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식과 직업윤리에 투철한 직원이 몇 명만 있었더라도…

노란 개나리가 진 산야에 노란 리본이 펄럭이고 있다. 활짝 피워보지도 못하고 소담스런 꽃봉오리로 저버린 애석한 넋들이 신록의 대지 위로 올려지고 있다.

아직 세상물정 모른 아이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겪었을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한스러움이 모든 이들의 가슴에 다가와 노란리본으로 현현(顯現)되고 있다. 어떤 학생은 극심하게 몰려오는 공포에 꼬옥 웅크린 채로 사신을 물리치려 애썼고, 어떤 학생들은 두려움에 서로의 손을 부서져라 꼭 쥐고 그렇게 생명줄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리는 기적과 희망의 ‘무사 생환’이 아니라 차가운 주검들의 인양 행렬이다. 이런 일이 과연 일어나야 한단 말인가? 관계된 사람들도 야속하고 신도 야속하다. 평범한 이들이 감당하기 너무나도 힘든 대참사가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세월호 대참사는 인재, 관재, 천재 등 삼재(三災)가 서로 맞물려서 빚어낸 대참극에 다름 아니다.

여객선의 안전 운항과는 상관없이 돈에 대한 눈먼 탐욕과 자기만 살고 보자는 극도의 이기심이 빚어낸 인재요, 무대책 무책임 무개념의 보신주의가 판치는 관재요, 맹골수도의 엄청난 조류 물살이 빚어낸 천재이기도 한 것이다. 재앙의 삼각파도 속에서 구조는 지지부진했고, 결국 희망은 절망으로 변해가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재해는 겉으로 보기에는 우연히, 그리고 예측불허로 급작스럽게 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이론이 있다.

요즘 ‘하인리히 법칙’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대형 재난 사고 때면 으레 등장하는 해석 논리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가 펴낸 한 책에서 소개된 법칙이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하인리히는 미국의 트래블러스 보험사(Travelers Insurance Company)의 엔지니어링 및 손실통제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업무 성격상 수많은 사고 통계를 접했던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했다. 그는 5000여 건의 실제 사고를 분석했다. 그랬더니 대형사고 한 건이 일어나기 전 이와 관련 있는 소형 사고가 29건, 경미한 사고가 300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큰 재난이 나기 전에는 늘 어떤 신호, 즉 조짐과 기미(機微)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하인리히 법칙은 1:29:300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의미다.

이는 대형 재해가 일어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세월호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세월호는 침몰사고 이전에 여러 가지 징후를 보냈다. 구명정 등 긴급 구조 장비들이 모두 먹통이었고, 선체 구조가 증축, 변경돼 여객 정원과 컨테이너 적재한도 등이 늘어난 것 등이다. 적재 화물의 고정 장치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경미한 사고 등으로 수시로 선박을 수리했다.

유사시 배가 중심을 잡는 복원력이 크게 상실될 수 있는 갖가지 안 좋은 요인들이 잠재해 있던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대로 이로 인해 최소한 29건의 소형 사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관련자 모두들 이를 무시한 채 간과해 버린 것이다.

책임의식과 직업윤리에 투철한 직원이 몇 명만 있었더라도 이런 대참사가 미연에 방지될 수 있었다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세월호 침몰은 유가족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앗아가 버렸다. 깊은 슬픔이 온누리를 휘감고 있는 이 때 성급한 얘기 같지만 지난 일을 거울삼아 다시금 하인리히 법칙을 상기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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