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설명 공식 문서에 “노동쟁의 발생 가능성에 ‘유의’”
건설·조선업계 노조, 거세지는 요구…파업 만능주의 ‘싹’
[시사포커스 / 강민 기자] 노조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노조 리스크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국내 기업은 분주하게 대응하고 있고 노조는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조법 개정안은 이재명 대통령이 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했으며, 법률안이 공포된 날로부터 6개월 뒤 시행한다.
3일 한국공인노무사회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 동안 노무사를 구하는 요청 건수가 총 80건으로 작년 동기와 비교해 42.8% 늘었다. 국내 5대 그룹 대부분이 노무사를 구하고 있으며, 대부분 노조 대응이 채용 핵심 직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하청업체들의 고소와 집회가 끊임없이 지속되면 노무사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요구 주체가 늘어나면서 케이스도 늘어나 개별 사안마다 대응 시나리오를 빨리 짜는 게 필요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계에서는 노조법 개정에 따른 리스크를 공식 문서에도 기재하고 있다.
SK(주)는 지난달 28일 1700억 원 규모 사채를 발행하는 투자설명서를 공시했다. 이 설명서에 손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 석유화학(석화)부문 사업 재편을 언급하며 “노동조합법 2조 및 3조 개정안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개정안은 회사 사업 경영상 결정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주는 경우 노동쟁의행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SK는 “개정안이 석화업계 사업재편에 부정 영향을 미치는 경우 SK지오센트릭 및 석화업체 영업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투자자 여러분께서는 이를 유의하시기 바란다”고 공시했다.
현대건설도 지난달 28일 3100억 원 사채 발행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노동쟁의의 범위를 임금과 근로조건뿐 아니라 경영상 결정,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으로 확대해 노동자가 사업장 내 경영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했다”며 “기업이 불법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제한하고, 개인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역할과 참여 정도에 따라 책임 감경이 가능한 세부 규정으로 건설 업계에서는 원청과 하청 간 노사관계 변화와 함께 파업 등 쟁의행위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현장에서 움직임도 가시화됐다. HD현대 계열 3사(HD현대중공업, HD현대미포, HD현대삼호중공업) 노조는 2주간 파업 등 물리력 행사에 나선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2일부터 오는 5일까지 연쇄 파업에 들어간다. HD현대미포, HD현대삼호중공업도 3일부터 부분 파업에 동참한다. HD현대 노조는 사측이 (임금)협상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오는 12일 HD현대 글로벌R&D센터본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또한 노조는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합병에 따른 후폭풍도 우려하고 있다. 이번 합병에 따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정리해고나 희망퇴직, 강제 전환 배치가 없다는 확답을 해주지 않으면 파업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에 파업이 더 잦아져 도크가 멈추면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피해도 천문학적으로 커질 수 있으며 해외투자와 협력에도 부정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국내 조선업계는 마스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 해군 MRO(유지·보수·정비) 사업 수주, 양국 조선업 기술 협력, 미 현지 공동 선박 개발 등 사업 기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HDC현대산업개발에선 주민 안전 등을 이유로 서울 노원구 광운대 역세권 개발 공사 현장에 도입을 검토했던 레미콘 생산시설 배치 플랜트 설치가 무산됐다. 레미콘운송노조가 강하게 반발했고, 정부와 지자체가 노조의 편에 선 영향이다. 대신 새벽 시간대 레미콘을 운송하기로 합의하면서, HDC현대산업개발은 새벽 할증 운송비와 콘크리트 적기 타설 등 부담을 떠안게 됐다. 노조법 개정으로 노조의 힘이 세지면서 향후 비슷한 분쟁이 일어나도 건설사에 부담을 전가하는 결론이 날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도 노조 반발 이유로 배치 플랜트 설치가 무산되면 건설업 혁신을 가로막고 위험은 커질 것”이라고 했다.
전임 정권 하에서 활동이 뜸했던 건설노조도 지난 1일 ‘100일 집중 투쟁을 위한 전국 동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오는 11월 8일 ‘건설노동자 결의대회까지 활동을 본격 재개한다. 아울러 오는 18일 총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노조법 개정 등으로 현장 점거시위에도 손해배상 책임이 줄어들게 되면서 본격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조합원 고용 확대 요구를 연중 캠페인으로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3일 열린 ‘주요 기업 인사노무담당 임원(CHO) 간담회’에서 “실질적 지배력의 유무, 다수 하청노조와의 교섭 여부, 교섭 안건 등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며 “기업 우려를 잘 살펴 노사 갈등을 예방하고 경영 불확실성을 최소화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이날 주요 기업 인사노무담당 임원들은 법 개정 이후 현장에서 우려되는 사항에 대한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다만 정부는 노조법 개정에 따른 경영계 우려를 일축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간담회에서 “개정 노동법은 새로운 원하청 패러다임을 만들어갈 시작점이며, 노사정이 협력할 때 비로소 성장과 격차의 해소 기제가 될 것”이라면서 “경영계에서 우려하시는 바와 같이 개정법은 무분별한 교섭, 불법파업에 대한 용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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