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미국과 또 설명 다른 한미 관세협상? 여야도 엇갈린 시선
한국과 미국 정부, 관세 협상 일부 내용 두고 엇박자 발언 나와 與 “이재명 정부 외교력 쾌거” vs 野 “한미FTA 사실상 해체”
[시사포커스 / 이혜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교착 상태에 있던 관세 협상 문제를 매듭지으면서 타결을 선언했다. 하지만 농산물 시장 개방과 대미투자 문제를 둘러싸고 또다시 엇갈린 해석이 나오며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 농산물 시장 완전 개방? 반도체 관세 미합의?···한미 관세 합의 일부 내용 ‘또 상충’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양국이 관세 협상 타결 소식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선 가운데, 또다시 한미 간 설명이 배치되는 내용이 나오면서 혼란에 빠진 양상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 때문이다. 러트닉 장관은 “한국이 자국 시장을 100% 완전 개방하기로 동의했다”고 밝히면서 “이번 합의에 반도체 관세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국 정부와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앞서 전날(29일) 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무역합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면서 “쌀·쇠고기 등 민감 품목의 추가 시장 개방은 철저히 방어했다”며 “농업 부문은 검역 절차 개선 수준으로만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반도체 부문에 대해서도 “경쟁국인 대만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관세 협상을 교착 상태에 빠지게 했던 3500억 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투자 내용에서도 다른 설명이 나왔다. 대통령실은 전날 “투자위원회는 미 상무장관, 협의위원회는 한국 상무장관이 각각 위원장을 맡아 상호 협의를 통해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협의한다”고 했다. 하지만 러트닉 장관은 “투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와 승인 아래 추진될 것”이라며 최종 결정권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고, 투자처 또한 조선업을 비롯해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에너지 기반시설, 핵심 광물, 첨단 제조,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등의 사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과 미국의 설명이 엇갈린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커지자, 대통령실도 즉각 진화에 나섰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30일 오후 경주 인터내셔널미디어센터(IMC)에서 열린 현안 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은 반도체 관세와 관련해 경쟁국인 대만에 비해 불리하지 않게 적용하기로 합의했다”며 “또한 시장 개방은 이미 미국산 모든 상품에 대해 개방돼 있다. 이번 합의를 통해서 추가적으로 변경되는 사안은 없다”고 이견설을 일축했다.
이 같은 상황은 양국 합의 내용에 대해 문서화가 된 것이 있냐는 지적으로도 이어졌다. 이는 정부가 지난 8월 문서가 필요없을 정도로 완벽한 관세 협상이었다고 발표한 바 있어서다. 하지만 김남준 대변인은 취재진들의 근거 문서 요구에 대해 “구체적인 상황은 향후 협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추후 말씀드릴 수 있다”고 답했다. 사실상 한미 양국은 이번 협상 결과를 담은 공식 문서에 서명하기 전까지 세부 협상 내용을 둘러싸고 추가 협의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전날 경주에서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서명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한 바 있다.
◆ 한미 관세협상 타결 소식에 환호한 여권, 자화자찬 일색
여야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타결된 관세협상을 두고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협상을 ‘이재명 정부의 통상 외교력이 거둔 대성과’로 평가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관세협상 타결은 대한민국 외교사에 길이 빛날 금자탑”이라며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같은 속담이 현실이 됐다”고 했다.
정청래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베스트 오브 베스트(최고 중의 최고)”라면서 “현금 선불이라는 악조건의 위기를 최대의 기회로 반전시켰다. 외교 협상의 모범으로 기록될 만한 역사적 업적”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적 리더십이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며 “불확실성을 해소한 결정적 계기”라고 호평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이재명 정부가 오랜 시간 치밀하게 준비하고, 성실히 협상한 결과”라며 “이번 합의로 외환시장 안정과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동시에 지킬 수 있게 됐다. 많은 국민께서 걱정하셨던 대미 금융투자 구조도 안정적으로 설계했고, 특히 자동차 부품 관세를 15%로 인하한 것은 산업의 숨통을 틔워준 결정”이라고 극찬했다.
한정애 정책위의장도 같은 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이었던 핵추진 잠수함이 어제의 한미정상회담 결과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말로 하는 자주국방이 아닌 실질적인 자주국방에 훌쩍 다가섰다”며 “한미동맹은 한미정상회담과 한미 간 관세 협상 결과라는 다양한 경제적 연결고리를 매개로 더 단단해질 것이며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을 “외교 천재”라고 띄우면서, “이 대통령이 제안한 핵추진잠수함 추진합의는 32년 대한민국 국방 숙원사업이 결실을 맺는 의미가 있다.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천재적인 협상”이라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리외교의 전형”이라고 강조했다.
조승래 사무총장도 “성공적인 관세협상 뿐만 아니라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과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문제의 진전은 대한민국의 안보이익의 극대화와 원자력생태계 발전을 위해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며 “이러니 경제도 이재명, 외교도 이재명, 안보도 이재명”이라고 글을 올렸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일본과 비교해 나은 결과를 도출한 점,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된 점은 다행”이라고 평가하며 “긴장을 놓치지 말고 최종 문안 작업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 한미 합의문서 왜 없나?···한미 입장차 존재에 공세 나선 야권, 신중론
반면 야권에서는 얻은 게 없는 협상 결과라고 일축하며 온도차를 보였다. 특히 실질적 합의문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된 건 다행이나, 이제부턴 부담의 시작이라는 걸 말해준다”며 “무엇보다 공개된 내용이 합의 내용의 전부인지 국민께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벌써 미국에서는 우리 발표 내용과 다른 입장을 하나씩 얘기한다”며 “만약 미국과 우리 발표 내용이 달라지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다 더 큰 문제에 직면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도 같은 회의에서 “우리 경제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돼 다행이지만, 아직 합의문이 안 나왔고 구체적인 사안은 알려지지 않아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며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큰 규모인 3500억 달러 대미투자 합의 자체가 원죄다. 정부가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하는데 이는 외환시장 충격을 완화한 것이지 국민 부담을 줄인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주진우 의원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미래 10년을 옭아맨 협상 결과”라며 “기존 정부 설명과 완전히 다르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이어 “얻은 것이 없다. 자동차 관세 우위도 잃었다. EU, 일본 경제 대비 우리가 가장 큰 타격이다. 통관 완화 등 농산물 개방은 얼렁뚱땅 설명이 없다. 핵 잠수함 건조도 미국 무기를 사야 하고, 핵연료 승인을 받았을 뿐”이라며 “현금은 총 3500억달러만 투자한다는 기존 정부 설명과 완전히 다르다. 협상이 잘돼 문서도 필요 없다더니, 그때 왜 문서화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주 의원은 이날 오후에도 다시 게시물을 올렸는데, 그는 “또 말로만 자화자찬이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라면서 “왜 매번 미국과 말이 다른가”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미국 발표는 우리 정부의 설명과 완전히 다르다. 트럼프는 9500억 달러 규모 한미 협정이라고 직접 밝혔다”며 “조선업 투자에 과연 현금 얼마를 투자하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핵 추진 잠수함도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한다고 자랑한다. 기껏 우리가 얻어낸 것은 핵연료를 써도 좋다는 승인서 한 장인가”라고 직격했다.
나경원 의원도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의미가 있겠지만, 석 달여 동안의 협상 끝에 내놓은 결과는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에 의하면 관세인하 대가의 3500억 달러 지불에 더해 6000억 달러의 민간 대규모 투자가 더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일본과 EU보다 과도한 금액을 헌납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보수 성향의 또다른 야당인 개혁신당도 비판에 합류했다. 이준석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 간 관세 협상은 타결이라기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제의 해체에 가깝다”면서 “지금은 당파적 관점이 아니라 국익적 관점에서 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과 이명박 대통령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구축된 한미FTA가 이번 협상으로 사실상 흔들리게 됐다”며 “공들였던 한미 FTA 탑이 형해화(形骸化)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이번 협의가 경제에 미칠 중장기적 파급 효과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며 “국회 비준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과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