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의 부재…수펙스추구협의회가 안정적으로 이끌어

재계 서열 3위인 SK는 현재 수장이 부재 중이다. 최태원 회장이 영어(囹圄)의 몸이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50%가 넘는 SK텔레콤,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는 SK건설,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도 괄목할 만한 실적을 낸 SK하이닉스 등은 모두 최 회장의 애정이 깊이 서린 계열사들이다.

더욱이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저마다 신성장 동력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최 회장의 부재는 그룹 차원에서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총수가 일선에서 큰 사업을 진두지휘해야하지만 SK로서는 그럴 수 없는 입장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실형을 받은 것은 의외의 결과라며 놀라면서도 재판 과정에서 최 회장이 진술을 번복하면서 ‘괘씸죄’가 적용된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을 펼치고 있다.

최근 최 회장이 전 계열사로부터 받은 보수 301억 원을 포기하기는 했다.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이가 보수를 받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이 제기되며 최 회장은 과감히 보수를 포기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최 회장이 올해 4월 말 현재 보유한 주식 가치는 2조6926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말 2조5684원 대비 4.8% 늘어난 금액이다. 대부분의 재벌총수의 주식 가치가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최 회장 보유 주식 가치가 상승한 것은 이목을 끌만하다.

최 회장이 자리를 비운 상태지만 SK 각 계열사들은 큰 문제없이 실적을 내고 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계열사 돈을 빼돌려 옵션투자 명목으로 송금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 4년형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뉴시스

몰래 빼낸 돈으로 선물 투자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최 회장은 최근 의정부교도소로 이감됐다. 최 회장은 2년 8개월가량을 더 복역해야지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최 회장은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과 함께 계열사 돈 465억 원을 빼돌려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옵션투자 위탁금 명목으로 송금했다.

최 회장 형제와 김 전 고문 그리고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 사이의 진실 공방이 이어졌다. 빼낸 돈을 누구의 지시에 의해 한 것인지를 두고 네 사람은 법정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쳤다.

많은 국민의 눈은 최 회장에게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최 회장은 재판 초기 465억 원을 횡령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최 회장의 변호인단은 최 회장이 횡령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그 정도의 자금을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횡령을 할 필요가 있겠다는 주장이었다.

최 회장 본인도 계열사에 펀드 출자금 선지급 지시를 하지 않았고 김 고문에게 돈이 송금된 사실도 전혀 몰랐다며 자신이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의혹들이 하나 둘 베일을 벗기 시작하면서 최 회장은 항소심에서 펀드 출자 지시를 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동안 주장했던 내용과 상반된 진술이었다.

최재원 부회장은 애초에 횡령은 자신이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형인 최 회장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자 최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말을 바꿨다. 횡령한 돈을 김 전 고문에게 전한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 또한 항소심에서 1심까지 모두 거짓말을 했다고 밝히면서 최 회장을 살리기 위해 모든 이들이 전략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었다.

이렇게 되자 많은 이들이 변호인단이 최 회장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하게 한 것 아니냐며 자칫 재판 결과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실제로 SK는 변호인단을 세 번이나 바꾸면서 그때마다 다른 전략을 구사했지만 오히려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여줘 신뢰감을 떨어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SK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법원이 최 회장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희미해져간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법무팀에 대한 압박도 상당했다고 전했다.

당시 비슷한 사건으로 법정에 선 재벌총수가 몇 명 있었기 때문에 총수 변호를 두고 어느 그룹 법무팀이 더 잘하느냐는 비교가 일어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신의 기존 발언을 뒤집는 주장이 이어지면서 법원은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확정했고, 무죄를 선고 받았던 최재원 부회장 또한 3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이로써 최 회장 형제는 동시에 유죄를 선고 받는 '수모'를 안았다.

▲ 최태원·재원 형제가 모두 계열사 돈을 빼돌려 옵션투자 명목으로 송금한 혐의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최 회장 형제가 모두 수감되면서 SK는 올 한 해도 쉽지 않은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계속되고 있다. ⓒ뉴시스

10년 전에도 분식회계 건으로 구속

최 회장은 10년 전에도 수감된 적이 있다. 이른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이다.

지난 2003년 최 회장 등 최고 경영진들은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이익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1조5000억 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와 함께 워커힐호텔(현 W호텔) 주식 385만 주를 실제 가치의 두 배로 부풀려 계열사에 팔아 1000억 원가량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도 받았다.

그동안 관행처럼 이뤄졌던 재벌총수의 사적 이익 챙기기에 검찰이 제동을 건 것이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손길승 SK회장과 김승정 SK글로벌 부회장에게는 징역 3년 집행유행 4년, 김창근 SK(주) 사장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SK글로벌 분식회계와 관련 “옵션계약으로 해외법인에 과다한 피해를 안기고, 은행 금융거래 조회서까지 위조하는 방법으로 분식을 확대한 점이 인정된다”며 최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의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최고 경영층들이 대거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지만 최 회장은 징역형을 선고받음에 따라 SK는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더욱이 채권단은 앉아서 피해를 볼 수만은 없다면서 SK를 압박했고 SK는 그룹 해체까지 걱정해야 되는 상황에 놓였다.

최 회장은 SK글로벌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사재를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최 회장의 보유하고 있던 SK 계열사 지분은 ▲SK글로벌3.31% ▲SKC 7.5% ▲SK케미칼 6.84% ▲SK(주) 5.2%와 최 회장의 개인 회사였던 SK C&C 44.5%였다. 이 회사의 지분을 모두 매각할 경우 최 회장으로서는 3840억 원가량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유 지분을 매각할 경우 최 회장의 경영권은 박탈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이 최후의 카드를 선택한 것은 선대에서부터 기반을 다져온 기업을 자신 대에 와서 문을 닫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채권단은 SK가 제출한 자구계획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청산형 법정관리를 신청키로 결의했다. 공중분해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최 회장은 살아났다. 분식회계에 이어 SK해운의 자금으로 SK글로벌의 부도를 막았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손길승 SK 회장도 집행유예형을 선고 받으며 모두 풀려났다.

이 때문에 당시 여론은 검찰이 또 한번 ‘재벌 봐주기’를 했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최태원 회장이 부재 중임에도 불구하고 SK 계열사들의 실적은 나빠지지 않았다.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전 계열사를 잘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회장의 장기간 부재는 자칫 SK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최 회장 부재 속에도 굳건한 SK

최 회장이 구속 수감된 지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SK는 굳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선전은 기대 이상이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가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눈에 띌 만한 실적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 시장에서 50%를 넘는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며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영업정지 여파로 고객을 조금 빼앗기긴 했지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뿐만 아니라 몇몇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최 회장 부재의 여파가 미치지 않고 있다.

재계에서는 SK가 총수의 부재에도 굳건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반에는 수펙스추구협의회가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최종현 선대 회장의 사망 이후에도 SK 일가는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일말의 잡음이 들리지 않았다. 이미 최 전 회장이 최 회장을 공식적으로 그룹 승계자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최 전 회장은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오너는 오너로서, 전문경영인은 전문경영인으로서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 때문에 아들인 최 회장에게 그룹 총수의 자리를 물려주면서 전문경영인들에게 최 회장을 보좌할 것을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수펙스추구협의회다.

현재 김창근 수펙스수추협의회 의장은 지난 2012년 12월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선임되면서 SK그룹을 이끌고 있다.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있기 때문에 SK는 최 회장이 부고에도 불구하고 흔들리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함의 씨앗은 남아 있다.

최 회장이 두 번의 부재가 발생한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식 투자’가 존재한다.

회삿돈을 빼내 모두 주식 또는 선물에 투자한 것이다.

현재 수감된 사건을 변호했던 변호인들도 최 회장 개인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돈을 굳이 횡령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재계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열약한 자금 상태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은 해마다 발표하는 재벌 총수 주식 가치 순위에서 3위를 확보하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그만큼 우량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최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신규 사업을 시작하면서 지분을 보유해야 하고 그 사업을 유지할 때도 자신의 자본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의 현금 보유력이 다른 기업의 총수에 비해 떨어진다는 얘기는 그동안 계속돼 왔다”며 “총수가 기업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지만 최 회장의 경우 지주사인 SK C&C의 지분 31.5% 소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주요 계열사인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전체적으로 계열사 지분 보유율이 높지 않아 언제든지 경영권 위협을 받을 수 있어 최 회장으로서는 현금을 확보해야지만 지분율을 높일 수 있다”며 “이번 일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 회장이 지분율과 상관없이 SK는 특정 우량 기업들이 그룹 전체를 이끌어가는 모양새다.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은 최대 실적을 내는 곳이고 뒤를 이어 SK하이닉스와 SK건설 등도 사업을 잘 하고 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도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있기 때문에 최 회장이 자리를 비웠다고는 하지만 큰 위기는 없을 것 같다”면서도 “글로벌 경제가 워낙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에 최 회장의 부재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신규 투자에 대한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것이 SK의 약점이라면 약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사포커스 / 전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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