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트라우마인가, 여전한 안전 불감증인가?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인한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가운데, 대한민국 전역이 잇따르는 사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4월 21일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화재로 시작해 5월 28일 현재까지 발생한 사고들로 인한 사망자 수만 해도 31명에 이른다. 한편, 전문가들은 사고 자체의 증가보다는 ‘세월호 효과’에 따른 불안감이 증폭된 것이라며 과도한 불안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적으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국민 불안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참사 이후 벌어진 주요 사고들 중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는 3건으로 △4월 21일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화재(2명 사망) △5월 26일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8명 사망)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방화(21명 사망) 등이다. 총 31명이 사망했다.

◆줄 잇는 대형사고
4월 21일 발생한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화재는 2명의 사망자와 2명의 부상자가 발생, 총 4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사고 발발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오후 4시 4분께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내 LPG 건조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협력업체 근로자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번 화재는 건조 중인 8만4000㎥급 LPG선 내부 홀드(화물창 내 LPG 탱크 탑재공간)에서 발생했으며, 소방당국이 진화에 나서 불길은 오후 5시 33분께 잡혔다.

이후 약 한달 뒤인 5월 26일 발생한 고양종합터미널 화재는 28일 오후 8시 30분 기준 8명 사망, 70명 부상으로 총 78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이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번 사고 역시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인재’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이 있어 특히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불은 고양종합터미널 지하 1층 CJ푸드빌 인테리어 공사현장에서 음식점에 공급될 천연액화가스(LNG) 배관을 연결하려고 용접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당초 합동수사본부는 화재 원인으로 용접작업 중 튄 불꽃이 누출가스에 옮겨 붙어 발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지만, 28일 감식결과 가스배관 용접 당시 밸브는 잠겨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발화 원인으로 가스 밸브 열림·불량, 배관 내 가스 잔류 등 다양한 추측이 나왔으나 밸브에 대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수사본부는 발화 원인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번 화재는 오전 9시 10분께 발생해 9시 25분께 진화됐다. 약 15분 사이 8명이 생명을 잃은 것이다. 28일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열린 합동설명회에서 일산소방서는 “불이 난 뒤 지하 1층 스프링클러와 에스컬레이터 주변 방화셔터와 제연커튼 등 방화시설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스프링클러는 자동소화설비로 불이 감지되면 바로 물이 터져 나오는데 지하 1층의 경우 공사 때문에 밸브를 잠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화재가 인재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수사본부 역시 인명 피해가 커진 원인으로 지목된 지상과 통하는 에스컬레이터 주변 방화셔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방화셔터가 제대로 설치됐는지, 전원이 꺼져 작동하지 않았는지 등은 추가 감식에서 밝히기로 했다. 용접과 같은 작업을 할 때 연기가 나면 스프링클러가 작동, 공사 편의 때문에 일부러 소방안전시설 전원을 껐다는 진술도 나오고 있다.

또 현행법상 불이 난 터미널 지하 1층처럼 외부로 난 창이 없는 실내공간은 바닥 면적이 1000㎡ 이상일 경우 천장에 제연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지만, 제연설비는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본부는 시공업체가 공사 편의를 위해 방화셔터와 제연설비 전원을 꺼놓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기소방본부 관계자는 “방화셔터와 제연장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번 사고처럼 2·3층으로 연기가 빨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5월 28일에는 전남 장성 소재 효사랑 요양병원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0시26분 별관에서 발생한 화재는 2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또 8명이 부상(중상 6명, 경상 2명)을 당했다. 효사랑요양병원에는 53개 병실에 총 324명의 환자가 입원중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별관동 1층에는 45명, 2층에는 35명의 환자와 간호사가 머물고 있었다. 1층은 전원 대피에 성공했다. 2층에 6명은 자력으로 탈출에 성공했지만 남은 29명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소방대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2층에서 희생된 사람들 대부분은 유독가스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복도 양 옆으로 병실이 있었으며 접이식 문도 열려 있어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병실을 덮쳤다.
현장에 직접 출동했던 담양소방서 조화원 계장은 2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신고가 바로 들어와서 4분만에 도착해서 2분 안에 초기진압을 했다”면서 “현재 병실로 쓰고 있지 않는 306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래서 현장 도착할 때는 이렇게 연기가 밖으로 유리창을 통해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조 계장은 “인명피해가 큰 이유는, 첫째 자력 대피가 곤란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있었고 그 다음에 잠을 자는 취침시간대, 심야시간 때에 화재가 발생을 했고 가장 큰 원인은 침구류라든가 매트리스가 병실로 안 쓰는 306호에 있어서 유독가스가 좀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병원구조상 연기가 잘 빠지지 않아서 그리고 한 층으로 이렇게 연기가 급격히 뭉쳐져가지고 그 안에 많이 체류된 상태”였다며 “파악한 바로는 화상환자는 없다”고 덧붙였다. 즉, 화상으로 인한 사망은 없고 모두 질식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것이다.

조 계장은 “환자분들이 온전한 사람도 아니고 고령에다가 유독가스 같은 경우 저희 같은 일반인들도 한 두 모금 마시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쓰러지는 그런 상황까지 온다”며 “.연기가 위험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효사랑 요양병원이 지닌 구조적 문제가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한다. 같은 날 동 인터뷰에서 경민대학교 소방학과 이용재 교수는 “요양병원 특성상 연기배출이 안 되는 구조로 돼 있다. 어렵게 돼 있는 구조”라며 “창문이 있기는 있지만 이런 걸로 인해서 통로가 밀폐돼 있고 그래서 어디로도 연기가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보니까 쉽게 연기가 차고 그로 인해서 질식이 쉬운 상태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기에 계신 분들이)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는 아주 취약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짧은 기간이지만 그렇게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또 사고가 발생한 층을 담당한 간호사가 1명 뿐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화재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그분들을 빨리 대피시킨다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라며 “인력이 있다고 해도 힘들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 있을 때는 얼마만큼 빨리 환자들에게 통보를 하고 빨리 대피시키고 또는 연기가 빨리 빠질 수 있게 하고 이런 것들이 인명피해를 줄이는, 대응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대책인데 여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노인 관련 시설들이 그런 부분에는 굉장히 좀 어떤 과학적인 대처 시스템같은 부분은 특별히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불안에 떠는 국민들

▲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사고에 따른 불안감이 각종 사고들에 투영되면서 불안감이 더 크게 느껴지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지만, 안전문제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보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뉴시스
이 뿐만이 아니다. 5월 2일엔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전동차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391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상자 수로만 따지면 세월호 참사 이후 발생한 사고 중 가장 큰 규모다. 또 5월 19일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당인리 발전소에서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치솟는 사고와 대구사대부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1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5월 27일엔 경기 안산 시화공단에서 화재가, 서울 강동구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부상자는 시화공단에서 발생한 1명 뿐이지만 고양종합터미널 화재가 발생하고 바로 하루 뒤에 일어난 화재인 탓에 국민들에게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요양병원 화재가 발생한 28일에는 서울 동대문 홈플러스에서 화재가 일어나 1명이 다쳤다. 종로구 SK 사옥 주차장에서도 화재가 발생했고, 서울 지하철 3호선 도곡역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행히 두 화재 모두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망자가 발생한 대형 사고를 제외하고라도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연이어 터진 것이다. 때문에 시민들의 불안감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28일 경기도 거주민 김모씨(27)는 “요새는 뉴스 보기가 무섭다. 매일같이 사건이 터지기 때문”이라며 “어딜 가도 안전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과한 불안, 세월호 때문”
세명대학교 정기신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2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며칠 사이에 인명 피해가 발생한 화재 사고가 몰리면서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전체 통계로 보면 최근 화재 사고가 급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석동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겸임교수도 “세월호 침몰 사고와 맞물린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이런 때일수록 각 분야에서 차분한 자세로 적절하고 신속한 초동대처를 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8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시민들의 심리상태에 대해 ‘비상시국’으로 정의하며 “비슷한 사고가 이어지면서 작은 것에도 민감해져서 문제를 더 크게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곽 교수는 “눈에 보이는 사고도 문제지만 사람들의 불안감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도 더 큰 문제로, 불안은 전염될 수 있다”며 “정부는 무엇이 원인이고 잘못됐는지, 대책 등을 빨리 알리는 등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역시 “세월호 사고가 아직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상황이라 실제보다 발생확률을 더 크게 생각하고 불안해하는 것”이라며 “개인 수준에서는 일상의 일을 하면서 조금씩 정상적인 사고 패턴으로 돌아오면 나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소방방재청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화재 발생 건수는 4만932건이었다. 하루 평균 112건 정도다. 올해의 경우 1월부터 5월25일까지 1만9663건의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했다. 하루 평균 135건 정도다. 지난해 1~5월 발생한 화재 1만9265건(하루 평균 133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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