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포항~영덕 고속도로 개통, 영덕의 선택은?
머물게 할 이유가 없으면 ‘독배’ 빨대효과로 생활인구 포항으로 영덕에서 일하고 포항에서 소비
[대구경북본부 / 김영삼 기자] 8일 포항~영덕 고속도로가 뚫렸다. 포항과 영덕 사이 42분 거리가 19분으로 줄었다. 교통 혁명이다.
그런데 영덕 상인들의 표정이 어둡다. 매출 30% 감소를 걱정한다. 고속도로가 가져다준 선물이 독배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지금까지 교통체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머물렀던 손님들이 이제 포항으로 직행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빨대 효과’라고 한다. 교통망이 개선되면서 작은 도시의 인구와 경제활동이 큰 도시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이다. 고속도로라는 빨대가 영덕의 생활인구를 포항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지난 7일 영덕군청 직원 150여 명이 이미 포항에서 출퇴근하고 있다는 김광열 군수의 발언이 이를 방증한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영덕에서 일하고 포항에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같은날 김정재 국회의원(국민의힘.포항북)도 영덕에서 포항 북구로 이사할 인구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일방향적이라는 점이다. 영덕 사람들은 포항으로 가기 쉬워졌지만, 포항 사람들이 영덕으로 올 이유는 특별히 늘어나지 않았다. 포항에는 죽도시장이라는 대형 전통시장이 있고, 각종 편의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영덕이 포항과 경쟁할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고속도로는 일방통행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상황을 단순히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고속도로는 위기이자 기회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영덕이 가진 고유한 자산을 재발견해야 한다. 강구대게, 동해안의 청정 해산물, 독특한 해안 경관 등은 포항이 흉내낼 수 없는 영덕만의 경쟁력이다. 문제는 이런 자산들이 고속도로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어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인들이 요구하는 이정표 설치나 주차장 조성은 기본적인 대책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영덕을 단순히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머물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전략 말이다.
고속도로 시대의 지역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접근성이 좋아진 만큼 선택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더 나은 선택지를 찾아 멀리까지 갈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여기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영덕의 미래는 고속도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고속도로가 영덕을 우회하는 길이 될지, 아니면 영덕으로 향하는 길이 될지는 영덕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교통 인프라는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가 진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