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유엔총회 연설 마친 이 대통령, 정부 ‘대북 정책’은 이상 無?
이 대통령 ‘유엔 연설’에 쏠린 눈, 정부 ‘대북 정책’에 엇갈린 반응
[시사포커스 / 이혜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안보와 직결된 북핵 대응의 대북 정책과 관련한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그러나 핵무장을 완성한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이 낮다는 현실적 한계로 인해 여야 정치권의 평가와 반응이 엇갈렸다.
◆ 유엔 연설 나선 이 대통령, 대북 정책 ‘E·N·D 이니셔티브’ 전략 소개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23일(현지시간) 개최된 제80차 유엔총회에서 이 대통령은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핵심축으로 하는 대북 안보 정책의 ‘E·N·D 이니셔티브’ 명칭을 내걸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 전략의 기본 틀로 제시하면서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 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 대통령은 “‘END’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대화로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며 “대한민국 정부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가장 확실한 평화는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라며 “남북 간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과 적대 행위의 악순환을 끊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도 ‘중단·축소·폐기’의 3단계 전략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하며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북한과의 신뢰 회복 개선과 협력을 강화해 나갈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비핵화는 엄중한 과제임에 틀림이 없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냉철한 인식의 기초 위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며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해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단계적 해법에 국제 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유엔총회에서 약 20여 분간의 기조연설을 한 이 대통령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대한민국’(33회)이었고, ‘평화’(25회), ‘민주주의’(12회), ‘협력’(9회), ‘한반도’(8회) 등도 다수 사용했다. 연설 과정에서는 3번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전임 대통령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같은 장소에서 열린 지난 77차 유엔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은 약 11분간 ‘자유와 연대-전환기 해법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연설하며 ‘자유’(21회)를 강조했고, 당시 7차례의 박수갈채를 받은 바 있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이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직후 뉴욕 웨스틴 뉴욕 앳 타임스퀘어 호텔에서 브리핑을 열고 대통령이 제시한 대북 정책에 대한 보충 설명에 나섰다. 위 실장은 이 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 전략에 대해 “▲교류 ▲관계정상화 ▲비핵화, 이 세 가지 요소들은 각각이 하나의 과정으로 서로 간의 우선순위와 선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상호 추동하는 구조로, 교류를 통해 시작하고 관계를 정상화하고, 비핵화를 추동하는 구조로 추동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 실장은 ‘비핵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 정상화를 염두에 둔 것이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하나하나가 바로 이뤄질 수도 있는 일이 아니다”며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도 오래 걸리는 일이고, 비핵화도 마찬가지다. 세 개를 함께 꾸려 나가면서 추동력 있게 조율해 나가겠다는 의미”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헌법에 명시된 통일의 의무보다 북한이 주장하는 ‘두 국가론’의 북한 체제를 인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4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북한의 두 국가론과 남북 기본협정 추진 방향’ 세미나에서 국정과제인 남북 평화 공존 정책 방향에 제도적인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 장관은 “지금은 남북관계에 대한 실용적 접근,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는 변화의 초점을 적대성 해소에 둬야 한다”며 “지난 3년의 변칙 사태와 그 결과로 초래된 ‘적대적 두 국가론’을 청산하는 일이 새 정부의 주어진 과제”라고 꼽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현명한 접근”이라고 평가하면서 이 대통령에게 연대와 협력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구테흐스 사무총장과의 면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는 국제사회의 평화·안보와도 연계돼 있다”며 “(남북이) 갈등과 대립을 넘어 대화와 협력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유엔이 지원해달라”고 당부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한국은 신뢰받는 파트너”라며 “국제사회가 분열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유엔에서 지혜롭고 균형 잡힌 목소리를 내면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화답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 이 대통령 대북 정책 환영하는 민주, 유엔총회 연설에 호평 일색
이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 대해 여야의 평가는 엇갈렸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에 대해 ‘한반도 평화 해법’이라며 극찬을 쏟아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12·3 비상계엄을 극복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저력을 세계만방에 알렸다”며 “END 이니셔티브는 한반도 냉전을 끝내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호평했다.
정 대표는 이어 “(이 대통령의 연설은)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눔으로써 인류 전체의 공동 번영을 이끄는 자신감 있고 당당한 연설이었다”며 “12·3 비상계엄을 극복하고 빛의 혁명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저력을 세계만방에 알린 이 대통령의 빛나는 외교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전현희 최고위원도 같은 회의에서 “이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은 내란의 상흔을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의 복귀를 알린 복귀 무대였다”며 “유엔의 지원에 힘입은 대한민국이 이제 회복과 성장의 경험을 향유하는 선도국이 되겠다고 천명한,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명연설”이라고 극찬했다.
한준호 최고위원도 “이 대통령의 연설은 계엄과 내란을 지나온 우리 모두와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준 것”이라며 “민주당도 이 대통령과 정부, 국민 모두를 뒷받침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병주 최고위원도 “이 대통령의 유엔연설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며 “내란극복과 민주주의 복원,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전 세계에 당당히 알렸다”고 높이 평가했다. 김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이제 대한민국은 다시 섰다. 세계가 감탄하는 민주주의 역사의 금자탑을 세웠다”며 “세계 앞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복원을 말하며 글썽이던 대통령의 눈물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긍지”라고 글을 올렸다.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이날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통령의 방미 외교가 값진 성과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며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는 '민주 대한민국의 복귀'를 천명하며 'E·N·D 이니셔티브'로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 실현을 약속했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 무대에 새겼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인 전략 제시라고 평가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인 홍기원 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하여 “과거에는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관계 정상화를 논의했다면 지금은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을 더 진전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대화하자는 인식으로 바뀐 것”이라며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집념만 버린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북한도 미국과 대화 여지를 열어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많은 대화와 상호 간 인식의 공통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 李 연설 ‘END 구상’에 혹평 쏟아낸 야권, 한반도 ‘안보 리스크’ 도마위?
보수 성향의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 철학이 담긴 이번 유엔 연설과 관련해 “‘엔드(END)’는 가짜 평화 대북 정책”이라고 우려를 쏟아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처럼 마음이 무거웠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실패한 좌파 대북 정책의 재탕에 불과하다”며 “결국 모든 것을 내어주고 우리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결국 북한 핵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파멸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가짜 평화 대북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적으로 지금 대한민국 체제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혹평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4일 논평을 통해 “이 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는 남북관계를 더 왜곡시키거나 북핵 고도화에 시간을 벌어주기에 충분한 아마추어적 발상”이라며 “장밋빛 환상만 가득한, 현실과 동떨어진 안보관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러 결속에 이어 북·중 관계 강화, 실패로 끝난 관세 협상과 지지부진한 한미관계까지, 대한민국을 둘러싼 엄중한 현실 속에서 비현실적 비핵화 구상과 구체적 전략 없는 평화·공존 메시지는 국민 불안만 가중할 뿐”이라며 “외교·안보 리스크를 불식시킬 구체적 전략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북한 체제 존중과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북한 김정은이 불과 며칠 전 ‘결단코 통일은 불필요하다’고 못 박고 ‘두 개 국가’임을 천명하며 단절을 강조했는데도, 이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 구애의 손길을 내민 것”이라며 “가진 게 핵밖에 없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우제식 상상력’을 발휘하며 끊임없이 일방적 유화책을 쓰고 있는 건데, 선의에 기댄 평화는 꿈과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뿐 아니라 박 수석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연설에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복귀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불법 대북송금 의혹을 받는 이 대통령 자신의 사법 리스크는 덮어둔 채 외교 무대에서까지 국내 정치를 이용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 구상에 대해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한 채 교류와 정상화를 먼저 추진한다면 결국 분단 고착화와 통일 불가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더 큰 문제는 이 구상이 북한 김정은의 요구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말한 ‘END’는 평화의 시작이 아니라 통일의 끝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박정하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확인하지 못한다면 다시 허송세월 지원만 해주고 마는 결과가 되는 것이라서, 그런 부분에 이번 유엔 연설은 너무 빨리 나간 것”이라며 “최근 이 대통령이 9·19 군사합의 복원 등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한 정권 내에서만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인지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가다가 과거와 같은 일이 또다시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국회 외통위 야당 간사인 김건 의원도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하여 “과거 대북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마련할 때는 미국과 협의를 거친 후에 발표가 돼 미국의 지지가 나왔던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북핵과 관련해 우리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공통된 인식을 갖고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며 “북한과 대화로 가는 길은 항상 ‘도발 사이클’을 지나갔던 만큼, 그 가능성을 염두하고 한미는 물론 국제 사회와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한 대비를 조언했다.
범여권을 제외한 제3지대 야권에서 역시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의 철학에 대해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를 보였다.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의 ‘3단계 비핵화’ 대북 정책 구상에 대해 “사실상 북한의 비핵화 포기를 용인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는 한반도 안보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송두리째 흔드는 중대한 전략적 변화”라고 지적했다. 특히 전 대표는 “이미 50여 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에 ‘핵 동결’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이는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며, 김정은의 구상을 수용하는 굴종적인 태도에 불과한 것”이라고 작심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