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이재명표 ‘728조 슈퍼예산’···여야 ‘예산 대치 정국’ 개막

‘AI·균형발전·민생’ 앞세운 국정 비전 제시···야권, “포퓰리즘 빚 폭탄” 반발

2025-11-05     이혜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2026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사진공동취재단)

[시사포커스 / 이혜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728조 원대의 ‘초대형 예산안’을 발표하며 내년도 국정 운영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야권이 이를 ‘포퓰리즘성 빚 폭탄 예산’이라고 반발하면서, 시작부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 AI·균형발전·민생 ‘3대 축’ 제시···이재명표 국정 비전 본격 시동?

이 대통령이 내년도 정부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며 ‘AI·균형발전·민생’을 핵심축으로 한 국정 비전을 내놨다. 내년도 예산은 올해 대비 8.1% 증가한 728조 원으로, 이 대통령은 4일 국회 본청에서 이에 대해 협조를 구하는 시정연설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의 기조를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APEC 성과를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APEC 주간에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완화했다”며 “3500억 달러(약 500조 원)의 대미 투자패키지에는 연간 투자 상한을 설정해 많은 분이 우려했던 외환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했고, 투자 프로젝트 선정과 운영 과정에서도 다층적 안전장치를 마련함으로써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관세 협상과 관련해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총력을 다했다”고 발언했다.

이후 예산안과 관련해, 내년도 AI 관련 예산을 올해(3조 3000억원)보다 3배 이상 늘린 총 10조 1000억원으로 편성했다고 했다. 정부는 2조 6000억원은 산업·생활·공공 전 분야 AI 도입에 투입하고, 인재 양성 및 인프라 구축에 7조 5000억원을 투입하겠단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피지컬 AI 선도국가 달성을 위해 국내 우수한 제조 역량과 데이터를 활용해 중점 사업에 집중 투자하겠다”며 “인재 양성과 핵심 인프라 구축에도 과감하게 투자하겠다.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고급인재 1만 1000명을 양성하고, 세대별 맞춤형 교육을 통해 국민 누구나 AI를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재해·재난 예방 예산은 전년 대비 1조 8000억 원을 증액해 총 5조 5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이 대통령은 “근로감독관을 2000명 증원하고, 일터 지킴이를 신설하여 산재 사고 발생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 1만7000개소의 영세사업장과 건설 현장에는 안전시설 확충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취약계층 생활 지원에 대해 “저소득층의 안정적 소득기반 마련을 위해 기준중위소득을 역대 최대인 6.51% 인상하여, 생계급여를 4인 가구 기준 매월 200만 원 이상 지원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지방 우대 재정 원칙’ 도입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인구감소지역 주민에게 월 15만 원의 농어촌 기본소득을 지급할 방침이다. 내년도 국방 예산도 올해보다 8.2% 증액한 66조3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이 대통령은 “재래식 무기체계를 AI 시대에 걸맞는 최첨단 무기체계로 재편하고, 우리 군을 최정예 스마트 강군으로 신속하게 전환하여 국방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며, 우리의 염원인 자주국방 실현을 확실하게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K-컬처에도 집중 투자에 나설 방침이다. 대통령은 “K-콘텐트 펀드 출자 규모를 2000억 원 확대해 문화콘텐트 산업에 투자하고, 청년 창작자가 생계 부담 없이 창작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고, 금 모으기 운동으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우리 국민이 힘을 모은다면 못해낼 일이 뭐가 있겠나”며, “비록 여야 간 입장의 차이는 존재하고 이렇게 안타까운 현실도 드러나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진심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2026년 예산안이 치밀한 심사를 거쳐 신속히 확정되길 기대한다. 이번 예산안이 법정기한 내에 통과돼 대한민국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초당적인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 ‘시정연설’에 불참한 국힘, ‘빚 폭탄’ 규정 강공···‘예산 전쟁’ 불가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0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이훈 기자

그동안 국가채무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이 대통령의 확장재정 경제 정책 의지에 난색을 보여왔던 야권은 이번 예산안에도 강한 우려를 표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4일 경남도청에서 열린 부산·울산·경남(PK) 예산정책협의회에서 “국가재정 파탄을 불러올 무책임한 빚더미 예산이다. 미래를 완전히 망치는 정책을 하고 있다”며 “겉으로는 민생을 내세우지만 현금 살포와 무책임한 채무 탕감은 시장 기본 원리를 완전히 송두리째 흔드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송 원내대표는 “이미 50% 넘는 국가채무 비율에다 매년 100조 넘는 국가채무 추세를 고려해볼 때 60%를 넘는 것은 몇 년 안 남았다. 길게 생각해보면 지금 나이가 20세가 된 청년이 환갑이 되는 40년 뒤 2065년도에 가면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이대로 가면 150% 넘는다는 전망이 나와 있다”며 “(그때가 되면) 국민연금은 이미 고갈된 지 오래고, 건강보험과 장기요양 보험의 누적 적자만 하더라도 거의 6000조 원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입의 거의 3분의 2를 건강보험이나 연금으로 전부 납부해야 한다. 300만 원을 벌어서 200만 원 납부하고 100만 원으로 생활해야 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장동혁 대표도 이날 같은 회의에서 “한마디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자화자찬과 돈퓰리즘으로 점철됐다”며 “AI 시대를 대비한다는 허울 좋은 구호를 앞세웠지만 결국 재정 건전성을 파탄 내는 ‘돈퓰리즘 예산’”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다. 문재인 정권 내내 해마다 10% 가까이 늘어난 정부지출을 이재명 정권이 그대로 ‘복사 붙이기’ 하려고 한다”면서, “소비쿠폰 남발로 치솟은 물가와 살인적인 고금리에 수많은 자영업자가 폐업하고,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서민들이 내몰리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청년들이 좌절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장동혁 대표는 이날 오전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이재명 정권은 정치탄압과 포퓰리즘으로 국정을 망치고 있다”며 “이번 시정연설이 이 대통령의 마지막 시정연설이 돼야 한다. 이 대통령의 5개 재판이 재개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최수진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이재명 정부는 내년 예산을 전년 대비 8% 늘린 728조원 규모의 역대 최대의 ‘적자예산’으로 편성했다”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서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예산”이라고 비판에 가세했다.

최 원내수석대변인은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사랑상품권, 농어촌 기본소득 등 현금성 지원 예산들은 미래 세대에게 빚 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이재명 정부의 ‘예산 만능주의’는 이미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권 출범 직후에도 10조 원이 넘는 소비쿠폰 살포를 위한 추경을 편성했지만, 그 결과는 내수 진작이 아닌 부동산 가격 폭등과 고물가로 인한 서민 부담 증가, 자영업자 붕괴로 되돌아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는 포퓰리즘 예산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며 “국민의힘은 대한민국의 건전한 재정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뿐 아니라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역시 논평을 통해 “이 대통령이 오늘 국회 시정연설에서 ‘AI 시대를 여는 첫 예산’이라 자화자찬했지만, 728조원짜리 ‘슈퍼 예산’의 실체는 AI 예산이 아니라 ‘빚잔치 예산’, 민생 예산이 아니라 ‘선거용 현금 살포 예산’이다. 한마디로 ‘말 잔치·빚잔치·표 잔치’로 뒤덮였다”고 규탄했다. 이어 “국가채무는 내년 1400조원을 넘어서고 적자 국채 발행 규모는 110조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확장 재정’이라는 미명 아래 빚으로 생색내기에 몰두하고 있다”며 “재원 마련은 대체 어디서 하나. 미래 산업을 위한 투자라 포장했지만, 실상은 미래 세대의 주머니를 터는 부채 폭탄 예산일 뿐이다”고 한탄했다.

국민의힘은 초대형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관련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국면이라는 점에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치켜세웠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예산 곳곳엔 지방 선거용 현금 살포가 숨어 있다”며 “지역화폐 등 온갖 현금성 사업이 줄줄이 등장했다. 겉으로는 민생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표 계산’이 깔린 전형적인 포퓰리즘 예산일 뿐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집행의 효율성도, 책임 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라 곳간은 텅 비어가는데, 정권은 미래 세대의 지갑을 털어 정권 연장의 불씨로 삼고 있다”며 “국가 재정은 정권의 쌈짓돈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끝까지 예산 낭비를 막고 미래 세대의 재정안전망을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송곳 검증을 예고한 상태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소비쿠폰 같이 경제적 효과는 입증 안 됐음에도 오로지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미래세대에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는 대규모 포퓰리즘 예산은 반드시 삭감하겠다”고 강경 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 민주, ‘법정기한 내 처리’ 의지···野 반발 움직임에 ‘단독 처리’ 시사까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22분간 진행된 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일제히 박수갈채를 쏟아내며 적극적인 지지에 나선 모습을 보여줬다. 이 대통령의 시정연설 이후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가 마련한 2026년 예산안은 바로 AI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예산”이라며 “예산안을 기한 안에 반드시 처리하겠다. 당에서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께서 국민과 나라를 위한 진심으로 (예산안의) 법정기한 내 통과를 당부하셨다”며 “대통령님의 기대와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 (예산안 처리의) 법정기한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은 AI 3대 강국 도약과 민생·복지·안전을 큰 축으로,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을 열 비전을 제시했다”고 극찬하면서 “이재명 정부의 민생과 미래, 안전과 평화를 위한 예산안이 대한민국 새로운 백 년의 출발점이 되도록 꼼꼼한 예산심사와 법 제도적 지원을 든든히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민주당은 필요에 따라 여당 주도로 강행 처리할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이날 KBS1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하여 “정부 원안대로 제때 통과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늦어도 12월 4일까지는 통과를 시켜야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야당은 벌써부터 ‘포퓰리즘 재정 살포’라고 규정을 하면서 정쟁으로 끌고 가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마지막까지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지만, 만약 끝까지 설득이 안 된다면 표결 처리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여당 단독 처리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래선지 정치권 일각에서는 야권이 강하게 반발해도 역대 최대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큰 삭감 없이 국회에서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번 예산안에서 A(인공지능 중심 첨단산업), B(바이오산업), C(문화콘텐츠 산업), D(방위산업), E(친환경 에너지 산업), F( 제조업의 첨단화) 등 ABCDEF로 대표되는 이 정부의 중점 과제를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난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우리 경제를 제대로 되살리기 위해 ABCDEF로 대표되는 이재명 정부의 성장정책에 민주당은 모든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 법정처리 시한은 12월 2일이다. 국회는 오는 5일 예산안 공청회에 이어 6~7일에는 예산안 및 기금운영계획안에 대한 종합정책질의가 이어진다. 이후 10~11일에는 경제부처 부별 심사를,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며, 17일부터는 예산안 증·감액 심사를 담당하는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가 본격 가동되는 일정이다. 예산안 심사가 소위에서 모두 마무리되면 국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 의결 과정을 거쳐 매듭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