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산으로 간 어부’가 귀농·귀촌 희망자에게 불패 전략 제시

이영호 전 국회의원이 쓴 책 ‘산으로 간 어부’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50대에 들어선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요즘 귀농·귀촌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추세와 맞물려 있다. 최근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는 이 책의 인기는 귀농·귀촌 희망자들에게 불패 전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수산학 박사로서 ‘해양수산전문가’임에도 우리나라 농업 현실과 미래에 대해 예리한 통찰력을 갖고 전략적 농업경영에 대해서도 전문가 식견을 겸비한 그를 만나 보기로 했다.

제17대 국회의원(완도·강진), 전남대학교 교수, 한국수산벤처대학 초대·2대학장, 해양수산부 해남(강진)수산기술관리소 소장, 부경대학교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한 채 지금은 귀촌하여 농사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서 흙냄새 나는 신선하고 풋풋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이영호 전 국회의원

국내 농업 장래에 대해 깊은 통찰력
정치인 시절에도 항시 농사일 겸업
농어촌 관련 법률안 다시 손질 원해

다음은 이영호 전 국회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50대에 들어선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요즘 귀농 귀촌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의원님의 저서 ‘산으로 간 어부’가 최근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책에 대한 소개부터 해주십시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농어촌 출신이면서 그곳에서 성장하고 관련 공부를 하고, 공직에 있으면서 오랜 기간 농촌의 현상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농업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농촌개발에 대하여 꾸준히 고민해 왔습니다.

현재 우리의 농업환경은 세계화·개방화 추세와 농촌의 초고령화 사회로 인하여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들 하지만, 분명히 그 속에도 길이 있고 농업은 벤처산업이며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는 희망적인 생명산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귀농으로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자들을 만나 보니 성공한 분들은 성공한 분들만이 같은 공통점이 있고, 실패하신 분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귀농·귀촌 희망자들은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계셨고, 막상 귀농·귀촌을 하려고 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폭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책 소개와 연계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인생의 일대 전환점으로 선택한 귀농·귀촌이 실패한다면 본인 뿐만 아니라 우리 농촌사회에도 악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제대로 성공한 농업인들의 경우는 그 지역전체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파급효과를 내고 있어 귀농·귀촌인들의 성공여부가 우리 농업과 농촌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귀농·귀촌 희망자들이 우리 농업과 농촌에 대한 제대로 된 마인드를 가지고 접근하고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1장에서는 귀농·귀촌 성공전략에 대하여 정리하였습니다. 마인드 정립에서 사업아이템을 결정하고 적지를 선정하는데 까지 가이드와 조언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2장에서는 귀농·귀촌을 많이 하시라는 차원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움과 자연의 치유력과 진정한 자유의 의미에 대해 정리하였고 3장에서는 성공할 수 있는 블루오션 작목 선정 방법과 현재 제가 직접 농사짓고 있는 작목들에 대한 소개를 하였습니다. 부디, 이 책이 귀농·귀촌인들과 우리 농업·농촌에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제17대 국회의원(완도·강진), 전남대학교 교수, 한국수산벤처대학 초대·2대학장, 해양수산부 해남(강진)수산기술관리소 소장, 부경대학교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습니다. 이러한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한 채 지금은 귀촌하셔서 농사일을 하고 계신다는데 귀농 귀촌하시게 된 배경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산으로 간 어부’라는 책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제가 공직이나 학교보다는 나무 심는 일을 선택한 것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고, 다음 항해를 위한 준비차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그동안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고 세상뿐만 아니라 제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분노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작산을 갔는데 마구잡이 벌목과 벌채를 해서 황폐화되어 있었습니다. 몇 그루 식재 해놓은 황칠나무는 매우 형식적이고 관리가 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장지오노의 ‘나무심는 사람’이라는 소설속의 엘지아르 부피에처럼 이 산을 푸르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숲은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강도높은 육체 노동을 함으로써 오히려 마음을 치료하기도 하구요.

또한, 재 출항하고자 하고 싶다는 어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고통의 바다’라는 인생길을 항해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태풍을 만나 배는 난파되고 겨우 목숨만 부지하여 바닷가에 버려질 수 있습니다. 어부는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백사장에 남아 구조선이 올 때 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인가?’ 그 중 나는 후자를 선택한 것입니다.

새로운 항해를 위해서 배를 만들기 위한 목재도 구해야 되고, 고기 잡을 그물과 식량도 갈무리 해 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태풍을 만나 비록 잠시 항해를 멈추고 있지만 꿈을 접은 것은 아니며, 다음 항해를 위하여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견디고자 한 것입니다.

-수산학 박사이신데 농업에 대해 해박하시고, 아울러 전략적 농업경영에 대해서는 전문가 식견을 가지고 계십니다. 왜 전공보다도 농업을 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언필칭 저를 ‘해양수산전문가’라는 사람이 바닷일을 하지 않고 산으로 갔느냐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동안 바다농사는 많이 지어보았습니다. 우리나라 해조류 · 어류 · 패류 및 담수어에 이르기 까지 양식 실험연구에서 보급에 이르기까지 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거의 없기에 그 쪽은 전문가들이 하실 것이고, 당분간은 나무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어릴 적부터 농부였습니다. 신분이 학생, 공무원, 정치인으로 변하여도 늘 농업을 겸직했습니다. 부모님으로 부터 밭둑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산과 들을 쏘다니며 본능적으로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직접 농사를 지으며 경제원리를 짐작했고 결코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농사를 생업으로 여기면서, 그동안 우리나라 농업의 문제점과 한국농업이 나아가야할 방안에 대하여 고찰하고 이를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 ‘산으로 간 어부’ 이영호 전 국회의원


- 본지 ‘시사포커스’에 인기칼럼 ‘이영호의 귀농 귀촌 불패전략’을 연재하고 계십니다. 생생한 현장 사진과 함께 주옥같은 글을 올리고 계시는데 연재내용의 주제는 어떻게 정하십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거의 매일 페이스북과 네이버 블로그 ‘기라재’에 제 농사일지를 적고 있습니다. 현실의 제 모습이고 생각입니다.

-도회지 생활에 심신이 지쳐 귀농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주위에 의외로 많습니다. 이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귀농·귀촌에 대한 마인드라고 생각합니다. 농촌에 살건 도시에 살건 궁극적인 우리 삶의 목적은 행복한 삶입니다. 도시인들이 귀농·귀촌을 꿈꾸고 있다면 농촌에 가면 더 행복할 거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주한다고 해서 삶이 변화하지 않습니다. 마인드 자체가 변화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 농어촌에 대한 인식, 농어업과 경제에 관한 마인드 등을 제대로 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농촌의 삶은 그저 낭만적인 것도 비관적인 것만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일대 전환해야 하며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농촌사회와 동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연과 생명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을 제대로 갖추고 가족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믿음이 우선되어야만 진정으로 성공한 것이라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가족들과 잘 상의하여 동의하에 추진하시기 바랍니다.

-귀농·귀촌의 성공 방법에 대해서 좀 더 부연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귀농·귀촌하여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농사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지적자본과 사회적자본이 농업과 농촌관련 아이템 개발에 적용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성공할 수가 있고, 농촌 발전을 위해서도 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농어촌은 단순히 농산물 생산에 그치지 않고 농산물 가공과 농촌관광, 의료·휴양과 문화·여가활동을 통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푸른 꿈을 농어촌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다양한 경력을 가진 귀농·귀촌인들이 제2의 인생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저한 자기진단을 통하여 귀농·귀촌 목적에 부합되게 포지셔닝을 결정하고 계획을 세워 치밀하게 준비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 실제로 직접 농사지으시면서 한국농업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세계화·개방화에 따라서 우리 농업과 농촌이 위기를 맞았다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업은 벤처산업으로서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는 분야이며, 한국농업의 미래는 매우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농업도 시대의 트렌드에 부응해야 하므로 농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며, 우리 농업과 농촌발전을 위한 시스템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정부의 농심 달래기용 정책과 지자체의 분별없는 농촌개발 행정은 바뀌어야 합니다. 또한 식량산업은 중앙정부차원에서 일관성있게 계획되고 추진되어야만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을 지키는 길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농업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작지만 강한 농업, 6차산업으로 진화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사고, 생명산업으로서 농업을 추진하고 육성해야합니다.

지금처럼 농촌·농업·농민을 도시와 타 산업의 종속변수로 여기던 시각과 단편적인 시각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하지 말고 시스템적 사고에 의해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도시와 농촌이 상호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발전할 수 있는 방안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17대 의정활동 당시 ‘국회의원 의정 대상 수상’ ‘국정감사 우수의원 4년 연속 선정’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셨는데 지나간 얘기지만 당시 주요 의정 활동을 소개해 주시지요.

지금 돌이켜 당시를 회상해 보면, 제가 정치를 너무 몰랐다는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농어촌전문가이자 농어업인의 대변자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5년간 해양수산부에서 공직생활을 통하여 농어촌관련법률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탁상공론에 치우쳐 있음을 절감하였습니다.

농·어촌, 농·수산업, 농·어업인을 위한 의정활동과 홀대받고 소외된 분들의 대변인 역할을 해야겠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도, 또한 당선된 후 제가 하고 있는 일도 바로 농어업, 농어촌, 농어업인을 위한 일입니다.

전국민의 70%가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고, 도시위주의 정책과 특히 수도권중심의 정책과 경제적지원은 도시와 농어촌의 양극화를 더욱 더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도시지역 출신의 국회의원이 많은 까닭에 도시중심의 시각에서 농어촌을 바라보고 있고, 정책적지원에서도 농어촌이 소외받고 홀대받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농어업의 회생과 농어촌의 활성화, 농어업인의 소득증대를 위해 농어업에 대한 벽을 깨고, 새로운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률안을 131건 발의했지요, 초선의원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건은 선배의원님들을 대표발의자로 세워가면서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정부나 동료의원님들이 실무나 농어촌실정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해야만 했습니다. 연일 관련 부처 실무공무원과 관련분야 전문가, 현장 농어업인들이 참석한 워크샵과 포럼을 개최하고, 정책보고서를 31권 발행할 정도로 왕성하게 일했습니다. 저희 의원실은 말 그대로 학습조직이었습니다. 별도로 ‘태평양포럼’이라는 연구소를 두고 국내외 500명의 자문교수단을 구성하여 운영했습니다.

덕분에 말씀하신대로 의정활동 성적은 최상위였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대의명분이 분명하고 제 자신이 누구보다 떳떳하고 당당했기에, 정부와 동료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도 했지만 투쟁을 마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사적으로 만나면, 기자님께서 보시다시피 이렇게 부드럽고 순한 사람인데 일할 때만큼은 적을 만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제 자신 스스로 정치를 몰랐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위 ‘밀당’도 하고, 당리당략에 합류도해 가면서 천천히 풀어갔었어야 하는데 초선의원으로서 의욕과 열정이 넘쳐서 정치보다는 일에 치중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번에 국회에 다시 진입하신다면 이번에는 일보다는 정치활동에 무게를 더 두시겠습니까?

제 성격상 그러지는 못하겠지만, 그 때보다는 일을 풀어가는 요령이 더 생길 것 같습니다. 모든 일들이 그렇지만 정치는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제는 일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는 여유와 노련미도 좀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조건 밀어부치기보다는 일의 완성도에 무게를 더 두겠습니다.

제 지역구는 서울에서 가장 먼 거리인데다, 사람사는 유인도가 52개여서 거의 심야고속과 심야철도에서 잠을 자고 활동했지만 시간이 늘 부족했습니다. 우리 비서실에서 제가 지출한 교통비와 철도이용내역을 조사한 결과 4년동안 이동거리가 51만 2천 km, 지구 12바퀴 반이라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민들에게는 지역구 활동이 적다고 불만을 샀습니다. 이제는 의정활동과 정치활동, 그리고 지역구관리까지 균형감있게 잘 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영호 전 국회의원이 농사 관련 작업을 하고 있다.


-정계 복귀에 대한 복안은 없는지요?

정치를 한다는 것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안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꿈을 대변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저는 저에게 의지하고 저를 지지해주는 많은 분들의 뜻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복귀하고 싶습니다.

저는 18대 국회에 진입 못할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한적이 없었기 때문에, 17대 임기 마지막 까지 모든 일들이 진행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거를 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농어촌관련 수많은 법률안들이 그대로 사장되었고 추진중이었던 정책제안서 등도 폐기되다시피 하였습니다.

제가 없어도 다른 분들이 잘 해나간다면 저는 이대로 나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현재 300명의 국회의원 중 실질적인 해양수산전문가가 없습니다. 실질적이라는 것은 현장과 실무, 이론적인 면을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전히 도시적 사고를 가진 비전문가와 실무를 모르는 이론가들의 탁상공론에 의하여 중구난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가야할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앞장서고 싶습니다.

- 끝으로 우리 농업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식량정책은 반드시 정립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식량자급률의 급격한 하락, 쌀 소비량의 감소, 식량의 과소비와 낭비, 식량안보정책의 부재 등으로 식량사정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 맞습니다.

밀, 옥수수, 콩 등의 자급기반이 사실상 상실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육류와 우유류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연간 1400톤의 곡물을 수입하는 세계 5위권의 곡물 수입국이며, 심지어 건초까지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물유통업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전무합니다. 즉, 막강한 시장지배력을 가진 카길이나 몬산토와 같은 곡물메이저가 모두 외국 기업이기 때문에, 가격 불안정기에 공급가격을 높여 식량 파동을 초래하면 이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하게 대처해야 하는 중요한 현실입니다.

정부의 농정정책을 보면, 마치 우리나라가 농업수출국인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농·식품의 수입국이지 수출국이 아닙니다. 수입국과 수출국의 입장에 따라 정부조직을 운영해야 합니다.

또한 식량산업에 대한 기본 마인드는 ‘식량산업 만큼은 중앙정부의 책임이다’라고 전제하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지휘 통제하였을 때 문제점이 해결될 것입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방자치시대가 본격화 되면서 중앙정부 공직자의 조정은, 권력을 배분하기보다 행정편의주의에 의한 권력 왜곡현상을 초래하였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농식품부의 경우, 농식품부 중 본부직원은 1200만 농업인일 때에 비하여 인원 차이가 없으면서도, 오히려 늘어난 부분도 있는데 힘없는 농촌지도소, 어촌지도소, 통계업무 등을 지방에 넘겨 버렸기 때문에 손발이 잘린 기형적 조직으로 변화하여 오늘날과 같이 배추파동, 구제역, 조류독감이 발생하고 효율적이지 못한 대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정 문제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이에 대한 대책도 말씀해 주십시오.

세계 식량현황은 지금 유가급등으로 인한 생산 및 수송비 증가, 지구촌 교류확대에 의한 가축전염병의 확산, 기후온난화에 의한 기상이변과 사막화 등으로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농정정책을 여기에 유기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우왕좌왕 헤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이는 농정을 리더십의 문제 일 수도 있습니다. 공직자 위계구조에서 상층부는 주로 고시출신이거나 정치권에서 투입된 관료화된 집단입니다. 이들은 생태적으로 현장을 알지 못합니다. 늘 봄길만 걷는 사람은 주변의 가시덤불이 쌓인 숲속을 보지 못하며, 반면 열흘 피었다 져 버린 벚꽃 덕분에 일년 내내 벚나무로 불리는 것과 같은 사람들이, 농업에 대한 제대로 된 마인드를 갖추지 못한 채 한 때의 공로로 주요 공직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드는 정책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농수산식품정책은 개별적인 농업, 수산, 산림, 축산, 식품산업 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도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지엽적인 해결책으로 수습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농업과 농촌, 어업과 어촌, 산림과 산촌이 연계된 사안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인구문제와 사회문화의 변동과 같은 근본문제들과 더불어 우리 국민의 정서와 식문화와 같이 보이지 않는 가치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식품안전과 보건위생, 식량안보와 같은 문제들을 시스템적으로 고려해야만 합니다.

농수산식품정책을 국가 전체적인 시스템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지금처럼 일관성이 없이 각각 개별적으로 헤매고 있어서는 작금의 현안문제들을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세계시장에서 우리가 원하는 식량을 마음대로 사올 수 없게 될 때를 대비해 식량자급계획을 세우고 소비절약을 습관화해 식량부족의 시대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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