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에 파종한 꾸지뽕 씨앗들이 발아한 모습

 사람들은 늘 남과 비교한다. 타고난 환경과 부모를 비교하고 자신의 외모와 재능을 남과 비교하면서 끊임없는 불만에 시달린다. 그러나 초목들은 자신이 뿌리내리게 된 그 자리에 순응하며 주변과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산다. 키 작은 나무는 작은대로 키 큰 나무는 큰대로 자신의 개성을 살려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아름답고 향기 나는 꽃을 피우지 못하는 들풀은 나름대로의 개성과 특성으로 자신의 몫을 다한다.

 

본가에는 화려한 꽃은 화려한 대로 소박한 꽃은 소박한 대로 거기가 자기자리임을 확신하는 듯 여러 가지 꽃들이 피고 진다. 텃밭 한편에는 아직도 나무로 얼기설기되어 있어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데, 그 주변에는 수국이 가득 피어있다. 그 곁으로는 붉은색과 연분홍색의 백일홍 꽃이 한가득 핀다. 백일홍 꽃은 이름만큼 오랫동안 꽃이 피기 때문에 초라한 화장실이 운치 있게 보이고, 안에 앉아 눈높이의 화사한 꽃들과 대면할 수 있으니 참 고맙다.

닭벼슬처럼 생긴 맨드라미꽃과 접시꽃은 집으로 들어서는 길을 따라 쭉 도열해서 치고, 거친 자갈사이로는 키 작은 노란 금잔화가 핀다. 접시꽃은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줄기를 따라가며 올망졸망 꽃이 매달려 있기 때문에 키가 작은 아이부터 키 큰 어른들까지 모두 꽃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으니 고맙기도 하고,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니 반갑고 서러운 꽃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꽃이 들에 피면 야생화이고 들꽃이다. 민들레는 밭에도 있고 길가나 들판에서도 자란다. 삭막한 도시의 골목길 콘크리트 틈새에서 꽃을 피웠다면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야생화가 될 것이고, 한적한 들판에 피어 있는 민들레는 들꽃으로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민들레가 잔디밭에 돋아난 것을 정원사가 보았다면 십중팔구는 꽃이 피기 전에 제거될 잡초에 불과하다. 하지만, 민들레를 한낱 잡초로 생각하던 농부가 민들레를 약초로 재배하고자 본격적으로 민들레 밭을 조성하였다면, 민들레는 더 이상 잡초가 아니라 소득작목이 된다. 결국 잡초냐 아니냐는 보는 관점의 차에 따라 잡초가 되기도 하고 작물이 되기도 한다.

인간들의 필요에 따라 또는 생육지에 따라 다른 인식과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민들레 한 송이가 우주의 섭리를 깨닫게 해주는 철학과 시의 소재가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옛사랑과 젊은 시절의 낭만을 떠올리며 노래하게 하는 들꽃이 되기도 하지만, 경작목적과 상관없는 존재로 여긴 농부에게는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는 잡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농사를 시작하면서 잡초에 대한 마인드를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가도 고민해 봐야 한다. 잡초의 사전적 정의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불필요한 식물들이다. 작물은 사람 손으로 재배되고 잡초는 야생으로 자란다. 작물은 사람 손에 의해 종자를 받거나 종자를 개량해서 심게 되지만 잡초 씨앗은 자신의 방식대로 종자번식을 한다.

 

작물은 오랜 인간의 보살핌으로 점차 연약해졌고, 잡초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욱 강해졌다. 일반적으로 관행 농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그런데 자연농을 몇 년째 해 온 밭에서는 오히려 작물이 득세한다. 열무 같은 채소를 심어보면 드문드문 난 곳에는 잡초가 쳐들어오지만, 배게 난 곳에는 잡초가 엄두를 못낸다. 열무를 솎아내지 않고 그대로 두면 열무들끼리 경쟁을 해서 그 중에서도 튼실한 열무는 부실한 것들을 밀어내고 맘껏 자란다.

그러므로 잡초를 농약으로 죽이는 것을 연구하기 보다는 작물을 튼실하게 키워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제초제의 독성은 매우 강해서 작물에 스며들어 식품안정성을 위협하고 주변생태계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환경은 순환되므로 제초제에 의존하는 농법은 인간을 이롭게 하기 보다는 인간에 해를 끼치게 되므로,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작물을 건강하게 생산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해야만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본다.

 

인디언 사회에는 잡초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을 대하는 인디언들의 사고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다. 인디언들은 모든 동·식물에는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각기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익이라는 가치 기준에 의하여 작물과 잡초를 구별하는 대신, 약용과 식용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경제적 이익이 가치 기준이 아니라, 궁극적인 삶의 이익을 가치 기준으로 삼을 때 모든 식물들은 사람에게 이익을 준다.

 

인간의 이기심과 이중성에 의하여 사람이 잡초를 대하는 태도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창세 이래로 처음에 들꽃이 아니었던 꽃이 없었던 것처럼, 사람 또한 모두 똑같이 신의 창조물이다. 그러나 원치 않는 장소에 원치 않은 종류가 뿌리 내리면 잡초로 분류되듯이 사람도 그렇게 분류하여 천대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사람이 잡초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야생화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농어촌에는 아직도 많은 일손들이 필요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비록 갖은 게 없더라도 환한 미소와 다정한 말로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 자신은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도 자식들만은 좋은 옥토에 뿌리내리고 살기를 바라는 우리네 부모님 같은 마음을 가진 이웃들은 민들레를 닮았기에 아름답게 느껴지고 함께하고 싶어진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 골목길에 핀 민들레꽃과 같은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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