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청 신설하라” vs “흡수통합”

대통령 담화에 따라 지난 5월 29일 입법예고 된 국가안전처 신설을 둘러싸고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소방청은 국가안전처에 소방청을 별도로 설치해달라고 요구했고, 안행부는 국가안전처 안에 소방청이 육상재난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즉, 독립된 청을 요구하는 소방청과 흡수통합을 바라는 안행부 사이에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소방관들은 처우 개선을 바라는 1인 시위에 나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대통령 담화에 따라 지난 5월 29일 입법예고된 국가안전처 신설을 둘러싸고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소방청은 소방청 신설을, 안행부는 흡수합병을 각각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시스

지난달 28일 안전행정부는 재난안전관리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공직사회를 획기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정부조직법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지방교부세법,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재난관리체계 개선을 위한 핵심 법률은 정부조직법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지방교부세법 등 3가지 법률이다. 정부는 관련법 개정을 통해 재난안전관리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공직사회를 획기적으로 개혁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가안전처와 인사혁신처를 신설하고 안전행정부를 행정자치부로 개편한다. 특히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폐지하고 교육부장관이 겸임하는 교육ㆍ사회ㆍ문화 부총리를 신설한다.

이에 따라 소방방재청의 전체 업무를 비롯한 안전행정부의 안전ㆍ재난, 비상대비, 민방위 제도, 해양경찰청의 해양경비ㆍ안전 및 오염방제, 해양수산부의 해양교통 관제센터(VTS) 등의 업무를 국가안전처가 도맡게 된다.

“소방청 신설하라” 발끈한 소방관

이 같은 개편안에 가장 먼저 반발한 것은 일선 소방관들이었다. 지난달 28일 <다음 아고라>에는 입법예고된 정부조직 개편 방향에 대해 현직 소방관이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소방조직의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청원운동이 전개됐다. 이 청원운동엔 7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동참한 상태다.

이 현직 소방관은 ‘소방 해체를 막아주십시오!’ 라는 제목의 청원글에서 “소방조직은 비정상의 지속화로 가고 있다”며 “묵묵히 일 잘해온 소방이 해경과 같이 1계급 강등, 없어지면서 해체 흡수되고 국민은 그대로 시도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차별적인 소방안전 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개편되는 정부조직안은 기존의 정부조직과 이름만 다르다”면서 “정작 소방관의 최고 계급인 소방총감은 없애버리고 제복공무원의 자존심을 짓밟는 이유가 과연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가개조와 국가안전처의 시작은 관료사회가 재난현장중심 소방조직을 재난전문조직으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현재 소방방재청의 수장에 차관급인 정무직 또는 소방공무원을 임명하게 돼있는 반면, 국가안전처의 소방본부장은 1급이기 때문에 사실상 소방조직이 강등된다는 것, 신속이 생명인 소방이 또다시 관료조직 아래 지휘를 받게 된다는 것 등이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이에 소방방재청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인 지난 2일 방재청은 국가안전처에 외청으로 소방청을 신설해달라는 의견을 안전행정부에 제출했다. 또 중앙과 지방의 소방조직 지휘체계 확립을 위해 ‘소방청(본부)-지방소방청-소방서’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9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소방조직 쪽에서 그러한(소방청 독립) 의견이 있어 정부조직법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에 방재청의 의견으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문건에는 △일사불란한 지휘권 확보 △소방의 사기진작을 위한 조직 설계 방안 △소방인력과 예산에 대한 국비지원 확대로 국가정책 의지를 구체화해 달라는 요구 등 총 3가지 큰 틀의 건의사항들이 담겨 있다. 이를 위해 육상재난에 대한 일원화된 지휘가 가능토록 ‘소방’을 특화시켜 국가안전처 소속의 외청인 ‘소방청’으로 개편하고 국가와 지방으로 이원화된 소방공무원 신분을 국가직으로 단일화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지난 5월 29일 전국 소방본부장 안전대책 회의에서 도출된 건의사항도 청와대에 함께 전달했다. 소방본부장 회의 결과 건의 안건으로는 국가안전처 내 소방 조직의 독립성을 부여하고 최고지휘관의 소방총감을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소방청 소방조직은 최근 전국 시도 소방본부에 내려 보낸 문건에서 “안행부가 입법예고 기간 관련부처·단체 의견조회를 거쳐 추가 검토한다고 브리핑했으나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차관회의에 상정했다”며 “정부가 정해진 수순에 따라 일방적인 법률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30일, 반발이 확산되는 기미를 보이자 안전행정부는 ‘소방조직 기능위상 축소 우려’에 대한 공식 설명자료를 배포하고 급히 진화에 나섰다. 안행부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통해 육상재난 발생 시 긴급구조활동에서 소방관서장에게 군·경 등의 현장지휘권을 제도화했으며, 향후 안전처 신설 시 중앙 119구조본부 등 소방조직의 기능과 인력을 대폭 확충·보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강병규 안행부 장관까지 나서 “소방직이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적극 해명했다.

▲ 한 현직 소방관이 <다음 아고라>에 올린 청원글 ‘소방 해체를 막아주십시오!’ / 사진 : 아고라 캡쳐
그러나 한 소방공무원은 같은 날 <다음 아고라>에 “안전행정부에서 소방조직의 기능 및 위상 축소 우려에 대한 설명자료를 배포했으나 여러 측면에 있어서 사실과 다른 사항을 주장하고 있기에 반박한다”며 반박 자료를 냈다.

그는 “기능과 조직이 확대되었다고 하지만 소방의 최고계급인 소방총감이 갈 곳이 없으므로 실질적 축소이며 소방기관 중 국가안전처 최고상급자인 소방정감은 서울과 경기 소방본부장과 계급이 같으므로 지휘권 정립에 문제가 발생된다”고 지적했다.

또 육상재난 발생시 긴급구조활동에서 소방관서장에게 군경 등의 현장 지휘권을 제도화 했다는 안행부 주장에 대해 “현행 법령상 가능한 소방관서장의 현장지휘권을 이번 조직개편으로 소방기능을 강화하는 것처럼 홍보하려는 의도”라며 “실질적으로 소방기능은 변화되는 것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향후 국가안전처 신설 시 중앙119구조본부 등 소방조직의 기능과 인력을 대폭 보강할 예정이라는 안행부의 입장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구조대원은 전국 소방인력의 0.38%에 불과하고 그 조직과 기능을 강화한다고 해도 소방전체 기능이 대폭 확충 및 보강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소방공무원 99%를 차지하는 시도 소방본부 및 소방서의 기능과 인력을 확충하지 않는 한 문제점을 지속될 것”이라고 못 밖았다.

특히 그는 “99%인 시도 소방본부와 소방서는 현행 체계가 유지됨으로써 반복되는 노후장비와 인력부족 문제가 지속될 것”이라며 “소방조직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방공무원의 국가직화가 필수적인 요소”라고 꼬집었다. 한편, 정부조직법·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은 1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 조직 구성과 관련한 문제는 결국 국회에서 최종 결판이 나게 됐다.

열악한 환경 개선 필요성도 대두

이 같은 가운데, 소방관들의 근무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한 현직 소방관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 현직 소방관들 중에 장비가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소방장갑 지급이) 1년에 한 짝도 아니다. 거의 2~3년, 열악한 데는 한 5년에 한 번 정도씩 (지급)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금 소방은 지자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각 지자체 예산이 크게 좌우가 된다. 그런데 요즘 지자체들이 많이 힘들지 않느냐”라며 “그러다 보니 크게 표가 안 나는 그런 안전이나 재난 쪽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방화장비 같은 경우는 1인당 하나씩 지급이 안 되면 실질적으로 자신한테 생명의 위협이 되니까 그런 부분이 좀 심각한 것”이라며 “소방차량 같은 경우, 전국 평균이 5대 중에 1대가 이미 폐차시켜야 되는 차를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 소방방재청이 발표한 소방장비통계집에 따르면 진압?보호장비의 총 노후율은 평균 22.8%로 지난해(12.5%)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경북(38.3%) 대전(35.2%) 인천(31.4%) 서울(29.4%) 창원(28.8%) 전북(28.7%) 강원(28.3%) 대구(27.8%) 전남(24.0%) 충북(22.7%) 순으로 노후율이 높았다. 또 전국 소방차량 5682대 중에서 내용연수가 지난 차량은 1202대로 21.15%에 달했다. 결국 소방관들은 노후장비와 차량을 이용해 목숨을 걸고 국민의 안전을 위해 뛰고 있는 셈이다.

소방관들의 업무 강도도 매우 높은 편이다. 지난 2월 가수 김장훈이 ‘대한민국 소방관 프로젝트’ 기자회견에서 밝힌 공식 자료에 따르면 소방관 1인이 책임지고 있는 시민은 1359명이다. 이는 미국(912명)과 일본(799명)보다 2배 높은 수치다.

이에 지난 2일 소방청은 안행부에 소방청 신설에 대한 공식 요청을 하면서 부족한 소방인력과 예산에 대한 국비지원책도 요청했다. 전국 소방역량의 균형적인 재정 지원을 위해 현재 1.8%에 머무르는 국비지원율을 2017년까지 10%까지 확대해 43%를 차지하는 국가 소방사무의 책임성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다.

소방관들 역시 처우 개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들은 땡볕 아래 화재진압 장비까지 착용한 채 1인 릴레이 시위에 나섰다. ‘안전도 빈부격차?’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최근 5년간 29명 순직, 1626명 부상… 소방관이 위험하면 국민도 위험하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소방관처우개선을위한운동본부 배선장 본부장은 “지자체 예산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소방관 처우개선 문제는 국가직으로 전환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며 “현재 소방방재청을 국가안전처로 바꾼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된다. 소방관 업무를 모르는 책임자가 서게 되면 소방관 처우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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