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기업 중심 현금보유량 확대

2005년 말부터 지금까지 정치권의 정쟁이슈, 많은 리서치 기관들의 여론조사, 언론의 논조 등에는 한가지 공통된 주제가 있다. 그것은 경제성장과 양극화 해소이다. 그러므로 이 두 주제는 올해 국민들의 공통적인 바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중 경제회복은 정치권, 경제당국, 재계 등 국가 경제의 주요 주체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신감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신년 초 내비쳤던 자신감과 계획에 비해 구체적인 상황이나 전망 등은 크게 낳아지지 않아 실망감이 크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연초 외국계 자본의 투기로 인한 환율과 증권 파동 때문이라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것. 그러나 더 큰 원인은 기업들이 번 돈을 재투자하기 보다는 내부에 쌓아놓고 있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증세논란도 올 해 경제성장을 전망해 본 결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노 대통령의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이같은 자신감은 GDP전망, 소비자물가지수, 등 각종 경제지표가 일제 반등의 조짐을 보이며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과 한덕수 경제부총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정·재계의 지도급 인사들의 자신감은 보기좋게 빗나간 채 서민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같은 주장은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맞물려 정부와 여당을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제현황을 알려주는 각종 경제지표들을 보면 분명히 IMF 외환위기의 모든 후유증을 훌훌 벗어던지고 선진 강국을 향해 달음박질 하고 있는 중이다. 또 달음박질을 하면 할 수록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업들 현금보유량 지속 확대 그런데 이같은 모순점의 원천은 기업들의 투자기피 현상 때문이라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속속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6일 “최근의 기업투자와 현금흐름간 관계분석”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예전에 비해 현금보유는 꾸준히 늘리면서도 투자는 기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 한국의 기업들이 외형확대에 초점을 두고 은행 및 차관 등 외부자금을 적극 동원했었던 데서 내실을 추구하고 가급적이면 내부자금만을 활용하려는 안정형으로 변형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코스피·닥 상장기업들의 현금흐름은 IMF 직후인 1999년 9조원 이었으나 2004년 35조원 수준으로 무려 4배 26조원이나 증가했다. 이는 2002년 이후 삼성전자 및 현대·기아차 등 정보통신 관련 제품과 자동차 등의 수출 호조에 힘입어 당기순이익이 전반적으로 폭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1999년 1,437억달러를 시작으로 매년 1,723억불, 1,504억불, 1,625억불, 1,938억불, 2,538억불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예금은행의 기업대출 금리도 2000년 8.2% 수준에서 2004년 5.5%로 큰 폭 하락해 기업의 현금 보유 증가에 일조했다. ▲현금보유, 삼성전자·포스코 등 5대기업에 집중 그런데 국내 상장기업의 현금도 대기업 일부에 집중하고 있다. 또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상장기업들의 현금보유 증가분 28조 8,000억원 중 70.3%에 해당하는 20조 2,000억원이 삼성전자, 하이닉스 반도체, 포스코, LG필립스LCD, LG전자 등 상위 5대기업에서 벌어들인 돈이다. 한국은행의 보고서를 통해 2002년~2004년 현금보유 증가분을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8.5조원, 하이닉스반도체가 3.6조원, 포스코가 3.6조원, LG필립스LCD가 2.5조원, LG전자가 2조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점에서 기업의 양극화 주장이 나올 만 하다. ▲기업의 투자현황 기업들의 현금 보유량이 전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투자금액도 1999년 38조원 이후 46조 7,000억원, 36조 4,000억원, 34조 1,000억원, 39조 6,000억원, 47조 9,000억원으로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 관계자는 “2004년 투자규모가 2000년에 비해 5,000억원 밖에 늘지 않은 것은 동 기간 급격한 성장세를 고려하면 오히려 줄어들은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상장기업들의 현금흐름대비 투자비율은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160%에서 224%까지로 100% 이상이었으나 IMF 시절 93.9%로 떨어지더니 2000년부터는 94.5%, 77.9%, 56.5%, 67.6%, 63.4%로 점차 떨어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국내 혹은 동종업계 매출 1위라는 타이틀이 기업의 최고 목표였지만 IMF시절 대우그룹, 한빛은행 등 대마불사, 은행불패의 신화가 여지없이 무너지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현재 우리 기업들의 자산 중 현금성 자산이 2001년말 39.4조원에서 2004년말 64.9조원으로 25.5조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총 자산에서 현금성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1년말 7.2%에서 2004년말 10.1%로 상승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현금성 자산 중 단기금융상품이 27조 6,000억원으로 전체 42.5%를 차지하고 있고 현금과 양도성예금증서 등 현금 등가물이 27조 3,000억원으로 42%, 유가증권이 10조원으로 15.5% 비중을 차지했다. ▲기업들, 남아있는 현금 주주배당에 최우선 그러면 현재 기업들은 보유 현금을 어떻게 사용할까? 대부분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과 배당주 지급 등 주가관리에 대부분을 차지했다. 한국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은 유상증자보다 자사주 매입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배당급 지급도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주주 배당금은 1999년 1조 4,000억원에 불과하던 것이 2004년에는 8조 2,000억원에 이르렀으며 자사주 매입도 동 기간 1조 6,000억원에서 6조 3,000억원으로 늘어났다. 1999년에는 보유 현금 중 8.3%만을 주가관리에 활용했으나 2004년에는 22.3%를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투자부진에 대해 한국은행의 강태수 과장은 90년대말 IT거품 당시의 과잉투자 조정, 차세대 성장 산업의 부재,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기업경영의 보수화,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투자수요 축소, 주주중시의 경영으로 인한 단기실적 위주의 경영성향이라고 분석했다. 이 중에서 기업경영의 보수화와 대규모 투자 축소, 단기실적위주의 경영패턴 등은 2002년 이후 계속 고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쩌면 경영자와 기업의 입장에서 경제성장과 사회 공익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자체를 지키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IMF외환위기 당시 많은 부실기업들이 무너졌지만 개중에는 현대전자, 기아자동차, 외환은행 등 실제로 우량 기업들이 강제 M&A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는 모습을 지켜본 경영자들은 며 “이 과정을 직접 경험해 온 경영자들은 언제 부메랑이 될지 모르는 유상증자에 소극적인 반면 관례적으로 무시돼 왔던 주주들에 대한 배당과 자사주에 대한 충분한 확보, 외부자금 유치 등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지 않는냐”고 말했다. 재계의 또 다른 인사도 “IMF 외환위기 이후 SK와 소로스의 경영권 분쟁, 외환은행 매각 등을 통해 받은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잘 나가는 기업도 한 순간 방심으로 적대적 M&A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동감을 표시했다. 경영진은 더 중요한 임무인 기업의 생존보장을 위해서라도 자사 주식의 흐름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한국은행의 강태수 과장도 “기업이 투자재원을 조달할 때 외부자금보다는 현금흐름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으며 앞으로도 기업의 투자는 현금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투자부진은 세계적 현상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우리나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기업들은 보유현금의 50% 이내, 독일, 캐나다는 75% 수준에서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64%라는 실적은 OECD국가들 중 평균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와관련 재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투자활동이 외환위기 이후 위축됐다고는 해도 국제 규모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그러나 우리나라가 경제 선진국에 들기 위해서는 지금으로는 부족하며 IMF 이후의 투자 패턴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국내 기업들은 전체적인 투자규모를 해마다 축소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연구개발비 지출은 1995년 이후 계속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에서 집계한 주요 선진국의 GDP대비 연구개발 지출 비율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1999년 2.25%, 2001년 2.59%, 2003년 2.63%로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는 동 기간 OECD국가 평균보다 약간 높은 수치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