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미 관세협상 후폭풍 확산, 국회 ‘대미투자금’ 두고 곳곳 충돌
대미투자 특별법 추진하는 정부, 팩트시트 지연에 불신 모락모락?
[시사포커스 / 이혜영 기자] 한미 간 관세·무역·안보 협상 결과를 담은 ‘팩트시트’(Fact Sheet·설명자료) 발표가 지연되면서, 그 배경을 둘러싸고 여야의 갈등 수위가 점점 높아져 가는 양상이다.
◆ ‘한미관세·대미투자금’ 놓고 국회 상임위 곳곳에서 여야 격돌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6일 열린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한미 관세 협상 후속 조치 문제를 두고 여야가 정면 충돌했다.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 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에 돌입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도,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주요 사안으로 다뤄지며 여야는 대치했다.
한미 협상의 팩트시트 발표 지연이 맞물린 만큼 야권에서는 총공세를 펼치고 나선 상태다. 당·정·대(더불어민주당·정부·대통령실)에서 그간 3500억달러(약 500조원) 대미투자 지원을 포함한 한미 관세협상 결과에 대해 자화자찬하며 성과를 치켜세운 탓에 야권의 불만은 극에 달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인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 운영위에서 열린 대통령실 대상 국감에서 “미국은 (대미 투자 규모를) 9500억 달러라고 발표했는데, 한국은 3500억 달러로 발표했다”며 양국의 주장이 다르단 점을 지적했다. 이어 “유럽연합(EU)은 총 1조3000억 달러인데 민간이 투자하는 모델이고, 일본은 5500억 달러인데 정부가 투자한다”며 “그런데 한국은 민간도 투자하고 정부도 투자한다. 일본은 정부가 투자하는 것으로 방어하고, EU는 민간이 투자하는 것으로 막았는데, 왜 우리는 둘 다 끌려 들어갔느냐”고 작심 비판했다.
반면 여당 측에서는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한 성과를 치켜세우며 엄호했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외국 언론들의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일본보다 한국이 잘 협상했다는 평가도 있다”며 “힘든 과정이었지만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예상 밖의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으로부터 상당히 핵심적인 양보를 얻어냈다는 말도 있다”고 맞대응했다. 같은당 김영배 의원도 “이재명 대통령께서 관세협상에 대해 ‘영혼을 갈아 넣었다’는 말씀을 하실 때 울컥했다. 아마 국민들도 굉장히 짠했을 것”이라고 여론전을 펼쳤다.
여야는 ‘대미투자금’ 문제와 관련해 재원 조달 방식과 정부의 보고 태도를 놓고 격돌했다.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2000억 달러를 10년간 매년 200억 달러씩 미국 계좌로 보내겠다는 것인데, 이건 ‘투자’가 아니라 ‘송금’”이라며 “일본은 현금 송금을 법적으로 막아놓은 안전장치를 둔 협상을 했다. 일본은 ‘여우의 지혜’를 썼는데 우리는 그런 안전장치 없이 부담만 떠안은 협상을 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이 국회 비준 대신 특별법 형태로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헌법 60조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 부담을 지우는 경우 국회의 동의를 명시하고 있다”며 “국회 비준 없이 하겠다는 건,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들도 일본과 우리 경제 규모가 다르다는 점은 알고 있다”면서 “처음 3500억 달러로 협상이 시작된 이유와, 이번에 할부 형식으로 변경된 점을 성과라고 하는 근거가 무엇이냐. EU나 일본 등과 비교할 때 우리 협상이 더 나은 점이 무엇이냐”며 정부·여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당정대는 이날 한미 관세협상 후속 조치에 대한 야권의 공세를 방어했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 국감에서 한미 관세 합의 ‘양해각서’(MOU)에 대해 국회 비준 동의 대상으로 할지, 대미투자특별법으로 처리할지에 대해 “저희가 이 상황에 대해 비준을 할지, 법률로서 할지 이런 것들에 대한 논의들은 차제에 하더라도 어쨌든 국회에 보고하고 모든 내용이 투명하게 국회의 내용이 보고돼 여러 의원의 의견을 모아주시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고 한발 물러서면서 사실상 공을 민주당에 넘겼다. 이에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헌법 60조에 보면 조약이나 법률을 비준하도록 돼 있지만 (해당 MOU는) 조약은 아니다”며 “정부가 이행하면 되는 것이기에 충분히 특별법으로 뒷받침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사실상 방어막을 쳤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이날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원칙적으로 조약은 비준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적정한 형식으로 국회 동의를 받을 수 있다”며 “국회 비준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인 한병도 예결위원장도 역시 “관세협상 국회 비준과 관련해 헌법 제60조1항은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부담을 지우는 조약의 경우 국회 동의를 요구하지만, 이번 합의는 행정협정 수준의 양해각서”라고 말했고, 같은 당 윤후덕 의원도 “MOU 양해각서 상태에서 (한미가) 협상해 타결된 것”이라며 “그런 상태에서 국내 재정 부담이 있기 때문에 특별법을 작성하고 준비하면 된다는 의견이 있는 것”이라고 힘을 보탰다.
앞으로 10년간 미국 측에 매년 현금 200억 달러를 송금해야 방식의 대미투자금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은 ‘부담이 없는 수준’이라고 항변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운영위 국감에서 “연 200억 달러는 우리가 부담 없이 조달할 수 있는, 외환시장에 충격이 없는 금액”이라며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수익률은 한국투자공사(KIC)나 이런 데 운용해서 운용 수익률이 훨씬 높은 상황이다. 중앙은행하고 아주 면밀하게 분석해서 대응한 그러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조항을 MOU 제1조에 넣었다. ‘투자금을 회수할 현금 흐름이 있을 것으로 투자위원회가 선의, 굿 페이스로 판단하는’ 그렇게 정의 조항을 넣어놔서 투자원리금 회수의 불확실성 있는 사업은 애당초 착수하지 않도록 했다”고 부연했다.
◆ ‘대미투자지원금’ 정조준 한 야권, 한미 관세협상 둘러싼 여야 신경전 치열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국회 동의를 받지 않도록 하는 대미투자 특별법을 고리로 야권은 공세 수위를 높여가며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양상이다. 국민의힘은 “500조 원을 미국에 쓰겠다는 정부가, 바빠서 국회 동의를 생략하겠다고 한다”며 “국회 검증 없이 처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헌적이다.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겠다는 결정을 해놓고, 그 검증과 책임은 생략하겠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6일 논평을 통해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번 협상을 ‘역대급 성과’라고 직접 강조했지만, 정부는 합의문 한 장 제시하지 못한 채 스스로 국회 동의를 생략하겠다고 선언했다”며 “지난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외교부 장관과 국무총리는 ‘재정적 부담이 발생하면 국회에 와서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분명히 답했다. 국회에서 국민 앞에 약속한 말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최 수석대변인은 “정부가 미국과 합의했다면 3500억 달러는 내년 정부 예산(728조 원)의 69%에 달하는 금액”이라며 “헌법 제60조 제1항은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은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고 강조했다. 대미투자금 지원 총액을 비롯해 농산물 시장 개방과 반도체 관세에 대해 양국의 설명이 다른 것도 언급하면서 “핵심 수치와 조건이 다른데도 이를 확인할 합의문·팩트시트·서명 문서는 단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는데, 그냥 ‘믿어 달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 과연 책임 있는 국가 운영 방식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송언석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는 1000억 달러 에너지 구매, 1500억 달러 기업 투자 등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계획을 합의했다고 밝혔는데, 이 중 연간 최대 200억 달러씩, 총 2000억 달러를 현금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국내 기관들의 운용 수익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재원 조달 계획이 불투명한데, 국민연금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노후를 지키는 연금을 단 한 푼이라도 빼 쓰려는 생각은 즉시 버려야 한다”고 견제구도 던졌다.
특히 송 원내대표는 “한국은행, 수출입은행, 산업은행의 현금성 외화 자산 운용수익을 모두 합쳐도 연간 약 95억 달러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한국은행 의무적립금까지 포함하더라도 123억 달러가 한계”라면서 “이조차도 모든 가용 자원을 영끌해 쓰는 가정 아래 가능한 이론적 수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매년 200억 달러를 실제로 집행하면 환율 상승 압박은 불가피하고, 외환투기나 외환위기 가능성에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며 “외환보유고나 재정 여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3,500억 달러 투자를 졸속 합의한 이재명 대통령에게 근본적인 ‘원죄’가 있다”고 저격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한미 관세협상 후속 조치에 대한 지원사격에 나섰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APEC의 성과와 한미 협상의 결과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이제 최선의 결과를 최고의 성과로 만들어야 한다”며 “지금이 바로 행동할 골든타임이다. 민주당은 단호하게, 신속하게 움직이겠다”고 공언했다.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국회 비준 논란에 대해 “한미관세협상은 상호 신뢰에 기반한 양해각서로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은 아니다”며 “대미투자특별법의 신속한 입법을 통해서 해당 양해각서의 확실한 이행을 담보하면 될 일”이라고 반박했다.
◆ 정부, 관세협상 ‘팩트시트’ 지연에 혼란 가중···대통령실 해명 진땀
다만 ‘팩트시트’ 발표가 지연되면서 한미 관세협상 논란이 보다 확산한 형국이 됐다. 앞서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직후,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양국 간 세부 합의 내용은 거의 마무리된 상태”라면서 “팩트시트는 관세 및 안보와 합쳐 2∼3일가량 걸릴 것”이라고 빠른 시일 내에 발표할 것을 예고한 바 있다.
한미 양국은 당초 이번 주 내 ‘팩트시트’ 공동 설명자료를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안보 관련 문구를 둘러싼 양국의 조율이 길어지며 일정이 미뤄졌다. 정부 관계자는 “경제 분야 협상은 사실상 마무리됐지만,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도입 등 안보 이슈에서 미국 측이 문안을 수정 요청해 조정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6일 국회에서 “미 국무부로부터 받은 전갈 내용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저희가 늑장을 부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며 “미국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좀 늦어지고 있다. 미국 측에서도 관계 여러 부처 간 최종 확인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승인한 원자력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 공급 문제를 두고 미국 내 각 부처 간의 ‘팩트시트’ 문구 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전날 국회에서 팩트시트 공개가 지연되고 있는 데 대해 “원자력 잠수함과 여러 협정과 문제로 미국 내 여러 부처에서 조율이 필요해 지체된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팩트시트의 공개 시기는, 미 국무부가 우리 외교부에 최종 조율 내용을 보내오는 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MOU 체결 후 조인트 팩트시트가 공개되면 곧바로 필요한 절차를 거쳐 구체적인 내용을 국민께 설명드리겠다”고 밝혔다.
‘팩트시트’ 발표 시점에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가 감지된 가운데,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 국감에서 “팩트시트 발표가 이번 주 안에 이뤄질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강 실장은 “미국 안에서도 여러 부처가 논의하고 있어 언제까지 된다고 말하기 쉽지 않았다”면서 “팩트시트 협상이 진행 중이고 막바지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