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옆에 두고 기념촬영에 황제라면까지 ‘염장 퍼레이드’

세월호 침몰 대참사와 관련해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일부 고위 공직자들이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해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다. 폭탄주 회식 논란부터 사고 현장에서 기념촬영까지. 정신 이상자가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을 벌였다는 게 여론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소수의 이 같이 그릇된 행동은 정치권 전체를 욕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정부는 이번 사고를 통해 또 다시 위기관리에 총체적 무능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민적 시각에서 우리 사회 지도층은 무능과 탐욕으로 일그러져 있다는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결국 이런 불신과 회의감은 ‘여당이 잘못했는지, 야당이 잘했는지’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정치가, 국가 기능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다시 국민적 심판대 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 세월호 침몰 참사로 실종자 가족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는 가운데, 일부 고위 공직자들의 무개념 언행으로 분노가 치솟고 있다. 앞서 진도실내체육관을 방문했던 정홍원 국무총리는 멱살을 잡히고 물세례를 받는 등 곤혹스런 입장에 처하기도 했었다. ⓒ뉴시스

◆ 술판참석 논란 유한식, ‘경고’로 마무리
여론의 뭇매를 집중적으로 맞고 있는 것은 새누리당 소속 유한식 세종시장이다. 온 국민이 비통한 마음으로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기도하고 있던 지난 18일 저녁, 유 시장은 세종시 조치원읍 모 식당에서 청년당원들과 폭탄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에 휩싸였다. 유 시장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했지만, 엄중한 시기에 그런 자리에 참석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파문이 커지자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19일 “음주여부를 떠나 신중하지 못한 처신”이라며 당 윤리위원회 회부를 지시했다. 이에 대해 당 윤리위는 20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회의를 열어 유 시장에 대해 ‘경고’ 처분을 내렸다. 당내 일각에서 후보직 박탈론까지 제기됐었지만, 윤리위는 가장 가벼운 징계처분인 ‘경고’로 상황을 마무리한 것이다.

경대수 윤리위원장은 이와 관련한 브리핑에서 “당명을 불복하고, 당원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당의 위신을 훼손했다고 판단해 징계를 결정했다”며 “다만 유 후보는 음주 사실이 없고 짧은 시간만 있다가 자리를 떠나고 깊이 반성하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유 시장은 경고 수준의 징계에 그치면서 세종시장 후보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엄중한 시기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동을 했는데도 집권여당은 제 식구 감싸기만 한다는 비판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 황우여 대표는 21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재차 “지금도 피해가족과 아픔을 같이 하고 국민의 지엄한 꾸중에 몸과 마음을 겸비하게 해 애도와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온 당원은 재삼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 대표는 “자신의 언행이 상황에 맞는지 재삼 신중의 신중을 더해 달라”면서 “주말에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당직자들의 일부 언동이 있었던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온당한 처신을 엄중히 당부 드린다. 당은 민생을 돌보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갑절의 노력을 다할 때임을 명심하며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해 주시길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한심한 지도층” 비난 봇물
황우여 대표의 이 같은 신중 언행 당부는 비단 유한식 시장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중앙당 차원의 선거운동 중단 지시에도 불구하고 일부 예비후보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를 애도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무차별 전송했다. 사실상 세월호 침몰 사고를 선거운동으로 활용하는 부도덕한 행태를 보인 것이다. 이런 사례가 여당 예비후보들에게서만 발견된 것은 아니었다. 야당 소속 일부 예비후보들 또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가운데 20일에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사고 현장을 찾은 송영철 안전행정부 국장이 또 경악할 만한 일을 저질렀다. 피해자 가족지원 상황실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려 하는 무개념 행태를 보인 것. 사고대응 주무부처 고위 공직자의 행태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한 일을 벌인 것이다. 송영철 국장은 세월호 참사 사망자 명단 앞에서 직원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려다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우리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데 이게 기념할 일이냐”는 거센 항의를 받았고, 송 국장은 결국 직위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이른바 ‘황제라면’ 논란으로 비난 세례를 받고 있다. 사고 당일인 16일 오후 4시께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은 서남수 장관은 이곳에서 컵라면을 먹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오마이뉴스>는 “진도실내체육관에 도착한 서남수 장관은 구조된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누군가 마련해 준 팔걸이의자에 앉아 컵라면 등을 먹으며, 자신을 수행하던 이에게 함께 먹자고 손짓을 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누리꾼들은 이를 두고도 분통을 터뜨리며 거센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다.

▲ 일부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정부와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이 싸늘하기만 하다. 이 때문에 사고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다수 공무원들까지 싸잡혀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다. ⓒ뉴시스

특히, 서 장관은 18일 오후 수행원 3~4명과 함께 희생자 학생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한 장례식장을 방문했다가도 부적절한 처신으로 유가족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었다. 당시 서 장관의 한 수행원은 유가족들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교육부 장관님 오십니다”라고 건넸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들은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며 격하게 항의했고, 결국 서 장관은 위로의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장관의 습관적 ‘의전’이 유족들의 마음에 두 번 상처를 준 셈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임내현 의원(광주시당위원장)도 국민적 애도 물결 속에서 마라톤 행사에 참석해 분노를 끌어올리는데 일조했다. 임 의원은 20일 오전 광주 상무시민공원에서 열린 한 신문사 주최의 마라톤 대회에 참석했다. 문제는 마라톤대회 자체가 아니었다. 임 의원이 이날 직접 마라톤 코스를 달렸기 때문이었다. 조끼에는 ‘국회의원 임내현’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어, 지역 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정치적 행보였음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했다.

특히, 21일 트위터에는 임 의원과 함께 마라톤 행사에 참석했었다는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트윗글에는 “대회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상황을 감안해 인사말을 생략하는 등 조심스럽게 행사에 참여했지만, 임 의원이 점퍼를 벗고 복장으로 직접 달리기를 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임 의원은 이런 논란과 달리, 지난 16일 자신의 트위터에는 “여객선 사고. 꽃 같은 학생들이 속히 구조되길 기원합니다. 관계당국도 더 이상 혼선 없이 상황을 정확히 발표하고 구조 작업에 만반을 기해 주십시오. 애타는 심정으로 승객들의 귀환을 기도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던 바 있다. 마라톤 행사 참석으로 이 같은 트윗글조차 영혼 없는 글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세월호까지 색깔론 시도하다 역풍
그런가 하면, 세월호 참사를 또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은 경우도 있었다. 새누리당 한기호 최고위원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좌파단체의 정부전복 작전이 전개될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를 이념 대결로 몰고 가려고 시도했다.

한 최고위원은 “드디어 북한에서 선동의 입을 열었다”며 “이제부터는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단체와 좌파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 안보조직은 근원부터 발본 색출해서 제거하고, 민간안보 그룹은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최고위원은 덧붙여 “북한이 제정신이라면 이 참사에 대해 위로의 전문이라도 보내줘야 하지 않나?”라며 북한을 향해 강한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한 최고위원의 이 같은 발언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8일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실종자 가족들이 품었을 슬픔과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한국 정부 당국은 깊이 새겨야 한다”고 보도한데 따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슬픔에 잠겨 있는 국민 정서와는 달리 세월호 침몰 사고를 무리한 이념 갈등으로 몰아가려한 한 최고위원에 대한 역풍이 더 거셌다. 결국, 한 최고위원은 논란이 확산되자 자신이 올린 글을 삭제하며 뒤늦게 수습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여야 당대표는 물론이고 차기 대선주자 등 정치인들의 세월호 사고 현장을 찾는 발걸음이 많아지자 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들도 거세지고 있다. 이에 대해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는 지난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산소통 메고 구조활동할 계획이 아니라면 정치인, 후보들의 현장방문, 경비함 승선은 자제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노 전 대표는 “위기상황엔 중요한 분들일수록 정위치에서 현업을 지켜야 한다”며 “중앙재난본부 방문으로 또 하나의 재난을 안기지 맙시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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