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은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

외국으로 불법 반출된 수많은 우리 문화재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해온 혜문스님. 정부도 어려워하는 문화재 되찾아오는 일을 매번 앞장서왔다. 해외 밀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기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혜문스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백악관 청원서명우리 문화재 되찾아
문화재 환수 위해선 패배의식 극복 중요
우리 조상이 물려준 정신찾는 과정

▲ 혜문스님은 잊혀졌던 문화재를 찾는 일에 늘 앞장서왔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동학군 농민군 지도자의 머리뼈가 20년간 방치된 가운데,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은 지난 19일 온라인 블로그 혜문닷컴을 통해 방치된 유골을 조속한 시일 안에 안장할 것을 촉구했다.

그것은 20년간 방치되어온 유골은 일본군에게 살해당한뒤 목이 잘린 동학군 장군의 유골이었다. 이를 1906년 일본인 사토 마사지로가 진도에서 무단 반출해 훗카이도 대학으로 가져가 보관했고 이후 1995년 훗카이도 대학 연구실에서 발견됐다. 인권유린 현장을 적발당한 훗카이도 대학은 1996530일자로 한국에 서둘러 유골을 반환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골은 안장처를 찾지 못한 채 방치된 것으로 드러나 세간에 충격을 줬다.

이에 혜문스님은 동학군 장군의 유골을 세간의 무관심으로 20년간 방치한 행위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라며 갑오동학운동 120년을 맞아 조속한 시일안에 유골을 안장할 것을 박물관측에 촉구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스님은 동학군 지도자 유골 인장 요청서를 통해 지난 2010년 국과수 소장 여성 생식기 표본과 백백교 교주 전용해 두상표본의 반인륜성을 인권위 진정, 법정소송 등을 통해 해결한 바 있다홋카이도 대학이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1996년 한국에 반환한 동학군 지도자 유골이 안장되지 못하고, 전주 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방치되어 있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반인권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어 갑오동학운동 120년을 맞아 자발적으로 '동학군 지도자 유골'을 지체 없이 적절한 절차에 의해 안치해 주시기를 요청한다고 전했다.

이와 같이 동학군 머리뼈 사건처럼 혜문스님은 잊혀졌던 문화재를 찾는 일에 늘 앞장서왔다. 최근 미국으로 돌려받은 문화재도 백악관에 우리 문화재를 되돌려달라고 청원 운동과 서명을 하는 등 혜문스님의 공이 컸다. 혜문스님이 국내외의 문화재와 관련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왜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을 하는지 등 궁금한 점들을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Q. 약탈된 우리 문화재가 미국 뿐 아니라 일본, 유럽 등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데 그 양이 얼마나 되나요?

국외문화재 재단의 조사발표로는 약 15만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몇 만점이 흩어져 잇다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몇 만점 중에 어떤 것이 불법적인 거래로 약탈된 물건인지를 심층 분석하는 게 문화재 환수에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시민단체이지만 9개의 문화재 환수 우선목표를 정하고 진행하고 있고, 10년 동안 6점을 성공 시켰습니다. 그런데 정부기관은15만점이라고 발표만 했지 아직 우선 환수 대상을 정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문화재를 돈으로 사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건 단지 보여주기 위한 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Q. 오구라 컬렉션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오구라는 일제 강점기 대구에서 남선합동전기회사를 경영하며 치부했던 일본 실업가 오구라 타케노스케를 말합니다. 컬렉션은 그가 1922년부터 1952년까지 주로 조선 땅에서 금력과 완력을 부려 거둬들인 숱한 문화재 1100여점을 말하는 것이죠. 대부분 고대 한반도의 최고급 금속, 목공예 유물로 이뤄진 컬렉션은 1945년 패전 뒤 일본 땅으로 고스란히 건너간 뒤 그의 아들 야스유키에 의해 80년대 초 선친이 모았던 유물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1964년 한일 국교 교섭 당시 정부는 반환요청을 했지만, 사설 컬렉션이란 이유로 결국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문화재 꾸러미가 바로 오구라 컬렉션입니다.
 이 오구라 컬렉션은 고고, 회화, 조각, 공예, 전적, 복식 등 한국 문화재 전반을 다루고 있는데, 삼국시대의 금동관모 등 8점이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통일신라 은평탈육각합 등 31점이 일본의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될 만큼 문화적 가치가 큰 유물이 많습니다.

▲ 수십년간 방치돼 온 동학 농민군 지도자의 머리뼈. ⓒ문화재제자리찾기

Q. 일본과 문화재 환수 논의를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요? 일본정부와 한국 정부의 이해관계가 있는 것인가요?

일단 65년 한일협정으로 청구권이 완전 소멸되었으므로 반환의무가 없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나 공직자들이 일본의 문화재 반환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만, 실제로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로 1300점의 국보급 문화재가 5년 사이에 반환되었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점을 반증하는 겁니다. 따라서 진짜로 문화재 환수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사건을 진행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평생 동안 문화재 환수 운동에 관심도 없고 성과도 없던 사람들이 문화재 환수운동의 전문가로 행세하고, 주요자리에 포진해서 오히려 훼방하고 있는 것이 통탄스러울 뿐입니다.

Q. 해외로 밀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되돌려받기 위해 노력을 해오셨는데, 최근 미국이 불법 반출해갔던 국새와 어보 등 9점을 한국에 반환했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 미국 대통령이 직접 약탈해간 문화재를 돌려준 것은 우리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사건입니다. 이른바 진실은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민족적 쾌거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Q. 미국으로부터 돌려받은 것은 국새와 어보는 어떤 것이고,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요?

대한제국 국새는 대한제국의 자주권을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그중에서도 황제지보는 우리도 황제국이란 것을 보여주는 지존의 물건, 이른바 옥새입니다. 이렇게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물건이 6.25 전쟁당시 분실되었다가 60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 국새는 총 13점이라고 하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국새, 황제지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 대한국새는 아직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돌아오게 된 황제지보는 가장 중요한 황제의 지위를 상징하는 국새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관리의 임명에 날인했던 유서지보, 준명지보 등도 넓은 의미의 국새에 일종입니다. 그 외에도 그 외에도 고종이 순종에게 황제를 양위한 뒤 만들어진 수강태황제보, 서화감식 도장 등 개인 인감으로 사용된 왕실의 인장 등 총 9점이 돌아옵니다. 향천심정서화지기, 우천하사, 쌍리, 춘화, 연향 등이 그것입니다.

Q. 그렇다면 이 국새와 어보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미국으로 밀반출 된건가요?

대한제국 국새는 대한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파란만장한 격동의 운명을 겪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이후 조선총독이 압수 일본 궁내청 이른바 천황궁으로 이전됩니다. 그후 45년 해방과 더불어 맥아더 원수가 다시 한국으로 되돌려 주었던 것을 506.25 당시 분실한 것입니다. 2013년 문정왕후 어보 반환운동을 통해 어보가 도난품이란 것을 저희가 증명했고, 9월 반환결정이 내려지면서 미국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게 됩니다. 이때 워싱턴의 한 골동품상이 샌디에고에 어보를 소장한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했고, 이를 인지한 국토안전부가 제보 받은 집에 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조사하자 그 집에서 9점이 추가 발견되어 압수되었습니다. 지금 반환된 것은 샌디에고에서 발견한 9점입니다. 샌디에고에서 발견된 9점은 발견과 동시에 압수되었으므로 실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진 상으로만 확인했습니다만, 재질이 금속과 옥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므로 보관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보입니다.

Q. 지난해 대한제국의 국새와 어보를 돌려달라는 백악관 청원 운동과 청원 서명도 진행하셨는데 당시 국민들의 참여와 반응은 어땠습니까?

응답하라 오바마 운동은 8월과 금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한번은 문정왕후 어보 반환을 촉구하는 운동이고, 금년 3월은 오바마가 직접 대한제국국새를 반환하라는 운동입니다. 많은 국민들의 성원이 있었지만 영어로 서명하는 한계에 부딪혀서 숫자가 그렇게 높지는 못했습니다. 8월에는 6천명 금년 3월에는 3천명이 서명했으니까 총 1만 명의 서명이 있었습니다.

Q. 국보급 문화재인만큼 정부가 했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당시 정부의 관심이나 도움이 있었나요?

정부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원이나 도움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처음 문정왕후 어보가 발견된 2010년에도 문화재청은 반환대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별임대를 고려하겠다고 언론과 인터뷰한 적도 있습니다. 2013년의 문정왕후 어보 반환운동에도 특별한 지원이 별도로 있지는 않았습니다. 좀 불가능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국새를 반환하라는 운동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그냥 캠페인이겠지 하고 생각했을 뿐, 정부가 직접 추진하지는 않았던 운동입니다. 미국에서 제가 2개월가량 체류하면서 13개의 한인단체와 협력하고, 미국 메넨데즈 외교위원장 등이 도움을 주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으니까, 오바마 대통령의 국새 반환 문제는 우리정부보다 미국 쪽에서 훨씬 규모 있게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귀국 후 정부에도 관심을 촉구하고 검찰총장이 직접 봉선사에 방문해서 도움을 주시면서 사건에 궤도에 올랐습니다.

Q. 돌려받은 어보를 제외하고도 반환되지 않은 어보가 30개 이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계속 되돌려 받으려 노력하신 문정황후 어보와 나머지도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문정왕후 어보 사건이 이 모든 사건의 키워드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도난품이란 사실이 미국 정부 당국에도 인지되었고, 결국 대한제국 국새의 발견과 반환까지도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취지에서 문정왕후 어보의 반환 성공은 미국에서 발견될 모든 국새 어보에 반환의 계기와 선례를 마련한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돌아오지 못한 것은 반환하겠다는 의사 표명을 했는데도 국토안전부가 물건을 압수한 절차에 대한 이의제기가 종결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거쳐서 반환될 예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문정왕후 어보 반환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혜문스님 ⓒ문화재제자리찾기

Q. 해외 유출 문화재 환수를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할까요?

패배의식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자포자기했기 때문에 문화재 반환운동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도난과 약탈의 근거를 냉정하게 입증하고,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한발 한발 나아간다면 문화재 반환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최근 반환된 국새와 어보는 국립박물관에 보관이 되는 것입니까 ?

, 지금 돌아오는 대한제국 국새 등은 아마 경복궁 안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될 것으로 예정돼 있습니다.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법궁이고 고궁박물관은 왕실의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박물관으로 건립된 만큼 이곳에 보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Q. 환수된 문화재가 어디에 있는지 행방을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2009년 제가 미국 아델리아홀 레코드를 찾아낸 뒤, 자세한 사항을 검토해 보미 전쟁 중에 미국이 한국으로 반환한 물건들의 목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돌려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더군요. 명성황후가 사용했던 48마리 표범 카펫, 조선 왕실의 삼인검. 조선왕실 어보, 서책 1권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저희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추적한 끝에 표범 카펫과 삼인검의 행방은 겨우 찾아냈습니다. 국립중앙 박물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더군요. 조선왕실어보와 책 한권은 어떤 것을 받았는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Q. 혜문스님이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십니까 ?

저는 승려의 신분이니까 불교사상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불교는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참마음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중생의 미혹한 삶이고, 읽어버린 참마음을 찾아 가는 것이 수행자의 삶입니다. 불교적 용어로 말한다면 환지본처(還至本處)’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약탈문화재 환수운동을 문화재 제자리 찾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잃어버린 것을 제자리로 찾아가는 활동이고, 그것은 결국 참마음의 제자리 찾기, 양심의 제자리 찾기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질곡에 의해 인간의 탐욕에 의해 제자리를 떠난 것들을 제자리로 찾아오는 활동은 불교사상의 사회화이고, 또 하나의 수행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정부도 나서기 어려운 일을 직접 나서서 하시는 것마다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요. 스님만의 노하우가 있습니까 ?

글쎄요. ‘진짜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011년 조선왕실의궤 및 1205책의 문화재가 일본으로부터 반환된 뒤 정부는 국외문화재환수재단이란 공공재단을 만들고, 그곳을 통해 문화재 반환운동을 진행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재단을 만들면서 환수란 말이 부담된다고, ‘환수란 말을 빼버리고 국외문화재재단이란 이름을 썼습니다. 재단자체의 이사진과 임원들도 그간 환수운동을 진행한 사람을 배제하고 환수운동과는 전혀 관련 없는 문화재청 관계자나 퇴직자들을 위주로 구성했습니다. 그러니까 재단이 잘 운영될 리가 없어요. 다시 말해서 진짜 환수운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성과에 급급하다보니 보여주기 식 활동에 지나지 않았던 거죠. 그런 운동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Q. 문화재제자리찾기를 위해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하실계획입니까?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그냥 먹고 살기에만 급급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을 되 돌이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은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고, 주인이 스스로의 입지를 다지는 행위입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정신을 찾는 과정이자, 우리 스스로가 주인임을 깨달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노예로 떨어졌던 100년 전의 슬픈 역사를 디디고 주인으로 우뚝 서는 운동으로써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자리매김되기를 부처님전에 기도합니다.[시사포커스/ 권노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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