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혐오 처벌? 표현의 자유 억압?…법 개정 놓고 정치권 논란
국민의힘 “외국 정부든 정책이든 비판 권리 있어”…민주당 “허위 유포 경우 처벌”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더불어민주당에서 형법 개정안과 항공안전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며 비판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與 의원들, ‘반중 집회’ 예로 들어 ‘특정 국가 혐오 처벌’ 형법 개정안 발의
앞서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의 양부남·이광희·신정훈·박정현·윤건영·이상식·박균택·허성무·서영교·권칠승 의원과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허위 사실을 적시해 특정 국가나 국민, 인종의 명예를 훼손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공연히 모욕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형법 제307조의2(특정집단에 대한 명예훼손)과 제311조의2(특정 집단에 대한 모욕)를 골자로 한 형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특히 반의사불벌죄와 친고죄 규정을 적용하지 않아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게 되는데, 대표 발의자인 양 의원은 “개천절 반중 집회에서 ‘짱개, 북괴, 빨갱이는 대한민국에서 빨리 꺼져라’라는 가사가 포함된 노래를 부르며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했다”며 지난달 3일 있었던 ‘반중 집회’를 예로 들어 법안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이 뿐 아니라 민주당에선 박주민 의원도 지난 4일 인종·성별·국적·종교·사상 등을 이유로 한 차별적 내용이나 허위의 사실을 포함한 광고물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 제5조에서 인종차별적·성차별적 내용으로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광고물을 금지하고는 있지만 옥외광고물법 8조에선 정당 현수막의 경우 정당 이름과 연락처를 표시하면 혐오 표현을 사용해도 지자체 신고 없이 게시 가능하다 보니 이를 막기 위해 규제 강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여당 뿐 아니라 행정안전부 역시 이달 중 정당 현수막 내용을 규제할 지침을 만들어 각 지자체에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9월 국무회의 당시 서울 명동에서 있었던 ‘반중 집회’를 꼬집어 “특정 국가 관광객 모욕하는 집회 하고 있던데 어떻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게 무슨 표현의 자유냐, 깽판이지”라며 강력 조치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또 7일에는 김철수 적십자회장의 인종차별 발언 논란과 관련해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이 “이 대통령은 인종, 민족, 국가, 지역 등 모든 차별과 혐오는 국가공동체를 위해하는 심각한 반사회적 행위라며 확실한 근절 대책을 수립하라고 각 부처에 지시했다”며 보건복지부 감찰도 지시했다고 언론에 공지하는 등 당정대가 한 목소리로 인종차별·혐오 근절을 역설했다.
◆ 국민의힘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 자유 침해…정부가 국민 검열한다는 것”
반면 국민의힘에선 지난 6일 이충형 대변인 논평을 통해 “민주당이 반중 시위를 예로 들며 특정 국가와 국민을 모욕하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험한 법안이다. 시민들은 누구나 정부든 외국 정부든 정책이나 부당한 행태에 대해 비판하고 항의할 권리가 있다”며 “이 법안은 특히 당사자의 고소 없이도 수사기관의 수사와 기소가 가능하도록 해 사실상 정부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검열하겠다는 속내까지 드러냈다. 민주당은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발상을 즉각 멈춰야 한다”고 여당을 비판했다.
특히 이 대변인은 “이번 개정안은 ‘특정 국가’라는 지칭을 하며 실제로는 중국 정부나 중국 공산당의 행태를 비판하는 데 대해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서울 중심가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민노총의 반미 시위에는 뒷짐 지고 구경만 하는 정부여당이 중국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5년 이하 징역형’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은 국민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도”라며 “미국 성조기나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담긴 팸플릿을 찢는 반미 집회에는 ‘나 몰라라’ 하는 정부여당이 반중 집회에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에는 ‘셰셰’만 해야 하고 비판하는 국민의 입은 막아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이와 비슷한 지적은 이미 지난달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진 바 있다. 채현일 민주당 의원이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에게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집회를 진행하던 중 주한중국대사의 얼굴이 인쇄된 중국 국기 형태의 현수막을 훼손한 집회 참가자들을 조사하고 있는지 질의하면서 “혐중 집회는 과거 (일본의) 혐한 시위와 비슷하다”고 발언하고, 박 청장도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하자,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반미집회에서 미국 대통령 사진 찢는 장면이 언론에 수도 없이 나오는데 이런 것도 (처벌)해야 하지 않나”라고 직격한 것이다.
또 정희용 국민의힘 사무총장도 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꼬집어 “만약 법안이 시행되면 정부나 수사기관이 임의로 명예훼손 발언이나 혐오 발언에 대해 처벌이 가능하게 되는 것인데 가장 큰 문제는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억압하는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비판 발언조차 임의로 수사하고 처벌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표현의 자유 억압’ 법안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접경지역 내 모든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항공안전법 개정안을 지난 6일 국회 법사위에서 단독 통과시킨 데 대해서도 7일 곽규택 원내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민주당이 일방 통과시킨 항공안전법 개정안은 문재인 정부 시절 위헌 판결을 받았던 ‘대북전단금지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표현의 자유를 직접 금지할 수 없게 되자 표현의 수단 자체를 법으로 봉쇄한 것”이라며 “이틀 전에는 특정 국가와 그 국민 등에 대한 모욕과 명예훼손을 하면 징역 5년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으로 사실상 ‘중국 비판 금지법’을 내놓더니 이제 북한을 향한 전단조차 띄우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곽 원내수석대변인은 “중국에는 말하지 말라 하고, 북한에는 보내지 말라 하면서 결국 침묵을 강요받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보장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건이자 우리가 헌법으로 지키고 있는 중요한 가치인데도 이재명 정권은 무엇이 두려워 국민의 입을 막으려 하는 것인가”라며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바라봐야 할 곳은 북한도, 중국도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다. 스스로 친북·친중 논란을 자초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위헌 소지가 있는 항공안전법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 與 “국힘, ‘중국인 의료 방지법’ 같은 차별을 무기로 사용해와…혐오 끝내야”
하지만 민주당에선 지난 6일 문금주 원내대변인 서면브리핑을 통해 “국민의힘은 그동안 위기와 재난의 순간마다 특정 인종을 향한 공포를 조장하고, ‘중국인 의료·선거·부동산 쇼핑 방지법’ 같은 낙인찍기 법안을 내세워 차별과 혐오를 정치의 무기로 사용해왔다. 혐오를 자유로 포장하는 것은 자유의 이름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품격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형법 개정안이 겨누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거짓과 혐오를 퍼뜨리며 타인을 짓밟는 언어의 폭력이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반드시 끝내야 한다”고 법안 처리 필요성을 역설했다.
형법 개정안 대표 발의자인 양 의원도 7일 광주시의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입법 취지를 왜곡하는 행태는 멈춰야 한다. 중국 등 특정 국가를 염두한 법이 아니고 허위·모욕 행위를 처벌하자는 취지”라며 “이번 개정안은 기존 형법의 명예훼손과 동일한 형량을 유지해 불필요한 논란을 막았고,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제외한 것도 법리적으로 타당한 선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는 “표현의 자유 역시 헌법 제21조 제4항에 따라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하는 경우 제한될 수 있고 실제로 독일, 프랑스, 영국 등지에선 인종, 종교, 출신, 성별 등을 이유로 한 혐오 표현에 대해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며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항공안전법 개정 관련해서도 민주당은 7일 박지혜 대변인 서면브리핑을 통해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국민의힘의 ‘표현의 자유 침해’ 주장은 헌법재판소 판시의 일부 문장만 의도적으로 발췌한 정치적 왜곡”이라며 “헌재는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에 대해 입법 목적은 정당하지만 형벌 조항이 과도하다고 판단했을 뿐 대북전단 살포 자체를 허용한 게 아니다. 국민의힘은 ‘친북·친중 같은 낡은 프레임으로 국민 생명과 안전에 대한 논의를 정쟁화하는 구태정치를 멈추라”고 입장을 내놔 형법 개정안과 더불어 전부 끝까지 강행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