부모님께서 구태여 말씀으로 가르치시지 않아도 몸소 실천하고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느끼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여력이 되는대로 농사지을 수 있는 산과 밭을 사셨다. 대부분 산비탈 자투리땅이나 차가 다닐 수 없는 골짜기 밭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책가방을 던져 놓고 어머니 계시는 밭으로 달려가 농사를 거들었다. 그야말로 반농반학(半農半學)의 성장기였다.

 

아버지께서 나를 가장 흐뭇하게 바라보실 때가 언제인가 돌이켜 보건데, 아마도 아버지 지게를 내가 혼자서 거뜬하게 지고 일어섰을 때가 아니었는가 싶다. 이제는 나도 지게를 지겠다고 조르니 아버지께서는 내 몸에 맞게 작은 지게를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더 크면 지게도 조금 더 커졌다. 나름 한 단계 한 단계 성장 발전했던 것이다. 호미질이며, 낫질, 쟁기질까지 그렇게 배웠다. 성장하면서 공부를 잘 했다고 칭찬받은 것 보다는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리고 칭찬받고, 수확의 기쁨을 느낄 때 더 성취감을 컸던 것 같다.

어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모처럼 쉬는 날은 밀린 농사일을 하는 날이었다. 필자가 해남지도소 소장으로 재임 시, 어느 날 수산경영인 후계자 희망자가 사무실을 방문하였다가 필자를 보고 , 여기 있느냐. 뭐 하러 왔느냐며 물었다. 바로 전날 농약 치다가 부족해서 중간에 농약을 사러갔었는데, 방문객은 바로 그 농약사 주인이었던 것이다. 전날엔 고무신에 꾀죄죄한 우비를 입고 농약을 사러 왔던 사람이 다음날 멀쑥하게 차려입고 기관장 행세를 하고 있으니 엄청 헛갈려 했다. 우린 서로 마주보며 한참 웃었고 지금까지 서로 좋은 교분을 갖고 있다. 농사는 그렇게 평생 내 삶의 일부분이었다.

 

돌이켜보건 데, 부모님께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천리(天理)와 자연의 순리(順理)를 배운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산교육이었으며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부모님이 평생토록 보여주신 근면함검소함이 내 몸과 정신에 체화되어 있으니 무엇보다 값진 유산을 받은 셈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고 도약할 수 있었던 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또한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사용할 줄 아는 근면함과 성실함을 가지고 있으며, 늘 검소했기에 만족과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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